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잠들기 전 사랑한다는 말을 꼭 하고 자야 하는 삼 남매가 있다. 여느 때처럼 둘째 아이가 잠들기 전 사랑해 인사를 한다.매일 하는 인사지만 달라진 한 문장이 있었다.
" 우리가 키우는 식물들도 사랑해! "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우리 나무들도 우리 가족이지. 엄마도 우리 나무들 다~~~ 사랑해!"
시골로 이사를 온후 가족들이 늘어만 갔다. 마당에 매일 놀러 오는 고양이들과 베란다 창문에 붙어있던 사슴벌레, 초등학교에서 부화되어 우리 집에 온 병아리들도 우리 집 삼 남매에겐 다 같은 가족이다.
자연과 함께 자라고 있는 우리 세 아이들을 볼 때면 이곳 시골생활이 참으로 정겹고 고맙기만 하다.
둘째 아이선생님과의 전화상담이 떠오른다.
" 농장에 엄마 아빠와 함께 파를 심었다고 하더라고요. 강아지 이야기도 자주 하고요.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고 있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습니다. "
특별할 것 없는 그 한마디에 이내 행복해졌다.
남편과 나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해 질 녘까지 산으로 들로 뛰어다닌 소중한 추억이 있다. 우리가 당연한 듯 누리던 그런 추억들이 우리아이들에겐 그저 동화 속 옛날이야기일 뿐이라는 게 많이 아쉽던 때도 있었다. 그때와 같을 순 없지만 비슷한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어서 시골생활이 감사하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스팔트만 밟고 자라던 삼 남매를 데리고 귀농한 지 이제 2년 차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올봄은 작년 이맘때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모든 게 새롭고 적응을 필요로 했던 작년에 비해 , 올해엔 그래도 조금 익숙함이 늘었다.
모든 게 불안했고, 많은 게 새로웠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시골에 대한 부정적인 글을 볼 때면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했었다.
'시골은 내려가는 즉시 후회! '라는 말. 그리고 그 무섭다는 '시골 텃새'까지.
하지만 걱정했던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친절하고 고마운 이웃들뿐이다. 역시 어디든 다 같을 수 없고 , 사람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토요일 아침. 막내가 유난히 들 뜬눈 치다.
" 오늘은 꼭 강아지들 보러 갈 거지? "
" 그럼~ 가야지. 얼마나 예뻐졌는데."
새끼 강아지들이 있는 우리로 들어가기 전 아빠견을 먼저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 백호야! 백호가 제일 좋아. 귀여워 "
제 몸만큼 큰 풍산개 백호를 유난히 예뻐하는 막내딸인데,
한주먹만 했던 백호의 어릴 적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는 듯하다.
" 이제 다홍이 한 테 가볼까? "
어미 견과 강아지들이 있는 우리에 들어갔다. 어미견을 충분히 쓰다듬어주지 않으면 앞에 와서 얼쩡거리며 샘을 부린다. 앞을 가로막고 머리를 들이미는 행동을 하는데, '아기만 보지 말고 나도 예뻐해 줘 '라는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쓰담 쓰담
" 그래 우리 다홍이 가 제일 예뻐! 제일 착해. 엄마는 다홍이게 제일 좋아. 기특해! "
충분히 사랑해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나면 그때서야 자리를 비켜준다.
" 아가야 이리 와~"
갓 태어난 강아지들은 아직 낯설어한다.
" 나 너네 엄마랑 엄청친하다. 쮸쮸~~ 이리온~~"
알아들을 리 없는 친분 자랑도 해본다.
쭈뼛거리던 강아지들이 한발 한발 다가올 때면 냉큼 들어 안아 꿈틀거리는 강아지를 뒤집어 암컷인지, 수컷인지를 괜히 한번 확인해본다. 모두 똑같이 생겨서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일이 쉽지 않다. 얌전히 안기는 그 눈빛이 어찌나 순수하고 해맑은지 정말 마음 같아선 쪽쪽 빨아주고 싶을 정도다.
" 엄마 얘 부끄러운가 봐. 소심아 이리 와."
" 엄마 얘 곰탱이처럼 생겼어. 곰탱아 어디가."
누가 누굴 보고 귀엽다고 하는지 , 7살 막내딸의 눈에도 아기는 아기인가 보다.
강아지들의 입양처가 결정되었다. 그때까지 며칠 남지 않았다. 보내기 전 많이 예뻐해 주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 본다. 가족 같은 반려견이 낳은 아가들을 팔아 차마 돈을 벌고 싶지는 않다. 값어치가 없는 아이들은 분명 아니지만, 생명에 값을 매기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예쁘게만 키워주세요. "
전원주택에 아이들이 있는 집. 우리 가족을 닮은 분들께 보내드리고 싶었다.
강아지들도 새로운 가족과 행복할 것이고, 그곳 아이들도 강아지와 함께 행복할 것이다. 마치 우리 삼 남매처럼.
까만 바지에 하얀 강아지 털들이 잔뜩 묻어버렸다. 막내딸 얼굴에도 하얀 털들이 붙어 살살 떼어준다. 시골살이를 하며 신발은 늘 흙투성이고 차는 먼지가 뽀얗다. 강아지들과 놀고 나오면 온몸에 하얀 털들이 잔뜩 붙어있지만 개의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