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가족인 아이가 확진이었지만 나는 월요일에도 그렇고 어제까지만 해도 증상이 없고 자가검사키트를 해봐도 음성이어서 출근을 했다.
우리 회사 방침상 동거가족 확진이어도 본인이 증상이 없고 신속항원검사 음성이면 출근을 할 수 있어서 그렇기도 했다.
무엇보다 요즘 우리 법무쪽 인력난이 너무 심하고(새로 채용을 해야 하는 상황) 배정된 검토 건이 너무 많아서 출근을 반드시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매일매일 바쁘게 계약서와 자문 건을 쳐?내고 전화를 돌리고 소송자료를 송부하고 준비서면 검토에 기일 체크까지..
부수적인 계약서가 십여개인 대출약정서는 왜 또 그리 자주 오는지..
이미 로펌에서 작성을 완료한 것이라 그냥 패스하고 싶지만 또 안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몇백페이지를 훑듯이 보면서 구조를 파악하고 유의문구를 넣어서 검토회신을 했다. 스스로 조금 부족하다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정도 부족함을 따질 때가 아니다.
그리고 또 위원회 심의 업무도 있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코를 세게 찔러서 자가검사키트 후 음성임을 확인 후 위원회에 들어갔었다.
아 물론 위원회에서도 철저히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위원들이 함께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신 것도 아니어서 전파 위험성은 거의 없을 거라 사료되지만 위원회가 끝난 후 본격적으로 머리가 아프고 목이 잠기고 몸살기운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오늘까지 부서에 로펌 의견을 회신주기로 한 것이 생각나서 회신온 로펌 의견을 일단 부서에 전달하는 것까지 끝마쳤다.
그러나 증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도저히 안되겠어서 주변 이비인후과에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했는데, 오전과 똑같은 검사 키트인데 이번에는 양성 표시가 선명한 것이 아닌가!ㅠㅠ
의사선생님께서는 열도 38.5도이고 지금 매우 힘든 상황 같은데 겉으로는 괜찮아 보인다며 어떻게 버티셨냐고 한다.
그러면서 급성 축농증으로 진행되는 것 같으니 약 처방을 일주일간 해주고 격리를 하란다..
병원을 나서면서 어제 오늘까지도 급히 처리한 일들이 떠올랐다.
물론 현재의 인력난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때문에 나는 그토록 일에 얽매이면서 그 일들을 모두 처리하려고 그토록 애를 쓴 것인지..
스스로에 대한 약간의 연민의 마음이 일면서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가 아프면, 그리고 잠재적인 감염 위험성이 있으면 용감?하게 쉰다고 했어도 될 것을..(이제는 안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돌아간다는 것을..), 그리고 위원회 역시 내가 안가더라도 의사 정족수를 채울 수 있으니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는 불참을 했어도 됐을텐데.
나는 막중한 책임감에 사로잡혀 또다시 내몸을 혹사시키고 고열에 급성축농증이 오도록 일을 했다.
이렇게 빛이 나지 않는 일을 묵묵히 처리한다고 해서 누구 하나 알아주는 것도 아닐텐데.. (이번 재계약을 하면서 확실히 느꼈다. 세상은 빛나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아프면 쉴 권리 위에서 잠잔 것 같은 스스로에게, 내 몸에게 미안했다.
물론 회사의 인력난은 심각하기는 하고 다른 팀원들에게 미안하고 증상도 이틀간은 거의 없어서 꾸역꾸역 출근하기는 했지만 좀 더 일찍 병원가서 검사를 받고 미룰 수 있는 일들은 유도리있게 미루고 몸 상태가 악화되기 전에 쉬었더라면 지금보다는 몸 상태가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까 몸이 바닥으로 꺼져 버릴 것 같은 피로감과 몸살기운이 느껴졌을 때 나는 미련한 나 자신에게 사과의 목소리를 건넸다.
(다행히 지금은 처방약을 먹고 한결 몸이 좀 괜찮아졌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회사일 잊어버리고 당분간은 몸조리에만 신경쓰자, 내가 먹고 싶은 맛있는 음식도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고 몸이 좀 나아지면 그동안 못봤던 소설책도 좀 읽자”며..
내가 나를 먼저 챙기지 않으면 누구도 내 건강을 책임져주지 않기에.
그리고 나는 아이 엄마니까 아이를 위해서라도 더 건강을 챙겨야 하니까.
일주일간은 그 놈의 책임감은 마음 서랍 깊숙한 어딘가에 좀 넣어두기로 하며..
오로지 내 건강만 신경쓰기로 다짐해본다.
#그래야할텐데 #실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