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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주 Oct 13. 2020

오빠연鳶

  눈 내리는 잿빛 오후. 차도 사람들도 매서운 바람에 손발을 모두 꽁꽁 숨기고 빠끔히 내어놓은 눈만 무심하게 거리를 오간다. 길을 건너려 눈을 들었을 때 맞은편 길가 듬성듬성 있는 가로수에 허연 옷자락이 매서운 바람을 따라 팔랑거리고 있었다. 섬뜩함에 종종거리던 걸음이 저절로 멈춰졌다. 마른 잎 하나 달려있지 않아 퀭한데다가 가지치기까지 당해 볼품없어 보이는 나무에게 소복차림인 무언가가 머리끄덩이를 휘어 잡힌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놀란 마음에 눈을 껌뻑여 자세히 보니 소복차림의 귀신은 다름 아닌 겨울바람을 맞고 찢어져 너덜거리는 꼬빡연이었다. 아직 찬바람이 불긴 하지만 대보름도 한참이나 지난 요즘에 누가 연을 날린 것일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정월대보름 이후에 연날리기를 즐기면 고리백장이라고 욕을 했다지만 지금이야 그런 풍습도 없어진지 오래다. 나또한 그런 말을 겨우 책에서 얼핏 한두 번 보았을 뿐이다. 그러니 아마도 근방에 사는 아이가 방학숙제로 만든 김에 날려보다가 나뭇가지에 걸린 것을 기어이 되찾지 못하고 저리 한뎃잠을 재우는 모양일지도 모르겠다.


  그 연은 이내 앳된 얼굴의 오빠와 함께 날리던 커다란 방패연과 오버랩 되어 겹쳐진다. 어느새 나는 동네어귀에 조르륵 줄지어 선 동네 꼬마들 틈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있다. 하늘 가득 방패연 꼬빡연이 색색의 옷을 입고 오르락내리락 연신 춤을 춘다. 얼레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줄과 줄이 서로 꼬이면서 제법 팽팽하던 겨루기의 승자가 결정되는 순간, 툭! 끊어진 줄을 달고 하나가 먼저 날아오른다. 승리한 오빠의 연도 금세 뒤를 잇는다.


  그때 날려 보냈던 그 연인가. 오빠와 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시누대를 깎고 종이에 알록달록 물감 옷을 입혀가며 힘겹게 만들었기에 내내 아까워했는데, 막 연줄을 끊고 끝 간 데 없이 날아오르던 그 연이 다시 돌아온 것일까. 그렇다면 그 곱디곱던 색동옷은 어디에 벗어두고 저리도 처연하게 누워 누구를 그리는 걸까. 모습이 마냥 애처로워 한번 뺏긴 눈길이 쉬이 걷어지지 않는다. 


  마침 주머니 안에서 시린 손에 쥐어진 휴대전화가 부르르 떨며 문자가 왔음을 알렸다. 작은오빠였다. 하던 사업이 힘들어져 내내 어깨를 늘어뜨리던 오빠가 살갑게 안부를 묻는 것이 아무래도 좋은 일이 생긴 모양이다. 항상 통하는 것이 많았으니 기분도 좋은 참에 잠시 잠깐 나 혼자 맛봤던 시간여행에 오빠도 동참할 것을 예감했다. 그제야 애잔한 눈길을 거두고 반갑게 전화를 건다.


  맞춤 맞은 오빠와의 통화로 우물에 고인 많은 기억 중에서 두레박 가득 길어 올린 추억을 퍼 올려 주거니 받거니 나눠 마시고는 기분 좋게 취해버렸다. 서로가 공유하고 있는 추억에 취해 망설일 것도 없이 음추운전飮追運轉은 계속해서 후진을 단행한다. 서른 살, 스무 살, 열다섯 살, 열 살…….


  그곳에 어리지만 듬직하고 잘생긴 방패연 같은 오빠가 있다. 얌전치 못한 동생이 꼬빡연처럼 까불까불 나대도 아버지만이 가질 수 있는 자애로움으로 늘 옆에서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겨울방학을 맞은 오빠와 나는 학교 다닐 때보다 더 바쁘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자치기 썰매타기 연 날리기 팽이치기 숨바꼭질. 어쩌면 그리도 재미난 놀이가 많은지 해가 기웃기웃 저물 적이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도 늘 아쉬움이 남았다. 


  저녁끼니까지 놓치고 컴컴해져서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겨우 들어가면 호된 꾸지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흙바닥을 뒹굴어 손이 텄고, 나무에 올랐다가 바지가 찢겨졌고, 썰매를 빼앗아 타는 바람에 동네 아이를 울렸으며, 쥐불놀이 하다가 논에 쌓아놓은 짚더미를 다 태워먹은 건 모두 오빠를 따라다니며 말썽을 피워댄 나였다. 그러나 동생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다며 오빠에게만 야단이 떨어졌다.


