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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단 Feb 03. 2022

하루 1

아무렇게나 사는 우리를 위하여

A


비척이며 일어난 자리엔 살 냄새가 진했다. 빨갛고 노란 책더미와 휴지조각들이 쌓여있지만, A는 허공이라 부르는, 그곳을 바라보았다. A는 문득 사막의 모래를 떠올렸다. 작고 동그란 입자 형태의 모래는 부드럽고 매캐했다. 코를 처막는 먼지바람. A는 손을 뻗어 휴지를 뽑고, 코를 풀었다. 겨울로 넘어가는 환절기라 비염이 심해진 탓이다. 커아아. 말라붙은 목구멍에서 기괴한 소리가 났다. 검정색 커텐이 미처 가리지 못한 반쪽 창문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왔다. A는 오늘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관자놀이 아래서 들려오는 끼긱 소리가 거슬렸지만, 애써 무시하고 침대 협탁에 놓인 펜과 공책을 집었다. To do list. 가능한 한 빠르게 샤워할 것. C에게서 온 연락을 읽을 것. 괄호 열고, 답장은 안 해도 됨. 약을 챙겨 먹을 것. 공책에 적힌 내용을 전부 확인한 A는 살살 눈을 감았다. 속눈썹이 눈밑을 간질이는 감각. A는 종종 이렇게 자신의 안위를 최종적으로 검토하곤 했다. 


``


C


새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거실에 검보라색 가운을 입은 C는 마치 케이크 위의 막대기초 같은 모습이었다. 내려둔 에스프레소를 얼음컵에 부으며 A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 번의 신호음이 들렸고 A가 전화를 받지 않자, C는 전화를 끊었다. C는 샷얼음을 마시며 은은하게 올라오는 신경질을 제법 능숙하게 눌러삼켰다. 통창을 가득 채운 하늘은 아주 맑았다. 재채기가 나왔다. 무음. 윙윙대는 폭풍 소리. 눈알을 데우는 강렬한 햇빛. 샷얼음을 개수대에 버리고 물을 채워 마셨다. 고질병이 되어버린 저혈압에는 물이 좋다는 의사의 처방을 C는 성실히 실천하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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