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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니나 Jun 06. 2022

친구의 슬픔을 지켜보다


늘 엷은 미소를 띠고 있던 마틴의 얼굴이 수척해 보였다. 그는 오르페를 조용히 부르더니 무언가를 독일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굳이 들을 필요가 없는 내용인 듯했다. 아버지 마틴의 말을 경청하던 오르페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오르페는 한동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오열했고, 마틴은 말없이 그녀를 안아 위로했다. 감정이 진정되자 오르페는 내게 상황을 설명했다.     


“할머니가 위급하시대. 지금 당장 할머니가 계시는 프랑크푸르트로 가봐야 해.”     


우리는 즉시 하룻밤을 지내는데 필요한 옷가지와 몇 가지 물품들을 챙겨 마틴의 차에 올랐다. 오르페의 할머니가 계시는 프랑크푸르트까지는 서너 시간을 달려야 했다. 오르페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다가도 다시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흘렸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격한 슬픔을 느끼는 친구 옆에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들썩이는 어깨를 다독이며 안아주는 일밖엔 없었다.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하는 내내 오르페의 손을 꼭 잡아 쥘 뿐이었다.      



프랑스에서 오르페와 함께 지낼 때 찍은 사진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할머니 댁에 도착했을 땐 주위가 이미 어둑어둑해진 뒤였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역시 수척해 보이는 유타가 맞아주었다. 일단 하룻밤을 보내고, 날이 밝은 뒤에 할머니가 계신 병원으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어떻게 보낸 지도 모르는 하룻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왔다. 그새 감정이 진정된 오르페는 한결 편안해진 모습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함께 부엌으로 나가니 오르페의 할아버지와 이모가 앉아 계셨다. 그들은 할머니의 일이 별로 대수롭지 않으며, 금방 원래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드러냈다. 사실,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 온 힘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얼떨결에 오르페의 친척들을 대거로 만나게 된 나는, 식구들에게 사소한 걱정이라도 끼치지 않고자 애를 썼고, 독일어로 소통하지 못하는 대신 살갑고 친절한 표정과 몸짓으로 일관했다. 식구들이 둘러 앉아있던 탁자 위에는 갖가지 종류의 빵 그리고 할머니께서 쓰러지시기 전에 구워 두셨다는 와플이 놓여 있었다.      


오르페의 가족들이 할머니를 뵈러 다녀오는 동안, 나는 뜰에 앉아 마음을 졸였다. 소중한 친구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지는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랐다. 이런저런 생각들에 골똘히 잠겨있던 것도 잠시, 저 멀리 오르페와 마틴이 병원 문을 나서는 게 보였다. 오르페는 전날 밤 할머니의 소식을 듣고 슬픔에 잠겼던 때에 비해 한결 안정돼 보였다. 그녀가 내 손을 잡으며 짐짓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점심으로 피자 어때? 피자 먹으러 가자!”     


다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정원에 둘러앉아 피자를 먹는데, 식구들은 마치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만난 듯, 금방이라도 할머니가 병석에서 일어나 돌아오기라도 할 예정인 듯 연신 웃음을 띠며 근황을 나누었다. 오르페는 독일어를 하지 못하는 나 대신에, 그동안 내가 겪었던 여행 이야기를 풀어놓아 가족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수아 있지, 히치하이킹 하다가 고속도로에 갇힌 적이 있대!” 식구들은 내게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며, 오르페의 이야기를 즐거이 들었다. 


프랑크푸르트에 좀 더 머무르며 할머니의 차도를 지켜봐야 할 유타를 제외하고, 나와 오르페 그리고 마틴은 다시 뉘른베르크로 돌아가기로 했다. 할머니의 상태와 관련된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나, 오르페는 뉘른베르크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리고 새로이 이어지는 나날 속에서 더는 울지 않았다.



오르페의 가족들과 함께 카페에서 내려다 보았던, 프랑크푸르트의 마인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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