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주 Oct 21. 2020

카프카_『소송』미니 독후감

(프란츠 카프카/권혁준/문학동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지배적인 감정은 암울함과 답답함이었다. 어디를 왜 걷는지도 모른 채 컴컴한 미궁 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개별 상황들이 명확히 해석되지 않은 채 책장만 넘겨가며 읽다보니, 독자인 나와 주인공인 요제프 K가 같은 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포 이유도 법원의 실체도 모른 채 소송과 처형을 당하는 K의 감정이 독자인 내게 고스란히 전이되는 것 같았다.  독자를 주인공과 같은 심리 상태에 두다니. 고도의 전략이 아닐까. 어찌됐건 무엇 하나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인과관계가 불충분한 상황에 툭 내던져진 운명에 이입되어 K가 나인 듯, 내가 K인 듯 출구를 더듬어나갔다. 


어려운 작품일수록 정답을 찾으려는 해석 강박이 작동한다. 문학에 접근하던 학창시절의 '정답찾기' 방식이 끈질기게 남아, 개별 인물과 상황들에 담긴 메타포를 낱낱이 이해해야 작품을 제대로 읽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애초에 카프카의 작품을 완벽하게 해독하고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해석의 다의성이 카프카 작품의 특징이다. 모든 문학작품이 그렇지만, 특히 카프카의 작품은 독자가 어느 관점에서 읽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의미의 바다다. 암호 같은 의미들에 집착하지 않고 전체적인 맥락을 조용히 따라가다보면 시야를 가리던 안개가 조금씩 걷힌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삶과 그 작품의 집필동기, 시대적 배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이 작품을 집필할 당시 카프카의 삶과 관련해서 생각해본다면, 펠리체 바우어와의 파혼에 대한 죄책감이 이 소설 속 주인공 요제프 K가 체포되고 처형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고도 볼 수 있다.      


 또 다른 면에서 본다면 카프카는 글쓰기를 통해 인간 존재의 실존을 파헤치고 싶었을 수도 있다. 느닷없이 소송을 당하고 느닷없이 처형을 당하는 K의 1년이 인간의 인생 전체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뭔가 잘못된 겁니다. 도대체 인간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땅에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인간입니다.” (p.264)

 

카프카가 신부에게 하는 이 말은 단지 인간으로 태어났을 뿐인데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인이어야 하는 원죄의식에 대한 항변으로 들린다.      

 

단편으로 읽었던 <법 앞에서>를 이 소설 속 신부와 K의 문답을 통해 다시 만나, 재해석할 수 있었다. <법 앞에서>의 ‘시골사람’은 <<소송>>의 요제프 K와 겹쳐진다. 시골사람이 법을 향한 적극적인 노력없이 문지기의 벼룩에게 도움을 구하는 등의 행동은, 요제프 K가 변론을 위해 다른 인물들의 도움을 구하는 행동과 유사하다. 보다 본질적인 노력 없이, 시간을 흘려보낸 죄로 두 사람은 허무하게 종말을 맞는다. 그렇다면 시골사람이나 요제프 K가 어떤 행동을 했어야 했을까? 과연 시골사람이 문지기를 뚫고 들어가는 저돌성을 보였다면, 요제프 K가 자신의 무죄를 적극적으로 항변하는 청원서를 작성했다면, 두 사람은 구원을 받았을까? 시골 사람이 조금만 더 용기를 냈다면, 그가 눈을 감는 순간 어렴풋이 본 빛에 다가갈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카프카가 <법 앞에서>와 <<소송>>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용기’였을까?      

 

폐결핵을 앓으며 죽음을 예감했던 카프카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과정이 ‘소송’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시골사람이 그토록 가닿고 싶었던 ‘법’은 해석될 수 있는 모든 진리일 수도 있고, 카프카가 추구했던 실존에 대한 자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누구나 마음 속에 추구하는 가치의 최고 지점이 빛으로 표현되는 ‘법’인지 모른다. K가 최후의 순간에 “개 같군!”이라고 한 말은 카프카가 내뱉은 인생에 대한 회한처럼 들린다. 시골사람과 요제프 K와 카프카와 나, 작중 인물들과 작가와 독자인 우리는 결국 모두 같은 운명을 살고 있는 슬프고 쓸쓸한 존재로 느껴진다. 



*읽은 때 : 2020.08.04~2020.08.16.

*기록한 때 : 2020.08.17.

*별점 : 4.0/5.0

*한줄평 : 인간 본연의 죄의식과 인간 존재의 생과 사를 이보다 더 적절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폭력적인 세상에서 꺾이고 스러지는 인간_카프카『실종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