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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Dec 07. 2023

왜 한국을 가냐고…?

휴가신청을 했고 한국행 비행기 표를 샀고 숙소비도 결제를 했다.  

가족들과 함께하기 위해 가는 한국이지만 모두 매일 아침 출근에, 등교에 바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인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규칙적인 일상을 방해하는 들쑥날쑥한 나의 일과를 이해하라고 하는 것이 좀 민폐인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혼자 산지가 오래되어서 인지 언제부터인가 숙소를 따로 잡는 게 내가 편해졌다.

그래서 사실 한국을 가는 거나 다른 여행지를 가는 거나 비용적인 부분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내년 초 한국행이 확실시되자 자랑하듯 친구에게 말했더니 친구가 말했다.


“그럴 거면 그냥 다른 나라를 가”


그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안 가본 것도 아니다.

(7박 8일로 미국 있는 대로 아는 척하기도 있다구요~)


근데 몇 번 다녀보니 (꽤 자주 나의 글에서 언급되었는데) 다른 나라에서 혈혈단신으로 이 정도 지내오면서 그 어떤 새로운 것을 해도 ‘혼자서 하는 것’은 더 이상 기분전환은커녕,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을 느꼈다.

어차피 혼자 밥 먹고 혼자 구경하고 혼자 감동하고 혼자 말할 건데 굳이 렌트비 내는 집 놔두고 또 다른 나라 가서 돈 쓰면서 그럴 필요 뭐 있겠냐면서…


혼자서도 이것저것 하면서 잘 지내는 사람들도 많던데 나는 홀로 보내는 시간을 어쩔 줄 몰라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래도 성격상,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물리적으로 나 혼자인 것을 견디기에는 외로움이 많은 편이다.

본의 아니게 이렇게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원하든 원치 않든 아마도 계속 지속될 거 같은 이 시간에 대한 불안함을 극복하는 것이 요즘의 최대 난제이다.


그러다 보니 일하러 가서는 사람들에게 치이고 집에 와서는 외로움에 치이다 보면 이제는 나의 기분 전환을 시켜줄 수 있는 것은 눈이 휘둥그레해 질 만한 새로운 것도, 대단히 특별한 것도 아닌 나를 챙겨주는, 나와 함께 것을 즐거워하는,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시간이다.


한국에 가면...  

“우리 작은 애가 왔어”라며 나 때문에 약속을 미루시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 주시는 어머니께서 계시고,

또래 한국 남자들과 얘기해 본지 너무 오래됐다고 하니 지인들과의 술자리에 나를 데리고 나가 주시는 형부도 있고,  같이 저녁 먹고 와인 서너 병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남들에게는 차마 못하는 집안 얘기, 인생 얘기하면서 서울 시내를 함께 걸어 귀가할 수 있는 언니도 있고,

나에게는 선물 사 오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만나면 비싼 거, 맛있는 것들을 시간 내어 사 주시는 이모도 계시고,

내가 갈 때마다 나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 번씩 연차를 쓰며 함께 하려는 사촌동생도 있고.

팔 벌리면 자석처럼 스윽 다가와 자고 가라면서 폭 안기는 조카들도 있다.


친구들은…  음…  어….. 거의 없… 아니 원래 나이 들면 다 인간관계들 정리되고 그러는 거 아닌가요…?


남아 있는 친구들은 결혼한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자유롭지 않긴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하루 날 잡고 제일 자유롭지 않은 누군가의 집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엠티 온 듯, 사육 당하 듯 각자의 일정에 맞게 왔다 갔다 하면서 밀린 수다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 늘 언제든 오라고 하는 친구들도 다행히 있다.



사실 남들에게는 여행지이고 특별한 장소인 곳에서 지내지만 나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단조로운 일상들로 점철된 곳이다 보니 어쨌든 한국을 가면 평소보다는 이벤트 같은 일들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어렵겠지만) 한 친구의 도움으로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를 통해서 더 오랜만에 다른 동창들을 만날 수 있기도 했고, 같이 사는 친구가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에 놀러 와서 같이 관광객 놀이 하면서 보내는 등의 예기치 못했던, 두 번은 있기 힘든, 즐거웠던 한때도 있었다.

 


연애든, 결혼이든 일단 한국에 들어오세요~.



지난번에 형부가 나를 사교계에 입문시키듯 데리고 나간 자리에서 외국 생활 경험이 있는 형부 지인들이 나에게 말했다.

 

다 정리하고 한국으로 가면 당연히 당장 지낼 곳도, 할 수 있는 일도, 먹고사는 일 모든 게 막막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시점에서는 혼자 발리 가서 마사지받고, 피지 가서 스노클링 하면서 잠깐의 휴가 기간 동안 새로운 인연을 기대하는 것보다 그래도 실속 있는 만남은 한국에서가 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


어쨌든 나의 휴가를 풍요롭게 해 줄, 어쩌면 어떤 것들의 계기가 되어줄 만남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한국 겨울이 다 가기 전에 꼭 만나요.


맛있는 거 사 주실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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