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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주 Jan 07. 2021

감정을 대면하는 방법 -「감정의 물성」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허블) 수록 소설 (5)


 감정을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면? 행복, 증오, 침착, 우울 같은 감정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으로 출시되어 판매된다면,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사려 할까? 부정적 감정도 사고 싶어할까? 과연 감정이 물성을 지닐 수 있을까? 「감정의 물성」은 이런 질문에서 출발하여, 감정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공감, 이해에 대해서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주로, 다른 은하계로 뻗어나가던 이야기들이 이 소설에 이르러서는 시선을 안으로 돌린다. 인간이라는 소우주로 들어온 셈이다. 이 소설에선 우주, 우주인, 외계인이 나오지 않는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감정과 감정을 교류하며 살아가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소설집의 다른 이야기들에 비해 소품 같은 느낌도 없지 않으나, 기발한 설정의 짧은 이야기가 던지는 생각거리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모셔널 솔리드라는 회사는 행복, 설렘, 침착, 우울 같은 감정을 작은 물건으로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사람들은 원하는 감정체를 사서 만지거나 먹거나 소유하며 그 물건들에 폭발적 반응을 보인다. 잡지 기자인 ‘나’는 감정의 물성 제품들이 대유행인 현상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건 단지 플라시보 효과이거나 집단 환각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의 물성 제품들은 하나같이 향기가 나는 것으로 묘사된다. 각각의 감정라인에 따라 색과 모양, 향기가 다르지만, 모두 향기를 갖고 있었다. 아로마 요법처럼 고유의 향기만으로도 특정 감정을 불러올 수 있다. 인간의 감각 중 가장 민감하며 오래 남는 것이 후각이 아닐까? 후각은 기억과 곧장 연결된다는 경험을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대개 후각은 감정과 기억을 직접 소환하곤 한다. 그러므로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이 감정의 물성 제품들을 손으로 만지면서 그 감정에 빠지는 것은 손의 감각 때문이라기보다 그 물건이 내뿜는 진한 향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결국 감정의 물성 제품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임시마약류로 판명되고 판매가 금지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해외사이트를 통해 몰래 제품을 구입하고, ‘나’의 연인 보현 또한 ‘우울체’를 버리지 못한다. ‘나’는 사람들이 감정을 구입하고 소유하고 싶은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특히, 우울, 증오 같은 부정적 감정을 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모셔널 솔리드 대표를 만나고, 그에게 사람들이 증오나 우울을 구입하는 이유를 물어본다.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을 주던가요? 공포, 외로움, 슬픔, 고독, 괴로움…… 그런 것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죠. 그러니까 이건 어차피 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까?” (p.215)     

 

 그의 대답을 듣고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이 공포영화나 슬픈 이야기를 향유하는 이유는 감정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지 않은가.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며, 의미와 감정은 맥락 속에서 부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문득, ‘나’는 신파영화를 보며 엉엉 울던 한 여인을 떠올리며, 때로 사람들은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울고 싶을 땐 엉엉 울고 나면, 슬픔이 가라앉는다. 화가 날 땐 화를 인정하고 표현해야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때론 눈물 그 자체, 분노 그 자체가 필요한 때도 있다.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감정 속에 풍덩 빠져 온몸을 적셔야 감정의 바다에서 헤엄쳐 나올 수 있다. 보현이 ‘우울체’를 안고 엉엉 울고 있는 이유다.      


 “물론 모르겠지, 정하야. 너는 이 속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p.216)    

 

 자신을 괴롭히는 감정을 손 위에 올려두고 쓰다듬고 싶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슴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감정을 눈 앞에 꺼내어 놓고 그 감정을 직시하는 것. 감정을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이 감정을 직시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했을 때 느끼는 안도감이 있다. 시각화뿐 아니라, 후각, 미각, 촉각 등 모든 감각으로 느끼고픈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그 감정을 극복하기 쉬울 것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부정적 감정을 나쁜 것이라 배워왔다. 부정적 감정은 가져서도 안 되고 남들 앞에 꺼내 보여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우리 안에 내재돼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정적 감정을 애써 부정하고 외면하고 덮어두려 한다.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성숙한 방법으로 감정을 해결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부정적 감정은 덮어두고 외면하고 부정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꺼내어 직시하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      

 

 ‘나’도 부정적 감정을 대면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나’는 우울한 보현의 상태가 불편했다. 그녀가 우울한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바랐기에,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거나, 가족들과의 타협안을 제시했다. ‘우울체’를 끌어안고 울고 있던 보현에게 필요했던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나’의 이해와 공감인데 말이다.      


  이 소설은 감정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감정을 과장하거나 왜곡하거나 회피한다. 소설 속의 사람들이 물성화시킨 감정을 대하듯이 우리의 감정도 그렇게 대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설렘’초콜릿을 입에 물고 살살 녹여먹듯이, 내 안의 설렘을 천천히 음미하기. ‘우울체’를 쓰다듬듯이, 내 안의 우울을 쓰다듬어주기. 그렇게 내 감정들에 눈맞추고 만져주고 안아주어야 한다. 내 곁에 있는 사랑하는 이들의 감정도 그렇게 눈맞추고 만져주고 안아준다면, 우리에게 ‘우울체’나 ‘증오체’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소설에서처럼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마약류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감정의 물성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마음을 어지럽히고 가슴을 짓누르는 부정적 감정을 낱낱이 꺼내어 글을 쓰고 나면, 괴로움이 줄어든다. 괴로움의 실체를 눈 앞에 꺼내놓고 구체화시킬 수 있다면, 글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모두 매우 훌륭한 감정의 물성이 될 것이다. 글이라는 감정의 물성은 감정을 직시하는 역할 뿐 아니라, 감정을 한 단계 승화시키는 이로운 마약이다. 결국 모든 예술은 창작자의 감정의 물성화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내가 읽고 있는 이 소설집 또한 김초엽 작가의 감정의 물성일지 모르겠다. 이 소설집의 감정은… '따스함' 또는 '아련함' 정도가 되지 않을까. 김초엽 작가의 '따스함'과 '아련함'을 내 손 위에 올려놓고 만지고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내 안의 따스함과 아련함에 눈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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