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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끝 '격렬비열도'의 귀환...국민이 지키는 ‘영해

중국인이 사려 했던 서해 영해기점...태안 격렬비열도 회항기

by 섬트레커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서해는 사계절 바람과 해무, 비와 눈이 많이 내린다. 그래서 바다는 팔색조처럼 변화무쌍하다. 이러한 서해에서 일반인의 접근이 제한돼 온 섬이 있다. 격렬비열도다. 7천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서해에서 솟구쳐 올라 그동안 수많은 비밀을 간직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서해의 푸른 보석, 격렬비열도


동·서·북 3개의 섬과 주변 작은 바위섬이 기러기가 편대를 지어 나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격렬비열도(格列飛列島)라 부른다. 충남 태안군 근흥면 태안반도 관장곶에서 서쪽으로 55km 떨어진 국토 중앙부 최서단 열도이다. 서해 끝자락에 위치하기에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중국 산둥반도에서 274km 떨어져 있어 날씨가 맑은 날이면 희미하게 이곳이 보인다는 말도 있다.


2025101846468191.jpg 등대가 설치된 북격렬비도/사진=태안군

북격렬비도(0.093㎢)를 중심으로 동격렬비도(0.277㎢)는 해상으로 950m, 서격렬비도(0.128㎢)는 1.8km 떨어져 있다. 섬의 크기는 동·서·북격렬비도 순이다. 최서단 서격렬비도는 우리나라 영해기점 23곳 중 하나이다. 동·서격렬비도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으며, 북격렬비도만 국가(산림청) 소유이다.


북격렬비도에는 1909년 설치된 등대와 기상대, 통신시설 등이 있다. 음파, 전파, 광파 장비가 한곳에 모여 수많은 뱃길의 안전을 지키고 미세먼지 감지와 해양영토를 수호하는 파수꾼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섬에는 동백나무를 비롯한 상록활엽수림이 자생하며, 원추리 둥굴레 땅채송화 고사리 갯기름나물 등이 서식하고 있다. 동백숲에 들어서면 붉게 타오르는 동백꽃 향기에 정신이 아찔한 정도다.


# 서해의 황금어장, 계절마다 다양한 물고기 몰려


동격렬비도는 신선이 노닐다 갈 정도로 비경이 다채롭다. 하늘에서 보면 악어가 헤엄쳐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배를 타고 섬 한 바퀴를 돌면 해식애와 주상절리, 해식동굴 등의 비경과 마주한다. 이 섬에는 괭이갈매기, 황조롱이, 흑비둘기, 칼새 등 11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978년 12월, 전호와 달래 등 약재를 채취하러 떠났던 태안 주민 12명이 무려 44일 동안 고립된 현장이기도 하다. 매서운 북서풍 아래 생사의 갈림길에 처했던 이들은 북격비도등대원에게 극적으로 발견되어, 해경에 구조되었다.


202510184715262.jpg 동격렬비열도/사진=태안군


서격렬비도는 병풍 모양으로 길게 누워 아기자기한 모습을 하고 있다. 웅장한 해식 단애가 금강산 해금강을 연상시킨다. 화산암이 식으면서 생긴 주상절리가 기기묘묘하게 신비를 자랑한다. 이곳 역시 괭이갈매기 집단 서식지이며 가마우지도 살고 있다. 괭이갈매기들은 매년 봄 격렬비열도 가파른 비탈에서 알을 낳고 40여 일 새끼를 기른 후 이곳을 떠났다가 1년 후 다시 돌아온다. 봄이면 유채꽃이 아름답게 섬을 물들인다.


2025101847492802.jpg 서격렬비열도/사진=태안군


평균 수심 70m, 바닷속 시야 10~15m인 격렬비열도 인근 해역은 어족자원의 보고이다. 인근 크고 작은 암초들은 물고기가 살기 좋은 집이다. 이곳은 어초가 발달한 데다 플랑크톤이 풍부해 3월 꽃게, 6월 잡어, 7월 오징어, 8~12월 멸치가 잡힌다. 특히 멸치 떼는 수만 마리씩 무리를 지어 놀랍도록 군무를 펼친다.


멸치 떼를 따라 제주에서 북상한 방어, 농어가 낚시꾼을 부른다. 오징어잡이를 위해 경북 포항 구룡포에서 배가 이곳으로 몰려오고, 제주 해녀들이 원정을 와서 전복 해삼 미역 톳 등 수산먹거리를 채취한다. 이러다 보니, 중국어선들까지 출현에 불법 조업에 나서기도 한다.


# 한때 국가로부터 잊힌 섬...중국인이 틈새 노려


이런 섬이지만 격렬비열도는 한동안 국가로부터 오지의 섬 중 하나로 홀대를 받았다. 서해를 수호하는 파수꾼 역할을 맡던 등대원들이 1994년 철수되면서, 무인등대로 남게 됐다.


이런 관리 소홀을 틈타, 2011년 한 중국 사업가가 서격비도를 매입하려 한 것이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무역업을 하던 그는 서격렬비도 매입비로 16억 정도를 제시했다고 한다. 다행히 섬소유주가 거부해 우려했던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만약에 섬이 팔렸다면 서해상에서의 불법 중국어선을 단속하는데 어려움은 물론 중국과의 해양영토 분쟁 가능성이 일어날 가능성도 예견된다. 그 이후 격렬비열도는 ‘서해의 독도’라는 별칭을 얻었다.


