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있으면 호주생활 10년, 신기하면서도 궁금한 호주 사람들.
본격적인 외국 생활로 치면 10년째,
그전에 꽉 채운 워킹홀리데이 생활까지 하면 13년 차 외국인 노동자.
10년 차 호텔리어로 로컬과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들과 일하면서
종종
‘아니 얘네는 왜 이래…’
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다.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여전히 모르겠는, 적응이 안 되는 순간들이 있다.
아니.. 피부가 약하다면서요…
얼마 전에 호주어머니의 코에 작은 혹이 발견되었는데 피부암으로 확진이 되어 제거 수술을 받으셨다. 괜찮냐며 걱정을 했더니 피부암은 크기가 너무 크지 않으면 여기서는 흔한 수술이라고 말씀하셨다. 백인들이 피부가 약하지 않냐면서…
여기는 웬만한 음식점들이 상점 밖에 테이블을 둔다. 그리고 제 아무리 햇빛이 쨍쨍한 무더운 여름이어도 사람들은 언제나 실내보다 에어컨도 없는 실외 테이블을 선호한다. 밖에 바람이 선선하고 그늘이 있는 곳이라면 나도 밖에 앉는 거 좋지. 그렇지만 (시티를 조금만 벗어나면) 주위에 3층이상 건물들이 많지도 않아서 파라솔 같은 것을 꽂아놔도 직사광선으로 내리쬐는 햇빛을 피하기는 역부족인 데다가 그마저도 없는 곳이 많다.
그럼에도 여기 사람들은 꿋꿋이 밖 테이블에 앉는다. 앉아서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들한테 인사도 하고 새들에게 빵부스러기도 주고 그런다.
친구들과 어딜 가면 아주 당연스럽게 밖에 테이블로 나오는 바람에 내가 원하는 실내에 비어있는 구석진 테이블을 가리킬 기회를 놓치곤 한다. 그렇게 따라 나오면 친구들은 선글라스만 끼면 자리에 빛이 얼마나 들든 크게 개의치 않아 한다. 그래서 내가 그늘진 자리를 독차지하다가 이동하는 햇빛이 다시 내 쪽으로 방향을 틀면 친구들은 빛을 등지는 자리로 바꿔준다. 자기는 햇빛이 좋다면서…
여름이 더운 거야 당연하지만 확실히 건조했던 예전 여름에 비해 이곳의 여름도 많이 습해지고 찝찝한 여름으로 변했다는 것을 느끼는데도 불구하고 실외 테이블에 옹기종기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면, 앉으려고 기웃기웃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신기하다.
진짜 아무렇지 않은 건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건지…
피부도 다른 인종에 비해 약하다면서...
저기.. 바퀴벌레는 그냥 죽이면 안 될까…?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여서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다르다는 것은 새로 짓는 유닛에 방해되는 나무들을 베어버리지 않고 그들을 모양을 살려 담벼락에 구멍을 뚫을 때부터 알아봤다.
나는 벌레가 끔찍이도 싫기도 하거니와 여기는 발코니가 개방되어 있고 문만 열면 손 닿을 곳에 나무들이 있는 곳이 흔해서 언제라도 날고 기는 벌레가 보이면 가차 없이 즉사시킬 수 있게 벌레 퇴치용 약품은 항상 지체 없이 손쉽게 꺼낼 수 있는 곳에 배치해 둔다.
근데 이곳 사람들, 벌레를 잘 죽이지 않는다. 내가 같이 살았던 친구들 대부분과 그외 아는 지인들은 함께 있을 때 출몰한 거미나 이름 모를 벌레들, 심지어 바퀴벌레도 살생을 하지 않고 생포해서 밖으로 내보내곤 했다. 생포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죽어 버린 적은 있어도 애초에 그들의 목표는 죽이는 게 아니라 옆에서 꺅꺅 거리는 내 눈에서 안 보이게 하는 것이었으므로…
야외에서 바비큐를 한다거나 캠핑을 할 때는 적외선, 초음파 등등 각종 퇴치기들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건물 안에서 발견되는 것들은 주로 살려서 내보내는 편이다.
