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땅의 프리랜서 (3) 세상에 나를 뿌리는 방법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작성하고 나니 빨리 어딘가에 뿌려보고 싶은 마음이 급격하게 커졌다. 아이들이 스스로 만든 무언가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이런 것일까. '잘 포장된 나'를 세상에 보였을 때 그 반응이 어떨지 너무 궁금했다. 과연 나는 세상에 통할 것인가, 그저 그런 잉여인력으로 남게 될 것인가.
일에 있어서 나의 가장 큰 장점은 피드백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일하는 순간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털어 넣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든 결과의 대부분은 '내가 이보다 더 이상 잘할 수는 없을 정도'로 몰입하여 만든다. 그래서 피드백이 부정적이어도 내 한계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이나마 수월하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된다고? 그럼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인가 보네' 하고 말이다. 포기는 빠르지만 자책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피드백이 간절했다. 내가 직진해도 될 것인지, 아니면 원점으로 돌아가 나를 다시 돌아봐야 하는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했다.
인맥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역시 '검색'이었다. 먼저 '프리랜서'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사이트 중심으로 찾아봤다. 정신없이 검색창을 휘젓다 보니 구직 사이트도 크게 2개의 카테고리로 구분 지을 수 있었는데, 첫 번째는 회사가 인재를 찾는 사이트(사람인, 원티드, 링크드인, 잡코리아 등) 그다음은 인재가 job을 구하는 사이트(크몽, 숨고 등)였다.
내가 익숙한 사이트는 사람인이나 잡코리아, 인크루트 등의 전문 구인-구직 사이트였으나 이곳의 구인 공고는 프리랜서가 일을 구하기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알만한 회사에서 정해진 포지션의 정규직을 뽑는 공고가 대부분이었고 내가 찾는 포지션과 업무 조건은 찾아보기 힘들뿐더러 프리랜서 구인 공고는 거의 없었다.
그에 반해 요즘 핫한 프리랜서 마켓인 크몽이나 숨고 등의 경우, 프리랜서 중심의 사이트라 그런지 훨씬 유연하고 다양했다. 하지만 나를 하나의 '상품'으로 내보이기 위해 작성해야 하는 것들이 꽤 많았고 그 항목을 모두 채우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으며 첫 거래를 트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불과 몇 달 전, 내가 클라이언트였을 때도 리뷰가 많은 프리랜서 위주로 작업 요청을 했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시간에 매우 쫓기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퀄리티보다는 단가와 시간을 절약해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는 것도 어려웠지만, 내가 원하는 곳을 찾는 건 더 어려웠다. 이대로는 내가 원하는 job을 구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답답한 마음에 유튜브를 뒤져봐도 프리랜서로 일을 구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인맥 활용'이라는 내용만 가득했다.
이젠 어쩐다..
답답한 마음에 스크롤을 벅벅 내리면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갑자기 눈에 들어온 한 가지가 있었다.
'인사 담당자 메일 주소'
오호... 어차피 구인 공고를 냈다는 건 정규직이든 파트타임이든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니깐. 메일이 공개되어 있는 담당자를 찾아 직접 다이렉트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확률이야 훨씬 낮겠지만 손 놓고 있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그리고 혹시 알아? 진짜 만약에... 그중에 내가 궁금한 사람(업체)이 생긴다면 업무 조건은 추후에 서로 협의할 수 있을지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이게 낫겠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퍼뜩 들었고 ‘프리랜서’와 ‘재택근무’를 필터링해서 구인 공고를 쭉 나열해봤다. 그중에 내가 원하는 분야를 한번 더 거르고 최종적으로 남은 구인 공고를 정독하기 시작했다. 기준은 딱 2가지였다.
나를 필요로 할 만한 곳인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인가?
보수는 그다음이었다.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2가지 조건만 맞으면 내가 작성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뿌리기로 결심했다.
가장 먼저 구인-구직 사이트 내에 담당자의 이메일 주소가 오픈되어 있는 경우, 메일 주소로 바로 보냈다. 또 이메일 주소는 오픈되어 있지 않으나 관심이 가는 회사의 경우, 검색창에 회사를 검색하고 사이트 내에서 담당자 메일 주소를 찾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앞서 검색한 회사와 연관 검색어로 뜨는 회사나 비즈니스가 있을 경우, 구인 공고가 따로 없어도 담당자 메일 주소만 확인되면 그냥 보냈다.
물론 이에 앞서서 모두가 하는 방법은 빠뜨리지 않고 다 했다. 각 채용 사이트마다 구직자로 나를 등록했고, 누구든지 열람할 수 있도록 오픈해두었고 사이트 내에서 지원해보고 싶은 회사나 포지션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지원했다.
또 하다 보니 이력서나 포트폴리오를 각 회사마다, 포지션마다 조금씩 수정해서 보내고 싶은 욕심도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래서 매일 수정해서 보내고 또 수정해서 보내다 보면 어느새 아이의 하원 시간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가진 능력이 특별하지 않고 도와줄 사람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렇게 매일 부지런히 나를 뿌리고 또 뿌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1-2달쯤 흘렀을까. 뜨거운 늦여름이 지나고 제법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가 시작될 무렵쯤이었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울렸다.
혹시 000님 이신가요?
메일로 보내주신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통화 괜찮으실까요?
'아, 통했다! 이제 됐다!'
드디어. 마침내.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