2025101805095664.jpg 2024년 태안군이 북격비도에 설치한 표지석/사진=태안군


정부는 영토 보전의 경각심을 갖고, 2014년 12월 이곳을 외국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으며, 2015년 7월 1일부터 2인 1조로 직원들이 다시 상주하기 시작한다. 태안군도 섬 관리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2022년 7월 4일 국가관리연안항으로 지정된다. 태안군은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2024년 이날을 ‘격렬비열도의 날’로 지정하고 선포식을 개최했다. 북격비도에는 2030년까지 국비 500백여 원이 투입되어 다목적 접안시설이 들어선다.


# “나는 격비도 1호 지킴이”


추석 명절 끝자락인 지난 10월 12일, 태안 신진항에는 이른 아침부터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스킨스쿠버 복장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상 장비를 손에 든 유튜버, 패들보트 회원, 민방위복 차림의 공무원 등 다양한 계층이 섞여 있다. 태안군이 후원하고 사단법인 격렬비열도사랑운동본부(회장 윤현돈)가 주관·주최한 ‘격렬비열도 투어’ 행사 참여자들이다.


2025101851163900.jpg 격렬비열도로 떠나기 위해 승선하고 있는 사람들


이 중 운동본부가 진행한 온라인 공모에서 선정된 ‘격렬비열도 제1호 지킴이’ 74명은 행사 전날 도착해 숙소에서 묵었거나, 이른 새벽부터 차를 몰고 와 참석했다. 이들은 당일 서해상에 풍랑주의보 등 기상특보가 없는 것에 안도하며, 모두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7월 5일 개최예정이던 제1회 투어가 기상악화 등으로 출발 전날 취소되어 손꼽아 3개월을 기다린 탓이었다.


2025101852274434.jpg '남주 9호' 승선 모습


9시 30분, 급기야 태안군 어업지도선 ‘격비호’와 ‘남주 9호(40톤급)’ 등 5척의 선박에 나눠 타고 이들은 신진도항을 출발한다. 태안 유일의 유인도인 가의도 앞 해상에는 저마다의 포인트를 점한 많은 낚시어선이 평화롭게 떠 있다. 격비도 지킴이들은 옹도(신진항에서 해상 12km)를 지나는 동안 각자의 방식대로 주위 영상을 담기 위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위를 돌아본다.


2025101807539113.jpg 웅도를 지나고 있는 '남주 9호'


# 출항 한 시간여 만에 단행된 날벼락 ‘회항’


이어 멀리 궁시도와 흑도, 난도와 작은 섬 세 개가 군집한 삼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그 사이로 무역선 두 척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나간다. 출항 시각 때보다 바람은 조금 거세지고, 배는 너울성 파도로 출렁임이 감지된다. 그러는 사이, 어디선가 ‘회항’이라는 짧은 단어가 바람보다 빠르게 귓전을 때린다. 지도를 보니, 격렬비열도를 절반 이상 남겨놓은 지점이다.


2025101813068722.jpg 회항하는 '남주 9호'


탑승자 모두 가슴을 철렁이며, 의아스러운 눈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누군가, “태안군이 현지 등대원들과 통화 등을 종합하여 배가 접안이 어렵다며 안전을 이유로 회항을 결정했다”라는 얘기를 한다. KBS 촬영팀이 탑승한 선두 소형보트가 “파도가 높다”라며 먼저 회항을 선언하자, 이를 신호로 나머지 선박들도 줄줄이 귀항하게 됐다”라는 얘기도 들린다.


2025101807179528.jpg (사진 위) 섬 세 개가 모여 있는 삼도. (사진 아래) 80년대까지 유인도 였다는 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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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항로를 되돌리자, 탑승자들 얼굴에는 실망감이 역력했다. “지금 해상에 낚시 배들이 수두룩한 데 무슨 근거로 회항하느냐”며 운동본부 관계자도 의아해한다. “접안해서 섬을 볼 수 없더라도 멀리 서라도 섬을 돌고 나오자”라며 투어 강행을 주문하는 지킴이도 있다.


2025101855513330.jpg 회항 후 입장을 밝히고 있는 가세로 태안군수


실망을 가득 안고 도착한 신진도항에서 가세로 태안군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결렬비열도를 향해 가다가 항로를 되돌려야 하는 안전책임자와 미안함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라면서, “격렬비열도는 접안시설이 없어 자연 암반을 이용해야 하는데, 파도 교차로 인한 위험 때문에 현장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라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사유지인 동·서격비도를 국가에서 매입해야 한다. 격렬비열도 가치 창출은 접안시설과 소유권 분쟁이 앞으로 생기지 않도록 국가에서 매입해 주는 것에서 시작된다.”라고 밝혔다.


#태안군이 나서, ‘격렬비열도 지킴이들’ 꾸준히 양성해야


2025101857032665.jpg '격비도 제1호 수여증' 수여식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 등대 350여 곳을 촬영했다는 한 참가자(70)는 “격렬비열도는 일반인들은 평생 한 번 보기도 어려운 섬인 만큼, 접안하지 못하더라도 동도와 북도, 서도를 해상에서 돌아보고 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컸을 것이다”라며 불만을 전했다.


또 한 참가자는 “태안군이 소극적이라면 운동본부가 중심이 되어 뱃값을 참가자들이 십시일반 분담하더라도 다시 한번 추진했으면 좋겠다. 섬 모습도 보지 못했는데 ‘제1호 지킴이’ 수여식이 말이 되느냐”며 아쉬움을 전했다.


회항 사태 이후 1주일 여가 지난 17일, 그동안 ‘격렬비열도 투어’ 행사가 실현되도록 산파역을 맡아온 운동본부 사무국장에게 전화를 해봤다. 그는 통화에서 “매우 착잡한 심경이다. 격비도 투어가 무산된 상황에서 회원들에게 문자라도 보내야 하는데 현재 태안군과 운동본부의 향후 입장이 정해지지 않아 막막하다”고 전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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