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컨셉'이 충분하면 직진도 괜찮습니다
‘백지 공포증’이라는 게 있습니다.
무언가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
텅 빈 종이를 펼쳤을 때 느껴지는
막연함, 답답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지 공포증’에서 ‘머리 속이 하얘졌다’가
유래된 건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백지 혹은 노트북 화면에 펼쳐진
새문서의 흰 여백 위에서 깜빡이는 커서가
부담스럽지 않은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카피 혹은 컨셉 메시지를 만들어야 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초등학생에서 정년퇴직하신 분들까지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희망일만큼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으니
세상에 없던 말과 이야기를 찾기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가상화폐도 초기 발굴은 쉬웠다죠?)
어디선가 봤던 카피,
누군가가 썼던 컨셉,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누구도 쓰지 않은 단어, 이미지, 사운드를 찾아
자료의 바다를 밤새도록 헤매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의 성과는 신통치 않습니다.
‘직선’의 사전적 정의는
‘두점을 잇는 가장 짧은 곧은 선’입니다.
지금, 막혀서 전진을 못하고 있는 곳이
표현의 소재/방식인지 아니면
컨셉 그 자체인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컨셉 그 자체가 경쟁력있고
다른 표현의 방식을 찾기 어렵다면
컨셉의 개념을 그대로 카피로 쓰는 것도 좋습니다.
‘아버지’를 설명하고 전달하는
가장 쉬운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직선’을 두고 굳이 멀리 돌아갈 필요 없습니다.
Innovation 이노베이션이라는 단어만큼
기업들이 자주 또 많이 쓴 단어도 없습니다.
새롭지도 않은데다 설명하기도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서, 구글 검색창에 Innovation 이노베이션을 입력하고
그 이미지 검색 결과들을 찾아봤습니다.
이노베이션 보다 추상적인 그래서 손에 잡히지 않는
이미지들이 대부분입니다. 그걸 스스로도 알기 때문인지
이미지 속에 ‘Innovation’이란 단어를 넣은 것도 많습니다.
‘Innovation’을 설명하기란 구글신에게도 쉽지 않은 듯 합니다.
Innovation 을 사전에선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지 찾아보면
Innovation [n.] the action or process of innovating.
다시, Innovate 를 찾아봤습니다.
Innovate [v.] make changes in something established,
especially by introducing new methods, ideas, or products.
국내 어느 기업의 PR 광고입니다.
(* 저한테 물어보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게
바로 기업 PR 이라고 할 것입니다.)
구글신도 쉽게 설명하지 못한
Innovation 을, 단어 그대로 썼습니다.
새로운 단어,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대신
그것의 정의 Meaning 를 새롭게 했습니다.
즉,‘Innovation이노베이션은
Ask묻다/질문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크리에이티브는 여기서 90% 완성됐습니다.
금상첨화는 이 기업이 용감하게도
이노베이션을 무려 기업명으로도 썼다는 것입니다.
[ SK 이노베이션 = Ask + Innovation ]
즉,‘SK 이노베이션은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새롭게 나아가는 기업’이라는 새롭고 강력하고
크리에이티브가 완성되었습니다. 그 (어렵고도) 흔한
Innovation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SK 에서 Ask 를 연상하고 이를 Innovation 의 의미로
정의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 크리에이티브의 가치가 낮아지진 않습니다.)
광고 카피/컨셉을 만든다는 것은
새로운 ‘단어/이야기’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기존의 ‘단어/이야기’에 대해
누구도 하지 않았던
새로운 ‘정의’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앞서 ‘아버지’를 설명하고 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버지’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때 크리에이티브의 한가지 조건은
‘아버지’에 대한 정의나 풀이가 새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본 영화 ‘행복한 사전(2014)’은
사전을 찾거나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시대에
그것도 종이로 인쇄된 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무려 15 년 동안 애쓰는 사전편집부원들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에서 사전 편집부의 결원을 채우기 위해
신입부원을 테스트하는 질문은 이렇습니다.
“오른쪽을 설명하시오”
영업부에서 능력&실적부족으로 고생하던
영업부원 마지메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서쪽을 바라봤을 때 북쪽 방향”-
답을 들으면 쉬운데 막상 머리엔 안 떠오르죠.
말이 나온 김에 지금, 당신은
‘아버지’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분량이 조금 길어졌습니다.
속이 답답할 땐 소화제를 찾듯
머리가 답답할 때
사전을 한번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사전의 정의와 다른
나만의 정의를 내리는 것
그것도 아니 그것이 크리에이티브입니다.
* 매주 화/목요일에 업로드합니다.
PART 2. 석 달 후를 위하여: 크리에이티브의 문법 (아이디어의 작동원리 이해)
Chapter 4. 거리와 스케일
011. 크리에이티브, 멀수록 빛나는 : 아이디어의 규모와 스케일
012. 맥락 없는 소리하고 있네 : 아이디어는 CONTEXT로부터
013. am 11.의 문자메시지를 씹은 이유 : TEXT와 CONTEXT의 차이
Chapter 5. 기준을 만드는 자가 이긴다
014. 기준을 만든다는 것 : 의제 설정 혹은 평가자 되기기준
015. 신조어가 유행하는 까닭 : 만들기와 자리잡기 사이
016. 두 점을 잇는 가장 짧고 빠른 건 '직선' : 결국은 컨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