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토요일 중앙 일간지들의 여럿 Book 섹션은 항상 챙겨봐 왔습니다. 그리고 북리뷰를 통해 인상 깊은 책들은 핸드폰으로 캡처해뒀다가 별일 없는 퇴근 무렵이면 한 번씩 서점에 들러 봐 두었던 책을 구입하게 됩니다.
마침 지난 주말 1990년생 마산 출신의 한 노동청년이 쓴 책이 소개되었는데, 급 호기심이 일어 추석 연휴를 기회로 읽게 되었습니다. '쇳밥일지'를 말입니다.
내용이 어떠하길래 이렇게 중앙 일간지에까지 실렸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책을 접했는데, 책을 시작하자마자 한달음에 푹 빠져 내달렸습니다. 우선은 저자가 언급한 유년기와 청소년기, 직장생활 시기 등 곳곳에서 드러나는 마산과 창원의 장소들이 상기되는 점에서 그랬습니다. 고향 마산으로의 귀향 꼬박 2년, 이렇듯 그 동질감이 적지 않아서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보단 요즘 시대 청년들의 어려움, 특히 지방의, 공고 출신 전문대생의 공장생활과 노동현실, 즉 비주류 of 비주류 청년의 현실을 때론 가슴 아프게, 또 한편으론 그럼에도 꾸역꾸역 희망의 장면으로 나아가는 모습에서 여러 생각이 떠올라 다음 이야기들이 연신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르포르타주. 저자 천현우의 힘겨운 성장사와 아픈 개인사를 잠시 걷어내면, 이 책은 마산의 수출자유지역과 봉암공단, 그리고 창원공단 등 최근 10년의 쇠락해가는 이 지역 제조업 상황과 노동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르포문학의 한 부류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원청과 하청의 외주 관계,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의 거리감, 학력과 임금격차, 주류산업의 쇠락과 변화, 개인의 어려운 경력 축적과 성장의 한계 등 갖가지 모습이 드러나기에.
※ 1930년대 스페인 내전을 다룬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가 세계 3대 르포문학으로 일컬어지는데, 그 책의 느낌 때문인지 '쇳밥일지'는 천현우 저자 개인의 에세이만큼이나 오늘날 대한민국 남동공업벨트의 현실로도 다가왔습니다.
책 중반부에 천현우 저자 자신의 sns 글이 소개된 점이 생각나, 이후 그의 sns를 검색했더니 벌써 아는 분들의 흔적 그리고 유명인사들의 글이 보였습니다. 친구 신청을 해볼까 하다가 그냥 접었습니다. 팔로우 역시. 그저 생각날 때 한 번씩 들어가 보는 게 낫지 싶어 그랬습니다.
헌데 어쩌다 보니 천현우 저자가 뜻밖에도 먼저 다가와 댓글을 남겨주었습니다. 이에 친구관계가 되었는데, 뜻하지 않은 책 저자로부터의 댓글, 꽤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청년정치가 꽤 화두가 되어 왔습니다. 충분히 그럴만합니다. 1997년 IMF 이후 본격 거론된 청년실업 내지 청년의 문제가 이제는 정점에 달아올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근자의 상황을 살펴보면, 이 책을 통해 떠들썩한 청년 정치에 앞서 다시금 우리 시대의 청년 현실을 더 디테일하게 들여다볼 때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디딘 현실과 멀어질수록 점점 성층권 넘어 우주로 가버리는 게 아닐지 하는 우려가 커져가기 때문입니다.
경남대 옆 밤밭고개로 향하는 귀갓길에 저자가 묘사한 그의 집이 이쯤이었지 하면서, '쇳밥일지'가 다시금 생각났습니다. 고향 마산에 귀향한 지 만 2년. 이곳 마산에서 이렇게 인상 깊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는 점이 참 좋습니다.
※ 퇴근길, 봉암공단과 수출자유지역을 거쳐 마산 해안도로로 진입하기 전에는 가급적 중앙차선으로 갑니다.
책에도 언급된 마산 앞바다 양옆의 공단 부두, 마창대교, 해안도로가 예쁘게 빛나는 모습이 보기 좋아 신호대기 중엔 늘 찰칵찰칵 하기에 그렇습니다.
수출자유지역 끝자락의, 마산 해안도로로 좌회전 하기 전의 마산만 모습
창원 귀산에서 바라 본 마산 앞바다 양 옆의 해안가 모습
이제는 고향 마산을 떠나 서울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책을 통해 알게 된 마산 후배 천현우 작가님을 진심 응원합니다. 그의 책처럼 가감 없는 현실을 계속 보여줌으로써 청년 현실과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부각해주고 빛내주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