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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진 Apr 16. 2022

1년에 한 번, 눈이 부셔 슬픈 날

REMEMBER 20140416

지독한 입덧을 견디던 어느 날 아침, 어쩐지 개운하게 잠에서 깨어났다.


드디어 입덧이 끝인가?
그런데 이렇게 하루아침에 뚝 끊긴다고?


역시. 그럴 리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찾아간 병원에서 나는 더 이상 심장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그날로 바로 수술대 위에 오르며 임신을 ‘종료’하게 됐다.


12주.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이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의사는 위로했지만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이따금씩 배를 어루만지며 멍 때리다 보면 힘없이 눈물만 흘렀다.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특별히 슬퍼하거나 힘들어하진 않았다. 그저 무기력하고 멍하게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으며 기계처럼 일하는 기분이었을 뿐. 사람들과 먹고 이야기할 땐 그럭저럭 즐거웠지만,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나 남편 없이 혼자 시간을 보낼 때면 세상이 멈춘 듯이 몸을 움직이지 않았던 것 같다. 누워서 눈물만 흘렸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해서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뉴스속보가 떴다. 제주도로 향하던 배가 사고 났고 그 배에는 고등학생 아이들이 타고 있으며 현재 구조하고 있다는 뉴스였다. ‘큰일이네, 그래도 금방 구조되겠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급한 일부터 처리하며 업무를 시작했다.


점심때였나,  먹다 식당에 켜놓은 TV 통해 아이들이 모두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확인했다. “다행이네. 시간 지나면 애들한테 엄청  추억이 되겠는걸. 나도 어렸을   친구들이랑 산에 갔다가  잃어서 헬기  적이 있었거든…” 하면서 커피까지 야무지게 마시며 오후 근무를 이어갔다. 유난히 바빴고 회의가 많은 날이어서 숨도  쉬고 일했던 기억이 난다.


퇴근길. 남편과 만나서 오랜만에 즐겁고 맛있게 외식을 했고 그날따라 엄청 수다를 떨었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 점심에 뭘 먹었는지, 주말에 뭘 할지, 올해는 어디로 휴가를 가면 좋을지 등 남편도 나도 오랜만에 찐으로 기분 좋게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 근데 아까 보니깐 사고 난 거 같던데 애들 다 구조됐나? 하루 종일 바빠서 확인도 못했네.
웅. 아까 전원 구조됐다고 속보 뜨던데.
그래? 한번 확인해 봐야겠다.


그리고는 남편이 핸드폰 몇 번 터치해서 확인하더니 한숨을 크게 쉬며 이렇게 말했다.


자기야, 뉴스 보지 마. 알겠지? 오늘은 보지 말자.


뉴스를 보지 말라고? 뭐야  불길함틀리길 바랬던  예감은 결국 맞았고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나는 으로 맞닥뜨렸다.


나는 고작 12주였다. 그런데도 아이를 잃으면 이렇게 아픈데, 18년 가까이 키워온 아이를 갑자기 잃으면 도대체 그 슬픔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세상을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회사에서는 별 다를 것 없이 지냈지만, 집에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정말 많이 울었다. 그 아이들의 죽음이 나의 유산과 오버랩되면서 애써 태연하게 넘기고 싶었던 슬픔이 수면 위로 올라와 터져 버렸다. 어떤 날은 참지 못해 목놓아 울고 또 어떤 날은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내고는 밤에 자다 일어나서 멍하니 앉아 울기도 했다.


8년이 지났지만 4월 16일이 되면 여전히 나는 슬프다. 그때 많이 아파했던 내 마음이 기억난다. 그리고 언제 다시 내 아이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이제는 두려움까지 느낀다. 난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닌데, 세월호 사건이 터진 4월 16일 하루는 아침부터 밤까지 모두 다 기억이 난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잊지 않는 것뿐이라, 내 손목엔 여전히 노란 팔찌가 자리하고 있다. 고무줄이 늘어나면 미리 사둔 새 걸로 교체하며 8년을 내 몸 같이 함께한 팔찌를 보며 오늘도 마음으로 빌어본다.


사건의 전말이 한 치의 의심 없이 다 밝혀지고, 오직 너희가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난 것을 애도하는 데 온 마음을 다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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