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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니나 Oct 10. 2021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오르페와 나는 교외로의 외출을 계획했다. 나는 오르페를 오랜만에 만나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오르페는 내가 독일에 온 이상 '어느 정도는' 관광할 필요도 있다는 주장을 밀어붙였다. 오르페가 직접 운전하는 자동차로 약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 상점이 운영된다는 로텐부르크Rothenburg였다.     





“이곳은 세계 대전 때 그리 중요한 도시가 아니었던 덕에 전쟁의 참상을 피할 수 있었어. 마을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보존돼있는 곳이야.”     


다사로운 인상을 풍기는 로텐부르크는 유럽 곳곳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의 시초가 된 곳이자 독일 과자 슈니발렌Schneeballen의 원산지로, 해가 쨍쨍한 여름에도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는 유일무이한 마을이다.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는 와중에도 사시사철 열려 있는 크리스마스 기념품 가게를 구경할 수 있고, 갖가지 종류의 슈니발렌 상점들이 즐비한 거리에서 허전한 입을 달래줄 간식을 고를 수 있다.





크리스마스 상점에 들어서자 천장에 닿을 듯 우뚝 솟아있는 전나무가 눈에 띄었다. 갖가지 장식품들로 아름답게 꾸며진 크리스마스트리였다. 상점은 무척 넓었는데,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가상 세계에 들어온 듯한 묘한 분위기가 일었다.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처럼 환상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산타와 루돌프, 천사가 마음에 활기를 주는 작품들로 재탄생되었고, 상점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눈은 어린 시절의 명랑한 기질을 머금은 채 쉴 새 없이 반짝였다. (사진 촬영이 불가하여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다.)





양배추 모양을 한 단단한 독일 과자 슈니발렌은 종류가 무척 다양했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보였던 슈니발렌 상점에는 색색의 옷을 입은 과자들이 잔뜩 진열돼 있었다. 현란한 손놀림으로 과자를 만들고 있는 장인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좇다가, 문득 홀린 듯이 과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슈니발렌이 담긴 갈색 봉지를 한 손에 든 채 이따금 꺼내 먹으며 마을 주변을 둘러싼 성곽을 따라 걸었다. 이미 이곳을 여행한 적이 있는 오르페가 능숙하게 이끌었다. 이야기의 샘은 아무리 퍼내도 동나지 않았으며, 걷고 또 걷는 내내 웃음꽃이 만개했다. 실컷 이야기해도 계속해서 다른 소재들이 떠올랐다. 





성곽을 걷다 꼭대기로 향하는 입구를 발견한 우리는 한달음에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꼭대기에 올라서니 마을을 둘러싼 성곽뿐만 아니라 일렁이는 푸른 숲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벼운 마음으로 마을을 둘러보거나 수다를 떠는 일상적인 행위는 홀로 여행을 시작한 이후엔 소중하다 못해 호화롭게 느껴지곤 했다. 당장 먹을 것과 잘 곳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마을을 둘러볼 여유가 있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오르페와의 작은 여행은 홀로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 지친 여행길―물론 내가 즐거이 그 길을 자초한 것이긴 하지만―에서 우연히 만난 달콤한 샘과 같았다. 다정한 친구와 마주 앉아 식사하며 아무런 걱정 없이 웃고 떠들고, 수다의 장막을 거두지 않은 채로 잠에 빠져드는 모든 순간이 분에 넘치도록 행복했다.





독일에서 꽤 유명한 축에 든다는 뉘른베르크 소시지를 점심으로 먹고, 오르페가 좋아하는 젤라토까지 디저트로 먹은 후에야 슬슬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로텐부르크와 뉘른베르크를 오가는 차 안에서, 시가지와 성곽을 걸으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로 그 분량이 방대하다. 관계를 이어가며 우리가 늘 아쉬워했던 것은 소통의 주된 수단인 프랑스어가 모국어가 아닌 탓에 말하고 싶은 내용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일상적인 대화야 문제없이 할 수 있었지만, 그 내용이 사회적 이슈 또는 의견을 달리하는 토론 수준에 이르면 아무래도 어휘력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가끔 말이 막힐 때면 “내가 프랑스어를 더 잘 말했다면!” 하며 답답해하기도 하였으나, 기본적으로 우리의 대화는 늘 즐거웠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게 있어 골몰하던 것도 잠시, 우린 어김없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며 웃었다. 실제로 우린 마음이 통했다. 언어도 언어지만, 우리에겐 비언어적인 소통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서로의 표정을, 눈빛을, 행동을 읽을 수 있었다. 유창하지 못한 언어는 소통에 방해가 되긴 했으나,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장애물이었다.





우리는 특히 동서양의 문화 차이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럽은 확실히 내가 나고 자란 한국과는 판이한 곳이었다. 프랑스에 도착한 이래 가장 염두에 두었던 건, 소통하는 문화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물론 프랑스가 예의와 존중을 논외로 둔다고 볼 수는 없으나, 예의라는 명목으로 원하는 것을 사양하거나 자기주장을 굽히진 않았다. 겸손과 양보가 미덕인 우리 사회에서 벗어나 본인의 의사를 당당히 드러내는 유럽 사회의 분위기에 적응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나 정도면 당당한 편’이라고 생각하는 게 가능했으나, 유럽 등지에서 온 다양한 친구들은 훨씬 더 명확하고 주체적인 태도로 본인의 생각을 표명했다. 유럽에서 생활하는 동안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것에 밀리지 않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해 왔기에,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는 서양 친구들에게 선망을 느껴온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오르페는 서양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자기주장에 몰두한 나머지 타인을 배려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온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위험하게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유럽인들이 자기주장을 밝히는 수준이 너무 지나칠 때가 있다며, 오히려 어느 정도의 예의와 존중이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결국, 우리는 동양과 서양의 중간 성향을 추구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오르페와의 대화는, 서양 사회의 분위기나 서양인들의 특성을 은근히 선망하던 내게 어느 편이든 장단점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우리 둘은 서로 판이한 문화권에서 태어났기에, 그동안 접해 온 환경이나 지식의 종류가 전혀 달랐다. 독일에서 자라고 영국에서 대학을 다닌 오르페는 아무래도 유럽연합에 속한 나라 간의 관계에 정통할 것이고, 나는 그보다는 우리나라 주변부에 있는 나라들이나 북한과 관련된 이슈에 관심을 가져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는 두 명의 상대가 대화하게 되면, 각자 지니고 있는 스펙트럼이 확장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때로는 다른 문화권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내가 한국과 일본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자, 오르페가 스페인과 영국 사이에도 독도처럼 분쟁을 유발하는 섬이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지금까지는 큰 갈등이 불거지진 않았으나, 브렉시트로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빠지게 되면서 그 섬도 같이 연합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스페인과 갈등이 생길 확률이 크다고 했다. 우리는 이처럼,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지금껏 접하지 못했던 종류의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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