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의 프리랜서 (1) 왜 프리랜서가 되었나
2020년 가을, 내 생애 처음으로 퇴사라는 걸 했다.
출판사 에디터로 회사를 다니던 시절, 출산 휴가 3개월의 끝이 다가오자 복귀를 준비하면서도 매일 밤 고민을 했다. 이 핏덩이 같은 아이와 내가 하루에 8시간을 떨어져 있는다고? (심지어 친정 엄마가 아이를 봐주시기로 했었는데도 말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호언장담을 했었다. "밖에서 일하는 게 나한테 맞아!" 하지만 아이를 낳고 밤새 토닥이며 끌어안고 살다 보니 어느 날 아이가 나를 보며 웃는다. 그 순간, 그렇게 장담했던 말들이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이고, 나는 나라는 말. 내 인생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다짐. 엄마도 아이도 서로 떨어져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둥...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무엇하나 준비되지 않은 내가 말하기엔 너무 대책 없이 자신만만했고 건방진 말들이었다.
그런데 마침 우리 팀 사정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몇몇이 그만두고 누군가는 부서를 이동하고... 우리 팀이 서서히 해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한테도 팀 이동의 제안이 왔지만 바로 거절했고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갓난쟁이를 두고 출근할 자신이 없어지던 찰나에 내게 아주 좋은 핑계가 생긴 느낌이었다.
첫 번째 회사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다. 해고와 퇴사 사이, 그 어디쯤이었던 것 같다.
회사를 정리하고 난 후, 처음엔 홀가분하고 마음적으로 여유로웠다. 집에서 일어나는 일만 생각하며 살아도 된다는 생각에 후련하기까지 했다. 이대로 쭉, 아이 돌봄과 집안일을 훌륭히 해낼 수 있을 줄 알았건만. 그런데 이 또한 대단한 착각이었다. 반복되는 하루의 루틴은 얼마 못가 나에게 의미 없는 지루함으로 와닿았고 너무 소중하고 예쁜 아이지만, 그 아이만 24시간 바라본다는 것이 숨이 막혀올 때가 더 많았다.
나는 다시 일하고 싶었다. 일하면서 생각하고 공부하고 싶었고 심지어 갈등 상황조차도 그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운 좋게도 일 그만둔 지 4년 만에 나에게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렇게 두 번째로 선택한 회사는 스타트업이었다. 나는 창립 멤버였으며, CEO는 아니었지만 비슷하게 고민하고 나름 진지하게 일했다. 뭐든지 할 수 있는 회사인 만큼, 뭐든지 다 알아서 해야 하는 회사였기에 나름 고충이 많았지만 즐거웠고 재미있고 보람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이 회사를 선택한 이유와 여기서 하고 싶었던 일, 그리고 이곳에 내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 점점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이곳에서 난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오랫동안 품은 채 그 답을 찾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끝내 그 안에서 답을 찾지 못한 나는, 더 이상 일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고민 끝에 결국 '퇴사' 하기로 결심했다.
이게 나의 진정한 첫 '퇴사'였다. 그리고 서점에 왜 그렇게 '퇴사'와 관련된 책들이 많이 나와있는지 깨달았다. 막상 퇴사를 결심하고 보니, 굉장히 막막했기 때문이다. 언제 말해야 하는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일 마무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퇴사 전-후로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드라마처럼 '사직서' 띡! 던지고 나오면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퇴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나니, 복잡할 것만 같았던 상황들이 하나둘씩 정리가 되긴 했다. 회사는 나 없어도 돌아갔고 나는 다시 집안일 중심으로 생활하기 시작했다. 시원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한 동안 알 수 없는 감정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나를 다독였다.
그렇게 나는 무직자가 되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일을 이어갈 것이라는 것을. 그게 프리랜서의 형태가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사실 프리랜서는 가장 후순위였다. 왜냐하면 나는 '직장'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게으른 나는 정해진 틀에 맞춰서 책임을 다하는 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다름 아닌 구직 활동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에 (당시) 6세 아이가 있는 나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내가 출퇴근을 하게 될 경우, 코로나로 인한 갑작스러운 가정보육 전환에 대처할 수 있는 플랜 B가 없었기 때문이다. 필요한 때에 맞춰 아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걱정 많고 의심 많은 우리 부부가 선택하기 어려운 방법이었고 부모님은 일하고 계시니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아이 보육을 전담하는 이모님을 쓰기엔 남편의 불규칙한 재택근무 전환도 변수였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나는 100%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장을 1순위로 알아봤지만,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이거나 경력과 전혀 무관한 일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다시 나에게 질문해야만 했다. 정말로 나에게 직장이 꼭 필요한 건가? 나는 월급을 받고 싶은 건가, 일을 하고 싶은 건가?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일이 하고 싶었다. 영상을 편집하고 싶고 책을 만들었던 감각으로 잘 편집된 영상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두고두고 찾아보고 싶은, 그런 내용을 잘 담아낸 영상을 만들고 싶다. 그렇다면 지금 나한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직장을 다니며 배우는 것보다 오히려 틀에 갇히지 않은 다양한 경험과 셀프 스터디가 내가 원하는 걸 이루는 데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막연히 자신 없다고 한 켠으로 미뤄두었던 프리랜서의 삶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선택이 될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점점 커졌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오히려 명쾌해졌다. 더 이상 망설일 게 무엇이랴. 해보고 안되면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게 2020년 가을, 나는 프리랜서의 삶을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나니 바로 첫 번째 미션이 셀프로 주어졌다.
“아무도 날 모르는 시장에, 내가 있음을 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