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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틴이 부족할 땐 남영동으로

5. <남영동 돼지고기 맛집> 편

by 언씨

3/3 휴재공지

개인적인 이유로 당분간 휴재예정입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를 인상 깊게 시청했다.


원래 미식에 관심이 있는 편이기도 했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요리사들이 나와서 음식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며 경쟁하는 플롯이 꽤 재밌었다. 그래서 나 또한 당시 많은 열혈 시청자들이 그랬듯이, 시청 후에 프로그램에 출연한 셰프들의 식당에 방문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방 출신의 나에게 서울의 예약 웨이팅 전쟁은 서울 생활이 3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무리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 없는 영역 중 하나였고, <흑백요리사> 식당은 감히 도전해 볼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지인들의 흑백요리사 방문 후기를 들으며 상대적 박탈감... 을 느끼던 와중에 눈에 띄는 것이 있었는데, 흑백요리사에 등장한 셰프들의 식당 중 다수가 용산구, 특히 남영동 일대에 모여있다는 것이었다. 기억 한편에 남영동 근방인 삼각지역과 숙대입구 부근에 회식이나 모임으로 들렀던 식당들이 대개 만족감이 높았던 것이 떠올랐고, 이러한 나의 데이터들과 다수 미디어의 영향으로 내 뇌리 속에 자연스레 남영동 = 맛집 동네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그 이후, 내 회사와 집 중간쯤에 위치해 접근성도 좋고, 함께 술을 곧잘 마셨던 지인들도 근처에 다수 거주했던 이유로 남영동에 꽤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큰 대로변에서 한 블록 안으로 들어가면 골목골목에 늘어져있는 층계가 낮은 건물들을 마주할 수 있는데, 이 골목들에 숨은 맛집이 한가득이다. 그중에서도 오늘 스트레스를 만땅으로 받은 당신을 위한 단백질 제대로 충전할 수 있는 돼지고기 맛집 두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1. 특급 숯불, 특급 가브리살 <남영돈>


고기류를 특히 좋아하는 나는, 아무리 익숙해지지 않는 극한의 난이도의 웨이팅에도 맛있는 고기라면 꾹 참고 기다리곤 하는데, 사람들이 으레 서울 3대 고기 맛집이라고 묶어 부르는 약수 <금돼지식당>, 삼각지 <몽탄>, 남영동 <남영돈> 이 세 가지 식당을 모두 경험해 본 나름의 자부심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금돼지식당>을 방문했을 때는 야외에서 무려 4시간이 넘는 웨이팅을 불사했었고, 비교적 최근에 방문한 <몽탄>은 저녁 시간대에 딱 맞춰 입장하기 위해서 오후 12-1시 사이에 방문으로 웨이팅을 걸어야 했었다. 물론 두 곳 모두 훌륭한 식당이었지만 입안에 들어오는 만족감이 아무리 크더라도, 시간의 가치가 때론 더 소중한 나로서는 이 맛을 느끼기 위해 온전히 써버려야 했던 매몰비용인 '웨이팅 시간'때문에 그 만족감이 반감되곤 했었다.


남영동에 위치한 <남영돈>의 감동적인 맛에 대해서는 지인들에게도, 미디어에서도 많이 보고들은 터라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었지만, 현장 웨이팅만 가능한 업소의 정책은 나를 매번 주저하게 만들었다 (두 번 정도 시도한 적도 있으나 항상 대기 마감이었다). 6시에 저녁을 먹기 위해서는 도대체 얼마나 일찍 웨이팅을 걸란 말인가...라는 자조 섞인 생각들과 그래도 한 번쯤은 정말 먹어보고 싶은데... 하는 나의 열망이 뒤섞여 있던 어느 날이었을까.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점심때를 놓친 3-4시경 이른 저녁을 먹어야 했다. 어김없이 용산구에서 뭘 먹을지 궁리하던 나는 일행에게 번뜩 떠오른 남영돈을 제안했고, 캐치테이블 어플 속에 쓰인 '웨이팅 0팀'은 우리를 곧장 남영돈으로 향하게 했다 (오죽하면 그 사이에 웨이팅 생길까 봐 따릉이를 빌려 타고 부리나케 달렸다).


주말 웨이팅 0팀의 남영돈은 아직 그 맛을 보지 않았지만 충분히 나를 열광하게 했고, 착석하자마자 메뉴판을 보고서는 그 맛의 우위를 가리기 힘들다고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쫀득쫀득 가브리살, 육즙 가득 삼겹살, 탱글탱글 목살을 각 1인분씩 주문했다. 테이블은 미리 세팅되어 있었는데, 각종 소스류와 젓갈 그리고 절임류들이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특히 조개젓갈과 가리비젓갈 소스가 함께 제공이 되는데 다양한 소스를 다 맛보며 본인의 베스트 조합을 찾아가는 게 이 집의 특징 중 하나이다. 또, 이 집은 주문 즉시 들어오는 뜨거운 숯불이 정말 인상적이다. 참숯 백탄이 가득 들어있는 화로는 그 열기가 어마어마한데, 이 직화불에는 쫀드기를 구워도 고기맛이 나겠구나 싶은 위엄을 자랑한다.



