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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메제니 Oct 03. 2022

잘못끼워진 단추



25살 12월의 막바지. 나는 16시간 산고 끝에 제왕절개로 큰 아들을 낳았다. 골반도 좋고, 자궁문 열리는 속도 괜찮다며 순산을 할 것이라는 의료진의 예측은 빗나갔다. 자궁문이 다 열린 후에도 아이는 내려오지 않았다. 의료진 4,5명이 배 위에 올라타 갈비뼈 밑에서 아래 쪽으로 힘을 모아 눌러도 소용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수술대 위였다. 하반신 마취가 되었는지 견디기 힘든 통증이 더이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산모들이 가장 원하지 않는 방식인 진통은 진통대로 다 겪고 수술을 하게 되는 케이스가 되었다. 그 당시 겪었던 난산의 후유증 때문인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은 사람치고는 회복이 더뎠고, 그 후 잔병치례도 많았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던 그 해 겨울. 멍하니 창 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거야.' 계획에 없던 임신이었다. 임신으로 평소보다 예민한 시기에 새 가정을 꾸리게 되었고, 결혼 초에 겪게 되는 난관들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유난히 더 큰 산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전혀 예상치도 못하게 이런식으로 출산하게 되다니... 임신과 출산 그리고 영유아기 육아까지 엄마로서의 나의 삶은 순탄한 것이 하나 없다고 느껴졌다.


나는 알고 싶었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어떻게 하면 다시 바르게 채울 수 있는지. 하지만 다시 바르게 채울 수 있는 방법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어설픈 시도는 자꾸만 어긋났다. 생각의 힘이 약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라고 말한다. 육아를 하다 보면 그 말이 왜 나오는지 알게 된다. 


한 밤중에 아이가 울면 일어나 달래고 분유를 타서 먹어야 한다. 내가 일어나고 싶지 않아도 일어나야 하고, 내가 먹고 싶지 않아도 밥을 차려야 하고, 내가 아프지 않아도 병원을 가야 한다. 재워야 하고, 씻겨야 하고, 먹여야 하고, 싸면 치워야 하는 시기. 내 몸 하나 챙기는법 조차 잘 숙지하지 못했던 26살에겐 생각할 겨를 따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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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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