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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Oct 31. 2020

만리향, 당신의 마음을 끌다

행복은 알아차림이다.


어느덧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가을이 다 가는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나는 이번 가을을 충분히 느꼈다.

만리향 꽃을 알아차리고, 그 꽃향기의 향긋함을 듬뿍, 한껏 느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산책을 나갔다. 집 근처의 공원으로. 그 공원의 수변을 따라 길을 걷는데 어디에선가 향기가 났다. 그 향기를 맡는 순간 나는 향기와 함께 내 중학교 시절이 오버랩되었다.


초가을에 춘추복으로 갈아입고 나른한 오후의 청소시간에 내 담당 구역 청소를 끝낸 후 창문이 활짝 열린 교실에 앉아 있었다. 그날, 어디에선가 향긋한 꽃향기가 창문을 넘어 1 분단 중간 어귀 걸상에 걸터앉아 있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처음 맡아본, 바람결에 숨어 나에게로 날아온 그 향기가 너무나도 향긋해 그 향기의 정체를 알고 싶어 창문 밖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렇다 할 꽃을 찾지 못했다. 멀리서, 앉은자리에서 창문 너머로 고개를 쭉 빼고 둘러보았지만 눈에 띄는 꽃은 없었다. 그렇게 이름 모를 향기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가진 채 그해 가을을 보내버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래, 이 향기! 그땐 찾지 못한 향기의 정체를 이번에는 꼭 찾고 싶었다. 어떤 나무인지, 꽃인지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바람에 섞인, 숨은 향기를 향해 움직였다. 그렇게 나는 날마다 걸었던 똑같은 코스를 벗어나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그 길에는 평소에는 보지 못한 다른 풀들이, 꽃들이, 햇빛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연히 만난 선물 같은 풍경을 감상하며 더욱더 짙어진 향기를 따라 산책로를 걸어 들어갔다. 그곳에는 여러 나무들이 있었다. 분명 이곳 같은데... 나무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녹색 나뭇잎 사이에 아주 작은 주황색 꽃이 달려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꽃은 진한 향기만큼의 화려한 생김새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 꽃이 정말 그토록 나를 이끌었던 그 매혹적인 향기의 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수수하였다. 나는 바로 코를 가져다 댔다.


“아, 너구나! 너였구나!”  


그 이후로 산책을 나갈 때마다 만리향 나무 자리는 발길을 꼭 들르는 곳이다. 가끔은 만리향의 향기를 맡는 것이 산책의 목적이 될 때도 있을 만큼 산책할 때마다 일부러 찾아가 꽃에 코 끝을 대고 향기를 흠뻑 느꼈다. 그럴수록 향기는 짙어졌다. 짙어진 향기와 함께 나의 행복도 점점 짙어져 갔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공원에서 향기를 찾아다녔던 습관은 나의 생활의 일부분 속으로 깊게 들어오게 되었다. 이제는 공원을 넘어 거리에서 주변에서 만리향 향기가 바람을 타고 살짝 불어올 때면 그 자리에 잠시 서서 그 향기를 맡았다. 만리향 향기가 바람에 묻혀 살짝 스쳐도, 슬쩍 내 주변에 맴돌아도 만리향이 곁에 있음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향기를 맡을 때마다 행복했다. 그렇게 나의 온 가을이 향기로 그리고 행복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행복도 그만큼 가까이, 그리고 자주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만리향의 꽃말은 ‘당신의 마음을 끌다’라고 한다.


희미하게 주변에 흩뿌려져 있던 향기를 온 신경과 마음을 쏟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 결국 그토록 나를 이끈 그 향기가 바로 만리향 향기라는 것을 알아차렸듯이 행복도 바로 만리향 꽃을 찾는 일과 같지 않을까? 늘 불명확하고 불확실하지만 내 마음을 끄는 일은 언제나 주변에 아른거려있다. 만리를 넘어서까지 내 마음과 발길을 이끈 그 향긋한 향기의 꽃이 만리향 주황색 꽃임을 알아차렸듯, 행복도 눈 앞에 드러나도록, 드러날 때까지 시간과 정성을 들이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은 그저 내 주변을 살짝 맴돌기만 하는 아련한 행복의 모습이지만 언젠가는 반듯이 행복의 선명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혹 지금, 만리 떨어진 무엇으로부터 향긋하지만 조금은 희미한 향기를 느끼고 계시나요? 그렇다면 오늘 그 향기를 따라 한 발짝 다가가는 하루를 보내보면 어떨까요?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다 보면 나의 마음을 그토록 이끈 향기가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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