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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May 23. 2023

왜 나는 늘 감정 조절에 실패하는가

체력이 곧 의지력이다.

© anniespratt, 출처 Unsplash

 주말부부인 나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향하는 금요일 퇴근길마다 굳게 다짐하는 것이 있다. 주말 동안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사실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백 번을 잘하는 것보다 한 번을 실수하는 게 더 임팩트가 크기 때문에 아내와 아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다정하고 자상하게 가족을 대하는 것이다. 특히 주말 내내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다양한 사건이 많이 발생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아이에게 노골적으로 나의 부정적 감정을 드러내지 말자고 결심한다.


 지난 일요일에 나는 또다시 감정 조절에 실패했다. 평일에 직장 생활과 육아를 동시에 하느라 자유 시간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웬만하면 주말 동안은 아이와 함께 일상을 보내려고 한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정말 즐겁고 행복하다. 고슴도치 아빠인 나의 입장에서 아들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어도 전혀 심심하지 않다. 토요일은 당진도서관부터 시작해 송악 복지관까지 하루 종일 아이와 나들이를 다녔다.


 일요일에도 나와 아들의 여정은 계속되었다. 오전부터 삼선산 수목원으로 우리 가족 모두 총출동을했다. 전 날 충분히 수면을 취했음에도 집으로 돌아오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늦은 점심 식사 후에 잠시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앉아 있는 상태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20분 정도 낮잠을 잤나? 아들이 놀이터에 나가자고 나를 깨웠다. 비몽사몽의 상태로 아이자전거를 끌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몇 시간 후면 대구로 내려가야 한다. 이별 전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몸은 꽤나 피곤했다. 신체적인 피로로 인해 정서적으로도 빨리 지쳤다. 게다가 바깥 상황도 좋지 않았다. 오전보다 바람이 훨씬 거세졌다. 코가 선천적으로 약한 아이가 강한 바람으로 인해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이 들었다. 역시나 강풍으로 인해 놀이터에 아무도 없었다. 대신 아들은 놀이터를 중심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나는 운동한다고 생각하고 자전거를 타는 아이 뒤를 쫓아 달렸다. 열심히 폐달을 밟고 있는 아들의 뒷모습만 보아도 든든했다.


 그때 자전거를 탄 어린이 두 명이 나타났다. 초등학생 3학년 정도 되는 어린이들이 아들에게 접근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몇 번 봤던 학생들이다. 그중 한 명은 몇 주 전에 아이의 장난감을 빼앗아 숲으로 집어던져 나를 놀라게 했다. 당시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어떤 대처도 하지 못했다. 나쁜 선입견을 갖고 있었지만 아이 혼자서 노는 것보다는 형들과 같이 어울리는 것도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한 아이의 보호자인 내가 버젓이 있으니 아들에게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거라는 자신도 있었다. 그들은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서로의 자전거를 자랑하며 티격태격하던 그들이 갑자기 말싸움을 시작했다. 아들도 형들의 짖궂은 장난에 가만히 있지 않고 받아쳤다. 그 때 초등학생 중 한 명이 아들을 밀어서 넘어뜨렸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깜짝 놀란 나는 바로 아이들을 말렸고 아들을 보호했다. 서로에게 과실이 있다고 판단해 아들과 초등학생들 모두에게 사과를 하게 했다. 형들과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생각에 아들을 데리고 다른 놀이터로 갔다. 그런데 그들이 계속해서 우리 뒤를 쫓아오는 것이었다. 아들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혹시 저 형들이 따라오는 거 불편하니?" 그러자 아들이 답했다. "형들이 나 괴롭히는 것 같아. 형들이랑 같이 놀고 싶지 않아."


 아들이 싫어하는 티를 내도 그들은 아이에게 계속해서 대거리를 시도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섰다. 어린이들에게 정중하게 부탁했다. "아저씨 아들이 지금 너희들과 같이 노는 것을 불편해하는 것 같아. 더 이상 우리 아들에게 말을 안 걸었으면 좋겠어. 둘이서 다른 곳에 가서 놀면 안 될까?" 당돌하게도 그들은 자기들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 간섭하지 말라고 했다. 결국 그들은 놀이터까지 따라왔다. 아들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하자 나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피곤함이 몰려오자 더 이상 친절한 이웃집 아저씨 역할이 힘들어졌다. 아이들의 말을 계속해서 받아주기가 버거워 이제 아저씨께 그만 말을 걸고 너희들끼리 놀아라고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 innernature, 출처 Unsplash