  정작 동생을 데리고 다니느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서 칭찬 한번 못 듣는 건 고사하고, 야단까지 맞으니 억울할 텐데도 절대로 나를 들먹여 꾸중을 피하려 들지 않았다. 뿐인가, 팽이를 깎느라, 딱지를 접느라, 썰매를 만드느라 겨울방학을 고스란히 나에게 뺏기고도 불평 한 마디 늘어놓지 않았다.


  학교생활도 늘 오빠와 함께였다. 두 살 터울인 오빠와 나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같은 학교에 다녔다. 면소제지에 딱 하나씩인 학교, 더구나 두 학교는 담장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있어 큰소리로 부르면 다 들릴 정도였으니 한 학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운동은 물론 공부까지 잘하는 오빠였다. 덕분에 선생님마저도 내 이름보다는 누구동생으로 부르는 경우가 더 많았고 웬만한 잘못은 지긋이 눈감아 주기까지 했다. 그러다보니 나의 횡포는 숙종이나 당대 현종의 총애를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둘렀던 장희빈 양귀비 못지않았다. 나보다 머리통 하나는 훌쩍 큰 남자아이들을 꼬집고, 때리고 다녀도 억울함을 호소하며 덤비는 이 하나 없었으니 그 위세야 말로 엄청난 것이었다. 혹여 방자한 일이 생길 낌새가 보일 때는 오빠 이름만 대면 모든 게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오빠를 등에 업고 벌이던 그러한 권세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오빠가 졸업을 하고 읍내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한 뒤로 나는 예전만큼 기를 펼 수 없었다. 그야말로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때부터 꽤 긴 시간동안 아무도 없는 하늘에서 홀로 서기 위해 날갯짓을 연습해야만 했다.


  꼬리를 흔들며 까불어대도 다 받아주는 든든한 방패연 하나 없이 지내오며 풀죽어 있던 꼬빡연에게 시간은 근사한 선물을 안겨주었다. 얼굴에 홍조가 돌고 박꽃처럼 뽀얗게 피어오르는 나이가 되었을 때 새로운 방패연이 생겨난 것이다. 여전히 얌전치 못하고 철이 없어도 귀히 여겨주며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이다. 허접한 나무에 걸려 찢겨진 연이 아니라 갖가지 빛깔고운 옷을 입혀 근사한 꼬빡연으로 만들어 주는 이, 남편이다. 내 눈에는 천하무적으로만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연줄에 곱게 빻은 유리가루라도 가미 입힌 모양이다.


  지금은 세찬 바람이 부는 시린 날들의 연속, 연날리기에는 썩 좋지 않은 날씨. 바람을 이겨보려 나섰다가 방패연이 입은 상처가 크다. 그러나 오빠 곁에도 드센 바람을 읽어가며 적당히 팽팽하게 튀김질해주는 이가 있어 그저 다행이랄 밖에. 아직 젊지 않느냐며, 건강하지 않느냐며, 힘을 잃지 말라고 환하게 웃어줄 줄 아는 사람, 새언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사랑할 줄 아는 새언니는 오빠에게 두 개의 은빛 꼬리도 달아주고, 본인마저 설주 짱짱한 얼레가 되어주고 있다. 유리가미가 부럽지 않으리라.


  지금은 비록 험난한 세상 바람에 위아래로 곤두박질치기 일쑤지만 기억조차 없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조금도 모자라지 않게 대신해주었던 오빠는 여전히, 아니 영원히 내게 정월대보름에 날리는 커다란 방패연이다. 모든 액운厄運을 떠안아 주는 방패연. ‘송액영복送厄迎福’을 선사하니 배꼽을 떼어 등에 붙이고서도 부끄럼 없이 당당할 것이다. 나는 그 옆에 여전히 찰싹 붙어 까불까불 까딱이는 꼬빡연. 아무리 방구멍에서 뿜어 나오는 바람이 세차도 노련하게 통줄주기, 얼레질, 튀김질로 줄을 꼬드겨서 힘을 내어 따를 것이다.


  통화가 끝나고 나서야 서서히 추억의 취기醉氣에서 벗어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계속 믿고 따를 수 있는 당당하고 멋진 오빠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입안으로 삼키며 손에 든 전화기를 다짐의 악수라도 하듯 꾸욱 쥐어본다. 어느새 잿빛이던 하늘은 눈을 머금은 먹구름을 뒤로한 채 말갛게 해를 내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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