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반가운 해상왕국의 수도
멀다. 물리적으로는 몰라도 심리적으로는 수도권에서 가장 멀지 싶다. 도로가 정비되어 예전에 비해 빨라졌다지만, 새벽에 떠나도 도착하면 해가 중천이다. 그나마 쉬지 않고 줄곧 달렸을 때 그렇다. 마침내 도착하면 입가에 미소부터 떠오른다. 그림 같은 풍경, 넘치는 볼거리, 곳곳에 숨어 있는 문화유산, 남도 특유의 풍성한 인심. 지명부터 그렇다. 빙그레 웃을 완(莞)자에 섬 도(島), 험한 여로를 모두 잊고 미소 짓게 만든다. 청정바다 수도, 완도 이야기다.
해상왕 장보고의 섬
먼 길을 달려 마침내 완도대교를 앞둔 지점, ‘달도테마공원’ 안내 표지판이 반긴다. 둑을 쌓아 밀물에 들어온 고기를 썰물에 잡는, 전남 전통 어업방식인 개메기와 이순신을 기리는 스토리텔링 벽, 망뫼산 약샘 등 볼거리가 다양한 곳이지만, 하지만 갈 길이 바빠 그냥 통과한다.
1969년 준공한 완도교를 대신해 2012년 새로 세운 완도대교를 넘어 우측으로 빠지니 화흥포항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 일명 ‘BTS 길’이 손짓한다. 해안도로 초입 일몰공원 언덕에 버젓이 안내판까지 세워져 있다. 설마 세계적인 스타 BTS가 다녀간 곳인가 살펴보니 ‘Blue Tour Start Road’라 적혀 있다.
푸른 여행이 시작되는 길, 그룹 BTS와 전혀 상관없는, 다소 억지스러운 작명에 헛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길 자체는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주변 풍경도 아름다움을 넘어 감미로울 정도다. 길가에 갯바람공원, 미소공원, 구계등 해수욕장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완도가 자랑하는 해안 드라이브 코스답다.
그렇게 해안으로 이어지다가 길이 내륙으로 꺾이는 지점에 장보고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해신을 비롯해 주몽, 천추태후, 추노 등 인기사극 촬영지로 유명한 청해포구 촬영지가 있다. 개장 이래 1,000만 명이 다녀간 관광 명소로 1만여 년 전 화석으로 변한 규화목을 비롯해 각종 수목과 분재, 기암괴석, 석상, 사진 자료 등이 상세한 설명과 함께 여행객들을 반기는, 교육과 체험의 공간이기도 하다.
드라마 해신은 청해포구 촬영지에서 찍었으나 실제 청해진이 있던 곳은 장좌리 앞바다, 마치 전복을 엎어놓은 듯 둥글넓적한 섬, 장도였다. 일명 장군섬이라 불리는데, 복원사업을 통해 말끔히 단장된 청해진 유적이 여행객들을 반긴다. 육지와 연결된 보도교가 있으며 청해포구 촬영지와 달리 입장료도 없다.
완만한 언덕 위에 세워진 고대(高臺)에 오르면 완도와 신지도를 잇는 신지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신지대교 너머 위용을 자랑하는 완도타워도 코앞인 듯 다가선다. 방금 건너온 보도교 뒤쪽으로 장보고 기념관은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장도에서 신지대교로 향하는 길목에 장보고 어린이 놀이공원이 있는데, 공원 한쪽에 지하 1층, 지상 3층에 좌대 포함 높이 30m가 넘는 장보고 동상이 바다를 향해 호령하고 있다. 진도가 명량대첩으로 왜군을 격파한 이순신의 섬이라면 완도는 그야말로 해상왕 장보고의 섬이라 할만하다.
세계가 인정한 청정 여행지
장보고와 인연이 많은 완도지만 여행객들을 반기는 게 문화유산만은 아니다. 완도는 세계가 인정한 청정 해수욕장을 품고 있는 섬이다. 바로 모래 우는 소리가 10리 밖까지 들린다 하여 이름 붙인 명사십리(鳴沙十里)해수욕장이다.
2019년 4월 국내 최초로 덴마크 코펜하겐에 본부를 두고 있는 글로벌 비영리단체 환경교육재단(FEE)으로부터 Blue Flag 인증을 받았다. Blue Flag는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해수욕장에 부여하는 인증으로, 국제적인 권위를 부여받고 있다.
명사십리해수욕장은 청정한 환경과 함께 길고(3,800m) 너른(150m) 백사장, 고운 모래, 울창한 송림, 주차장, 샤워장, 탈의실, 탐방로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매년 100만 명의 피서객이 찾는 최고의 피서지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엄격했던 시기에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해수욕장으로 알려져 피서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올해는 완도가 품은 섬 청산도와 함께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2022 안심 관광지’에 선정되어 많은 이들이 찾을 전망이다.
영화 서편제 촬영지로 유명해진 슬로시티 청산도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완도는 하나의 섬이면서, 많은 섬을 품은 군도(群島)이기도 하다. 청정해역의 푸른 바다 위에 55개 유인도와 146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모인 다도해의 중심인 것이다.
완도에는 생일을 맞은 여행객을 공짜로 태워주는 여객선도 있다. 2016년에 전라남도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된 생일도 가는 여객선이다. 국내 최대 생일 케이크 조형물이 반기는 생일도 산책로를 걷다 보면 곳곳에 ‘멍 때리기 좋은 곳’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바다 멍’을 하면서 힐링하기 좋은 곳이라는 여행 작가들의 추천을 받아 표지판을 세웠다고 한다.
또 다른 완도의 섬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가 여생을 마친 곳으로 유명하다. 부용동 원림, 동천석실 등 윤선도 유적이 많다. 섬 동쪽 끝자락 백도리 해안 절벽에는 색다른 볼거리가 있다. 윤선도와 동시대를 살다 간 송시열의 글씨가 남은 글씐바위다. 제주도 귀양길에 풍랑을 만나 며칠 보길도에 쉬면서 신세를 한탄하는 한시를 바위에 새겨놓았다 한다.
▶ 여행 수첩
음식의 전국 평준화가 이뤄진 지 오래지만 청정해역으로 유명한 완도에서 만난 닭갈비와 막국수라니. 호기심에 이끌려 들어가면서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막국수가 신선했다. 강릉에 소재한 본점에 비해 부족함이 없었다. 완도읍 장보고대로 변에 자리 잡은 프랜차이즈 삼교리동치미막국수집(061-555-0516). 형만 한 아우 없다지만 인터넷에 접속해 리뷰를 살펴보니, 맛있다, 친절하다, 꼭 가봐야 한다. 칭찬하는 댓글이 즐비하다. 이럴 때 하는 말,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간 이는 없다. 완도 맛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