가브리살은 돼지 등심과 목살의 중간쯤 위치한, 지방층과 살코기층이 명확히 구분되는 부위이고 그 양이 많지 않아서 정말 맛있는 가브리살을 맛보려면 제대로 도축한 고기를 쓰는 집을 찾아가야 한다. 남영돈의 고기는 비록 포션은 적을지라도 선홍빛 색깔이 신선함을 입증한다. 엄청난 화력의 숯불에 빠른 손목으로 고기를 구워주시는데, 이때 놓치지 않고 소주를 한병 주문하길 바란다 (한라산 소주도 판매하고 있으니 페어링 하시길 추천합니다). 함께 기본으로 나오는 김치찌개는 기본 반찬답지 않게 가득 들어있는 고기와 깊은 국물 맛이 본격적인 푸드파이팅을 시작하기 전에 소주 한잔과 예열하기 좋다.



개인적으로 삼겹살과 목살도 겉바속촉하게 구워져 여타 돼지고깃집보다 훨씬 좋은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남영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 입은 소주 한잔을 목구멍에 털어 넣은 뒤 바로 느낀 숯불향 가득 머금은 쫄깃 탱탱한 가브리살이었다.



남영돈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한다면 특유의 고기에 가득 배어 있는 참숯 백탄향이 소주와 정말 정말 궁합이 좋아서, 한 점 먹기 전에 통과의례처럼 무조건 소주 한 잔을 원샷하게 된다는 점인데... 자칫 잘못하면 힘들게 3시간 웨이팅 하고 30분 만에 만취할 수 있으니 정말 조심해야 한다. 업장의 조도도 꽤 어두운 편이라 잘 취할 수 있는 환경이니 꼭! 정신줄 붙잡고 육향을 마음껏 느끼며 소주를 즐기길 바란다.


2.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원동미나리삼겹살>


나의 부모님은 현재 양산에 거주하고 계신다. 양산하면 원동, 원동 하면 매화 축제와 미나리 축제인데, 날씨가 슬슬 풀리는 3월쯤 양산 원동 지역에 미나리가 많이 재배되어 이를 삼겹살과 곁들어 구워 먹는 집들이 늘어나며 자연스레 미나리축제가 형성됐다.


몇 년 전, 대학 시절 어머니를 따라 원동 미나리 축제에 방문한 기억이 있다. 낙동강변에 위치한 삼겹살 집은 낭만적인 뷰와 투박한 삼겹살, 그리고 산처럼 쌓아주는 무한리필 미나리가 어우러져 멋과 맛 모두 만족스러웠다. 특히, 미나리 축제답게 시들한 미나리가 아닌, 그렇게 싱싱하고 대가 굵으며 향이 진한 미나리를 거의 처음 접해 봐서 역시 제철음식을 원산지에서 먹는 것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처음 남영동에서 원동미나리삼겹살이라는 간판을 마주했을 때는 괜히 타지에서 고향친구를 마주친 것만큼 반가웠다. 서울에서는 양산, 특히 원동이라는 지역은 보통 사람들에겐 생소할 텐데 더도 덜도 아닌 <원동미나리삼겹살>이라는 네이밍은 사장님께서 어느 정도 우리 지역에 연고가 있다거나 최소한 방문해보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고, 지역특산물을 이름으로 내걸 만큼의 자부심이라면 그 퀄리티에 있어서는 자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집은 입구부터 고수의 향기가 난다. 체리색 바닥과 몰딩들, 그리고 그와는 상반되는 초록 원형 탁자는 왠지 모르게 20년 전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고급화되어 '레스토랑'에 가까운 요즘 고깃집들과는 다르게 십몇 년 전, 주말 저녁 가족들의 손을 잡고 방문했던 정겨운 삼겹살 집의 분위기인데, 이런 분위기는 뭔가 모르게 긴장감을 풀어준다.



이 집의 특이한 점은 미나리뿐만 아니라 숙주를 산처럼 쌓아 주시는데, 투박한 삼겹살과 거대하고 싱싱한 미나리, 그리고 김치와 숙주를 함께 구워서 먹으면 이 집은 메인이 삼겹살이 아닌 야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타 삼겹살 집보다는 조금 더 많은 지방층에 자칫 느끼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삼겹살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기름에 절여 구워진 야채를 씹노라면 아.. 사장님은 다~ 계획이 있구나 하는 깨달음으로 도달하게 된다.



소주와 함께 고기와 야채를 마음껏 먹다 보면 한국이라면 언제나 그렇듯이 K-디저트라고도 할 수 있는 식사류가 당기기 시작할 텐데, 이 집에 방문한다면 오이소박이 냉국수 주문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두툼한 중면에 시원한 냉육수가 새콤달콤하게 어우러지고 거기다 듬뿍 올라간 열무김치와 오이소박이까지 먹다 보면 이보다 좋은 소주안주가 있나!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집은 이 국수 때문이라도 개인적으로 겨울이 아닌 날이 풀리기 시작하는 봄 여름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다고 합니다



번외) 또 방문하고 싶은 남영동 프로틴 충전소

1) 초원 - 우설로 유명한 소고기 맛집, 대패처럼 얇게 썰어주는 한우등심주물럭이 입에서 살살 녹는 곳, 고기 먹고 무조건 초원볶음밥을 주문하세요

2) 화양연가 - 양냄새 하나도 안나는 양갈비 집, 회식으로 방문했으나 지인들과 또간집, 또띠아에 양을 싸 먹는 별미를 맛볼 수 있음, 매콤한 양전골은 완벽한 소주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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