그들 덕분에 처음에는 기겁을 했던 새끼 도마뱀 격인 ‘개코’는 이제는 나도 반려 동물과 같은 마음으로 보게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바퀴벌레는 아니지… 진짜 아니지 않아요?
물론 내가 만난 사람들 규모가 워낙 아기자기해서 성급한 일반화를 범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지내다 보면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가 죽어가는 모든 것에 관대하다. 적어도 나보다는…
어제 처음 봤다. 집에 갈 준비를 하다 말고 벽에 붙은 지네인지 뭔지 모를 다리가 많은 생물체를 죽이겠다고 사방팔방에 스프레이를 뿌려대는 호주 사람을… 내 앞타임에 일하는 직장 동료였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 활짝 열린 창문 앞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이 성인 남성 엄지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테이블 위에 있었는데 그걸 항의 하자 시간대 책임자였던 슈퍼바이저가 말했다.
“이건 밖에서 들어오는 거라 어쩔 수 없어요.”
지금 여기 4성급 호텔 맞아?? 나 같으면 밥맛 떨어져서 환불이고 뭐고 달려 나왔을 텐데 더 신기한 건 손님들의 반응이다.
“Well… okay.”
이런 나도 정말 괜찮은 거지요?
또 영어 얘기다. 우리가 초중고 12년 동안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졸업을 해도 여전히 거리에는 영어학원이 즐비하며 각종 영어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영어는 해도 해도 부족함을 느낀다.
영어권 나라에 살고 있으면 더 느낀다. 살면 살 수록 더더 느낀다.
이곳에서 호주 남편분과 결혼해 30년을 사신 일본인 준코 아주머니는 요즘에 유독 영어 스트레스가 많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영어는 30년을 살아도 부족하더라. 죽을 때까지 이들과 같아질 수는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해. “
영어권 나라에서 돈 벌고 먹고살만한 영어실력정도는 되었다고 여겨지지만 지금 일하는 곳이 캐주얼한 곳이 아닌 5성급 호텔이다 보니 좀 더 격식 있고 좀 더 안정된 영어를 어느 상황에서든 구사하고 싶은 마음에 괴로워하고 있다.
호주라는 곳의 분위기상, 영어라는 언어의 차이상,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고 무릎을 꿇고 응대하며 ‘다나까’체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더더욱 잘 모르겠는 이유이다.
그리고 ‘어느 상황’이라는 것은 고객이 단단히 화가 나있거나 아주 급한 경우, 나까지 불안함이 동요되는 상황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무서운 표정을 하며 말꼬리를 잡고 쏘아 부치면 당장 그 앞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조용히 나와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
내가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 즉 내 잘못이 아닌 것을 두고 치는 난리라면 이젠 어느 정도는 무시하면서 듣는 시늉은 할 수 있지만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영어가 걸림돌이 되는 것이라면 8시간 근무시간 중의 단 한 건이라도 몇 날 며칠을 괴롭게 한다.
그러다 문득 둔 생각,
'우리나라의 5성급 호텔에서는 과연 내가 가진 영어실력정도의 한국어 실력을 겸비한 외국인을 호텔 프런트 최전방에서 근무하게 할까…? 지금의 나처럼?'
호주에서 호텔경영을 전공하고 호텔 경력이 있지만 지내면 지낼수록 외국인의 한계를 느끼는 바, 같이 일하는 상사및 동료들에게 궁금해졌다.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얼마 전에 나의 사수이자 매니저가 작성한 나의 probation report에 사인을 했다. Probation report는 내가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과 함께 일하는 매니저가 작성한 것을 HR에 제출하게 되어있다.
입사하고 단 하루도 쉬운 날이 없었던 나의 고군분투를 눈치챘는지, 나의 고민을 알았는지 나의 근심걱정과는 다르게 좋은 얘기들을 많이 써줘서 좀 감동했다.
칭찬이 후한 호주라고 하지만 그래도 고마웠다.
퇴근길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그들이 책임자인데…
내가 그 자리에서 할 만하니깐 곁에 두고 일하게 하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