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날의 과학관
오늘은 꼭 시립 과학관에 가요!
한 2주 전부터 아이가 타령을 했다. 코로나 조심하고 싶어서 다른 나들이 일체 없이 뒷산 둘레길만 걸었는데, 아무래도 이제 지루해졌나 보다.
아빠랑 둘이 다녀왔으면 좋겠건만, 꼭 셋이서 같이 가고 싶다고 하는 아이. 하는 수 없이 모자 뒤집어쓰고 집을 나선다. 햇살이 눈부시게 쨍하다. 꽃들이 날 좀 봐달라는 듯이 제각각 요염하게 피어있다. 새싹들의 초록은 또 어찌나 아기자기한지. 공기는 벌써 여름 기운이 한가득이다.
우리...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꼭 과학관을 가야 할까? 꽃구경은 어때?
안돼요! 과학관 가요.
.. 어.. 그래그래. 가자.
약속한 일이니 별 수 없다. 단호한 아이의 대답에 미련 없이 과학관으로 향한다. 그런데 과학관 정문 앞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다. 그렇게 이른 시간도 아닌데, 설마 문 닫았나? 홈페이지에 그런 말 없었는데? 슬금슬금 문을 밀어보니, 열려있다! 그런데 왜 인기척이 안 느껴지지?
아.. 다들 꽃놀이 갔구나.
문을 들어서자 관계자분께서 반갑게 인사해주신다. “어서 와요~ 몇 살이에요?”
“1학년이요!”
“잘 왔어요~ 재밌게 봐요!”
아이는 벌써 저만치 뛰어가버렸다. 티켓 발권하고 들어서니, 정말 조용하다. 1팀 정도? 엄마랑 같이 온 형아 한 명 있다. 와… 이거 완전 전세 낸 거 같은데?
… 좋은데?
아이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둘러본다. 하고 싶은 코너마다 기다림 없이 체험해볼 수 있으니, 원 없이 마음껏 만져본다.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을 목이 터져라 뽐내는 것은 물론, 새로운 지식을 마주하면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무지막지하게 질문을 해댄다. 그러다 아이의 눈에 들어온 한 가지. 바로 <지진에 잘 견디는 구조는 어떻게 만들까?> 와우..
아이들이 많으면 나눠 써야 할 블록들을 오늘은 혼자 마음껏 쓸 수 있으니, 아이는 신이 났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만든다. 지진에 무너지지 않는 설계를 해내야 하는, 혼자만의 미션에 빠졌다.
아이가 만든 첫 번째, 직육면체로 쌓은 설계가 완성됐다. 드디어 지진 테스트. 우~웅~ 약진을 버티는가 했는데 강도를 중으로 올리지 마자 가차 없이 무너진다. 와르르르…. 실망한 얼굴도 잠시, 아이는 다시 쌓기 시작한다.
이번엔 피라미드 모양으로 해볼게요.
오호! 역시 피라미드는 강했다. 마지막 강도까지 무사히 버텨낸 피라미드를 보며 이제야 얼굴이 핀다. 아이는 방금 지진으로부터 세상을 구했다.
여기까지, 입장한 시간으로부터 2시간이 흘렀다. 맙소사…
그다음은 다리 만들기. 서울에 있는 다리를 만들어볼 수 있도록 블록과 각 다리별 설명서가 비치되어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빠 도와주세요. 같이 만들어주세요” 하더니, 올해부턴 아빠랑 대결 모드다. 각자 다리 하나씩 골라 한 자리씩 차지하고 조립 시작!
한 30분쯤 지났나. 남편이 조용히 말한다.
이거 좀 어렵긴 한데, 생각보다 재밌네.
그리고 한 20분 또 지났나. 이번엔 아이가 말한다.
엄마, 이거 좀 어렵긴 한데요. 그래도 재밌는데요?
둘의 취향이 붕어빵인 건 알고 있었지만 리뷰까지 이리 똑같을 일인가. 시간차를 두고 같은 말을 하는 부자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유전은… 정말 대단하다.
드디어 두 사람이 각자의 다리를 모두 만들었다. "와!! 대단한데? 자~ 이제 2층으로 갈까 우리?(아직도 봐야 할 관이 3개나 더 있단 말이다;;)" 1층에서만 3시간을 있었는데도 아이는 여전히 뭔가 아쉬운지 망설이다가 겨우 2층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여자 친구의 끝나지 않는 쇼핑을 함께 하는 남자 친구의 기분이 이런 걸까?
겨우 1층을 벗어나 2층으로 향하는 길. 나는 슬슬 지쳐가기 시작했으나, 아빠와 아들은 2층으로 뛰어 올라간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한 게 분명하다. 두 사람은 전혀 지친 기색 하나 없다. 그니깐 둘이 다녀오라고 했잖아;;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2층 전시관은 뇌과학, 우주, 수학, 인체, 유전 3층은 힘, 에너지 관련된 전시관이었다. 다행히(?) 아직 아이가 이해하기에 어려운 개념들이어서 1층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둘러봤다. 그래도 소금의 분자도 만들어보고, 자전거를 굴려 전기에너지도 만들어보고, 세균을 때려잡는 게임도 해보고, 유전형질 선택해서 엄마 아빠 닮은 아이도 만들어보고... 할 건 다 했다.
그렇게 입장한 지 5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나에겐 아직도 마냥 귀엽기만 한 꼬맹이가 어느새 과학관 1층을 씹어먹어 버리는(?) 어엿한 초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1-2시간 구경하고 산책이나 할까 했던 생각은 처음부터 가당치도 않았던 것이다. 나는 입버릇처럼 아이를 키우며 "얼른 키워서 장가보내야지" 했었는데, 이젠 무서워서 그 말을 못 하겠다. 이러다 갑자기 어느 날 "어머니, 결혼하겠습니다." 해버리면 어쩌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과학관을 나오는 길.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고, 발바닥이 아파오기 시작하던 그때. 아이가 과학관 정문을 나서며 말했다.
우리 다음 주에 또 올까요?
엇. 아니야. 그건 아닌 것 같아. 그렇게 빨리 다시 오면, 오늘만큼 재미있게 보지 못할 수 있어. 다른 데도 재미있는 데 많으니깐, 엄마가 한번 찾아볼게. 여기는 시간 좀 지나고 나중에 또 와보자. 어때?
다급하게 손사래 치며 말리는 나를 아이가 빤히 쳐다본다. 하아... 너의 눈을 보고나니 어쩌면 난 다음 주에 또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네가 그렇게 좋다면 그래야지. 다만 다음에 올 땐 밥을 더 든든히 먹고 오는 게 좋겠어.
그래! 모두가 꽃놀이 갈 때, 우리는 과학관에 가자.
행복한 네 얼굴을 보니, 이것도 꽤 괜찮은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