 결국 내 감정은 놀이터에서 폭발했다. 저음의 엄격한 목소리도 통하지 않자 이제 10살밖에 되지 않는 어린이들에게 "아저씨한테 말 그만 하라고 했잖아. 뭐 이런 것들이 다 있어."라고 화를 낸 것이다. 중고등학교에서 근무하면서도 학생들에게 화를 내거나 큰 소리를 지른 적이 없던 내가 고작 10살 어린이들에게 고함을 지르다니. 그제야 그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우리 부자 곁을 떠났다. 화를 내고 난 뒤에 바로 현타가 찾아왔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어린이들에게 화를 냈던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3년이란 시간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나란 인간은 고작 이 정도구나 하는 자기 혐오의 감정까지 생겼다. 욱하는 성격과 갑자기 솟아오르는 화를 다스리지 못해 괴로웠다. 학생들 앞에서 나는 성숙하지 못한 어른이었고, 아들 앞에서 나는 어리석은 부모였다.


 우리는 자신의 성질대로 홧김에 말을 내뱉거나 일을 저지르면 대부분 후회를 하게 되어있다. 운전을 하며 대구로 내려가는 내내 그 순간이 떠올라 괴로웠고 어린이들에게 미안했다. 그들이 엄연히 약자였기 때문에 내 성질머리대로 행동한 것 같아 더욱 부끄러웠다. 왜 이렇게 감정은 제어가 되지 않을까? 3년 동안 감사일기를 썼음에도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동들에게 고함을 지르는 부끄러운 행동을 했다. 사실 화가 나는데 그 순간 감사할 것을 찾아 분노의 감정을 억누른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발상이기는 하다.


 그럼 어떻게 하면 부정적인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을까? 확연하게 약자인 어린이들에게 화를 내는 부끄러운 행동을 멈출 수 있을까? 김경일 교수는 '적정한 삶'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의지에는 총량이 있다고 밝힌 바가 있다. 의지력이 충만할 때는 참고 인내할 수 있었던 일도 의지력이 떨어지면 쉽게 감정을 드러내버린다. 결국 의지력이 중요한데, 그것은 또한 체력과 연결된다. 생각해 보니 결국 체력이 문제였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면서 체력을 비축해야 의지력도 올라간다. 주말 동안에는 모든 의지력을 가족에게 쓰기 위해 대부분의 루틴을 간소화했다. 하지만 이제는 주중에도 루틴 조절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결국 주중의 피로가 주말에도 영향을 주었다.


 지금 나는 '마이 루틴'이란 앱을 사용하고 있다. 매일 수행하는 루틴이 총 27개이다. 그중 많은 의지력을 소모하는 주요 활동으로 '헬스장 아침 운동, 중요한 업무 세 가지 정리 후 수행하기, 저녁 러닝 하기, 1시간 이상 책 읽기, 블로그 글쓰기, 감사 일기 쓰기, 16시간 간헐적 단식, 영화 인턴 영어 쉐도잉하기' 등이 있다. 모두 내가 원해서 하고 있는 활동이지만 하루 종일 쫓기는 기분으로 루틴을 수행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나와 10년 후의 나에게 정말 필요한 활동이 무엇인지 잘 고민한 다음에 루틴의 수를 줄이고자 한다. 자기 계발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정하고 자상하고 안온한 남편과 아빠, 선생님, 동료, 선배, 후배, 동네 아저씨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의지력을 언제나 조금은 남겨 놓아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의지력을 항상 남겨두려면 최선을 다하는 삶을 경계해야 한다.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도 좋다. 하지만 그 욕구가 욕심이 되어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단계까지 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오늘은 감정 조절에 실패한 나를 되돌아보며 쓰는 일종의 반성문이다. 이제 이런 종류의 반성문은 그만 쓰고 싶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고 인정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이것이 글쓰기가 지닌 최고의 효능이라 생각한다. 이 글은 오늘의 나와 미래의 자신에게 쓰는 글이다.


 글을 쓰면서 여러 책과 강연을 통해 알고 있던 노하우를 되새길 수 있었다. 먼저 의지력을 어느 정도 남겨두기 위해 일상 루틴을 조정할 것이다. 더 많은 의지력을 필요로 하는 주말에는 과감하게 대부분의 루틴을 내려놓을 것이다. 책 '원씽'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내가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찾아 그것에 집중하자. 이렇게 글을 쓰며 반성하는 과정을 통해 나의 감정을 지혜롭게 표현할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의 삶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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