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哭聲)은 잊어라, 고향 같은 땅 곡성(谷城)
아마 영화 탓일 것이다. 2016년 5월 개봉 이후 700만 가까운 관객들을 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한 나홍진 감독의 공포영화 <곡성(哭聲)> 말이다. 괜히 음침할 듯하고 어두울 것 같은, 곡성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전혀 그렇지 않다. 영화는 영화일 뿐, 깊은 도림사 계곡조차 음침한 기운이 전혀 없다. 섬진강 기차마을은 더욱 그렇다. 규모도 크고 환하고 정겹다. 사계절 아름다운 고향 같은 땅, 곡성(谷城)이 부른다.
외갓집인 듯 정겨운 도림사
영화 곡성이 개봉될 즈음 군민들의 우려가 컸다. 의문의 연쇄사건을 소재로 한 스릴러물 <곡성>은 영화 내용이 기괴하고 줄거리도 이해하기 어려워 개봉 당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흥행에 성공했지만 곡성군민으로서는 영화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곡성에 대한 이미지를 훼손할까 우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유근기 곡성군수의 역발상 덕분에 우려는 우려에 그치고 말았다. 영화 <곡성>을 보고 공포가 주는 즐거움을 느낀 분이라면 꼭 우리 곡성에 오셔서 따뜻함이 주는 즐거움 한 자락이라도 담아갔으면 좋겠다며, 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활용해 매년 5월 개최하는 장미축제에 전국의 관광객을 끌어들여 대박을 냈다.
인근의 남원시나 순창군, 구례군, 순천시와 화순군, 담양군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곡성군을 일약 최고의 여행지로 등극시킨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곡성군이 자랑하는 청정 자연과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섬진강기차마을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영화와 달리 환하고 정겨운 곡성군의 실제 이미지가 주인공이었다. 곡성군은 범죄 없는 마을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고장이기도 하다.
이렇게 전국적인 명소로 부상한 곡성 여행은 도림사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곡성군으로 들어서는 호남고속도로 곡성I.C에서 멀지 않아 접근성이 좋은 까닭이다. 계곡미가 뛰어나고 초입에는 도림사 국민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오토캠핑장도 마련되어 있어 편리한 까닭이기도 하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2호로 지정된 도림사는 공성의 진산 동악산 줄기인 형제봉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시대인 660년(무열왕 7)에 원효대사가 사불산 화엄사로부터 옮겨 지었다고 전해진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형식의 보광전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건물들이 모여있는데, 마치 외갓집이라도 찾은 듯 정겹다.
도림사가 있는 동악산은 원효대사가 이 절을 창건할 때 산의 풍경이 음률에 동요되어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렸다고 하여 이름 붙였다 한다.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기암괴석이 이어지고, 넓은 바위 위에는 조선시대 이래 근세에까지 많은 시인 묵객들이 다녀간 흔적을 글씨로 새겨놓았다.
해발 735m의 동악산 남쪽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동악계곡(도림계곡), 성출 계곡에는 아홉 구비마다 펼쳐진 반석 위로 맑은 물이 흐르고 노송과 폭포들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어서 전라남도기념물 제101호로 지정되어 있다.
느림의 미학 선사하는 기차마을
도림사 계곡에서 곡성의 자연을 만끽했으면 이제 전국에서 유일하게 관광용 증기기관차를 운행하는 섬진강기차마을을 찾을 차례다. 전라선 복선화 공사로 발생한 구 전라선 17.9km 구간을 보존, 기차를 주제로 조성한 공원 겸 테마파크다.
과거에 실제로 운행했던 증기기관차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여 옛 곡성역에서 가정역까지 10km 구간을 왕복 운행하고 있다. 특히 느림의 미학을 실천이라도 하는 듯 천천히 달리는 기차를 타고 섬진강을 따라 달리다 보면 아름답고 정겨운 풍경에 저도 모르게 취하게 된다.
레일바이크도 즐길 만하다. 기차마을을 한 바퀴 순환하는 코스로 거리가 다소 짧으나 힘껏 페달을 밟다 보면 금세 동심의 세계에 빠져든다. 특히 햇살이 따사로운 가을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철로를 달리는 기분은 감동이 아닐 수 없다. 바이킹 같은 다양한 놀이시설이 어린이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섬진강기차마을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주제는 장미다. 매년 5월이면 무려 1,004종에 이르는 종류의 장미가 손짓하며 관광객들을 불러 모은다. 영화 곡성 개봉 당시에는 평일에도 2만여 명의 관광객들이 찾았다고 한다. 봄철이 아니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겨울을 제외하곤 사계절 모두 다양한 꽃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한편 곡성 역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찾는 이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가 최근에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섬진강기차마을은 멀리서 찾아주는 관광객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풍성한 이벤트를 마련해 놓고 있다.
2022년 10월 15일부터 연말까지 매주 다양한 어린이 주말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기차마을 내 요술랜드 2층 체험교실에서 진행되며 LED 디폼 블럭 만들기, LED 우드 페인팅, 스트링 아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해 볼 수 있다. 7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여름 성수기 주말이나 공휴일 방문객을 대상으로‘기차마을 덤앤덤’ 이벤트를 운영하고 있다. 가을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찾는 이들에겐 다채로운 한복 문화체험 행사도 진행한다. 다양한 한복을 2시간 동안 무료로 빌려주는 이벤트다.
일부 관광객들은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영화 <곡성> 촬영지를 찾기도 한다. 기차마을에서 가까운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이나 다소 멀지만 여운마을 외지인의 집 등이다. 큰 볼거리는 아니지만, 가로수 사이로 보이는 황금빛 들녘이나 위태롭기까지 한 시골길을 한참 올라가 만난 으스스한 폐가가 독특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스릴을 즐기는 일부 관광객들에겐.
▶ 여행 수첩
호남고속도로 곡성I.C를 빠져나오면 5분 거리에 도림사 안내 이정표가 나타난다. 도림사에서 섬진강기차마을도 차로 10분 거리밖에 안 된다. 섬진강기차마을 가는 길에 맛집으로 알려진 유나네 국밥(061-363-2882)이 있다. 뼈다귀해장국이 맛나다. 섬진강기차마을 입장권은 개인 5,000원인데, 2,000원을 지역 상품권으로 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