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도 까도 신기한 '나'란 사람
그동안 나는 내가 '직장형 인간'에 굉장히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좋든 싫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성과를 내야 하는 환경. 그런 환경이 날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그게 없다면 나 스스로를 다잡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에디터 일하면서 프리랜서 외주자 분들을 만날 때마다 경의를 표했다. 그들의 자기 관리는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거 없이 나온 생각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20대, 30대를 지내며 내가 나를 객관화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도 친구가 날 불러내지 않으면, 내가 속한 그룹에서 날 찾지 않으면, 과제나 시험이 없으면, 난 집에서 뒹굴거렸다.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 나서거나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지 못했다. 밤마다 계획은 거창했으나 막상 그날이 되면 나는 만사 제쳐두고 침대와 하나 된 하루를 보내곤 했다.
결혼해서도 비슷했다. 신혼일 때도 주말에 어딘가 바람 쐬러 다녀오는 일이 나에겐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마음을 다잡고 준비해야만 그날 출발이 가능했다. 전날 벼락같이 잡은 일정은 다음날이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시들해져서 결국 없던 일이 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나마 뭔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고 스스로 꽤 만족스러웠던 건 회사 안에서의 '나'였다. 스스로 꽤 멋있게 느껴졌고 열심히 살고 있는 내가 대견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어떤 조직 안에 있을 때 가장 내가 원하는 모습이 나오기 때문에 반드시 조직에 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0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 생각을 완전히 무너뜨린 사건이 생겼으니, 바로 '육아'였다.
육아는 지금껏 믿어온 나의 모든 것을 깨부수었다.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 내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을 모조리 뒤엎어버렸다. 미처 몰랐던 내 모습에 매일매일 놀라며 나는 나를 다시 정의해야 했다. 멀쩡히 잘 살던 세상이 갑자기 무너졌고,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문이 열린 기분이랄까. '나를 몰라도 한참 몰랐구나' 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막연하게 아이가 좀 더 크면 다시 회사에 속하는 직장인으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했는데, 프리랜서라니... 나처럼 늘어지길 좋아하고 최대한 일을 미뤘다가 한 번에 해결하는 스타일이 프리랜서라고? 불가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 그것도 틀렸다. 생각보다 루틴을 잘 만들고 지켜내는 사람이었다 내가. 스스로 하루를 관리하고 시간을 나누어 쓰는 데 능숙한 사람이었으며,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육아와 일 '멀티'가 가능했다. 글을 쓰는 건 '작가'들이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뭐가됐든 일주일에 1편 이상씩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다 내가.
이렇게 되니, 점점 궁금해진다. 과연 내가 아는 나의 모습이 진짜일까. 아니면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못한다고 해왔던 것들이 정말 못하는 게 맞나. 혹시 내가 괜히 겁먹은 건 아닐까.
과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