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고 있던 12월 22일 우린 딸기를 심었다.아마 이런 경험은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최초이자 유일하지 않을까 혼자 생각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진작에 안될 이유를 찾고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12월 말에 딸기 식재라니, 육묘는 어디에서 구한단 말인가. 12월부터 키워 3월부터 딴다 해도 가격이 안 좋을 때라 수익률은 기대할 수 없었다.
시골의 겨울은 도시의 겨울보다 춥다. 바람이 많이 부는 우리 농장은 주변보다 항상 기온이 낮다. 기록적인 한파가 계속되고 있었고 난방비는 거의 살인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팀페리스의 명언 "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하겠는가." 이 말대로 우린 결국 저지르고 말았다.
약간은 막무가내 같은 우리 부부라지만 12월에 전국을 수소문해 딸기 육묘를 찾아준 협력업체 대표님의 긍정마인드도 한몫했다. 우린 그렇게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함께 저절렀다.
그렇게 농장에 딸기 육묘가 든 박스가 도착했다. 신기했다. 육묘 상태가 좋아 보여 안심이 되었지만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12월에 딸기 육묘를 구하다니...
역시,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 없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600평에 높이 7미터의 스마트팜이 짓고 싶었으나 경력부족으로 정책자금에 떨어졌다. 그렇게 계획을 틀어 192평의 작은 딸기스마트팜이 지어지고 4500주의 딸기를 심었다. 겨울이면 그래도 조금은 여유로운 (일이 전혀 없지는 않다.) 휴농 기인데, 또 다른 일을 벌여 버렸으니 이제부터는 내 몫이다.
나는 경력부족으로 정책자금에 떨어졌고 그 경력을 만들기 위해 12월 말에 딸기를 심은 것이다.
좋다. 그게 그렇게 중요하다면 그 경력 만들어주겠다.
매일 기름 4통을 차로 날랐다. 차 안은 기름냄새로 진동을 했고 하루 기름값만 12만 원이었다. 그야말로 살 떨리는 금액이다. 하지만 어쩌랴 키워내야지. 그렇게 이를 악물었다.
건대추와 대추칩을 정말 열심히 팔았다. 딸기 난방비를 대기 위해서 열심히 팔아야 했다.
커다란 400리터짜리 기름통을 구입해 등유를 배달시키기 전까지 며칠 동안 직접 기름을 사러 다녔다. 한파에 더해 눈보라까지 몰아쳤다.
휴농기가 무색하게도 하루종일 바빴다. 식재 후 며칠이 흘렀다. 여느 때처럼 낮에 볼일을 본 후 기름을 사서 농장으로 향했는데 그날은 눈이 정말 많이 내렸다. 눈이 더 쌓이기 전에 빨리 집에 들어가야 했다.
내차는 4륜이다. 시골로 귀농하기 전 도시에서 살 때는 그렇게 미끄러운 눈길을 달려본 적이 없었다. 눈이 많이 오는 날에도 항상 도로에 제설작업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골길은 제설작업이 없는 곳이 정말 많다. 큰 도로만 눈이 녹아있을 뿐이다. 기름을 사기 위해 주유소로 향하다 그늘진 쪽 길에서 맥없이 미끄러졌다.
다행히 마주 오던 차가 없어서 내 차 혼자 비탈길에서 한 바퀴를 돌고 나서야 뒤로 내려올 수 있었다. 많이 놀랐지만 얼른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농장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저녁식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일러에 기름이 떨어지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딸기들이 냉해를 입을 수 있다. 어떻게 구하고 어떻게 심은 딸기들인데... 나는 보란 듯이 이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
온도가 순식간에 떨어지진 않겠지만 그날은 기록적인 한파의 날씨였고 매섭게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성토작업을 했다지만 딸기 농장자리를 매운 땅은 옆 도로보다 낮아서 농장으로 들어가는 길에도 비탈이 있었다. 그곳마저도 꽝꽝 얼어붙어 바로 전날에도 미끄러져 옆으로 내려간 적이 있었다. 그때 놀랐던 경험이 있어 반대편입구로 향했다. 반대편 입구에는 비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는 점점 기울어 어둑해지고 있었다. 농장 근처 축사옆길을 지날 때만 해도 눈이 치워져 있었는데, 제설작업은 딱 거기까지였다. 오전에 축사에서 나온듯한 트랙터가 눈을 치우는 모습을 보았는데, 우리 농장까지는 제설작업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 우리 농장 쪽부터는 계속 논이 이어져 통행차량이 많지 않은 곳이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제설작업을 해주지 않는다.
축사 끝부터 농장으로 가는 길목에 눈이 높이 쌓여있었다. 눈보라가 너무 세차게 몰아쳐 위에서 아래가 아닌 옆으로 내리는 것처럼 보였는데, 살짝 솟아있던 옆 언덕에서 옆으로 몰아친 눈이 다른 곳보다 조금 높이 쌓여있었다. 그 길이는 거리상 2~3미터 정도였는데 그 눈덩이만 밀고 가면 될 것 같았다.
'어쩌지... 나는 이 길을 지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우리 딸기들이 춥다고.'
마음이 급했다. 뒤로 돌아 농장 반대편으로 갔어야 했다. 비탈길에서 미끄러지더라도 잘 운전하면 괜찮았을 터였다. 나는 내차의 4륜을 너무 믿고 말았다. ㅠㅠ
'4륜이면 이 정도눈은 밀고 가는 거 아니야? 더 늦으면 안 돼! 딸기들이 춥다고. 나는 기름을 채워 넣고 빨리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가야 해.'
그렇게 나는 무모하고도 용감하게 앞으로 돌진했다.
퍽! 부릉부릉!
그렇게 눈에 갇히고 말았다. ㅡㅡ;
아~~ 급한 마음에 이렇게 바보 같은 행동을 하다니.
과연 이런 날씨에 119는 올까? 어쩌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있던 남편은 폭설에 길이 막혀 거북이걸음으로 아주 천천히 오고 있었다. 한 시간? 두 시간? 남편이 언제쯤 이곳에 도착할지는 모를 일이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딸기하우스의 기름보일러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 어떡해 ㅠㅠ.
하지만 역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농장을 지어주신 현장 소장님이 폭설의 날씨에도 일찍 퇴근하지 않으시고 우리 농장에 남아계셨다. 급히 전화를 걸었더니 바로 달려와 주셨다.
또 한 명의 어벤저스가 따로 없다. 눈에 파묻힌 내차를 보신 소장님의 표정은... 걱정반, 어이없음반...
둘이 삽을 들고 눈을 퍼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퍼내고 시동을 걸어보았지만 차는 계속 헛바퀴를 돌았다. 점점 피가 마른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다시 시간이라도 되돌리고 싶었다.
빨리 딸기들한테 가봐야 하는데...
한참을 눈을 파냈지만 차는 움직이지 않았고 멀리서 속이 타들어가고 있던 남편에게도 몇 번씩 전화가 걸려왔다.
" 눈이 쌓여있으면 가질 말았어야지! "
전화기 너머의 남편은 어이가 없다 못해 원망이 섞인 목소리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너무 급했었다고... 그 상황에 나를 탓해봤자다.
그때 옆 축사에서 젊은 남자가 나왔다. 퇴근하던 직원이었다. 축사를 전공하고 갓 일을 배우기 시작한 아주 젊은 남자.
그 젊은 축사직원은 순간 또 한 명의 어벤저스였다. 함께 눈을 퍼내고 차를 밀었다.
셋이서 한참을 실랑이하던 끝에 드디어 자동차가 빠졌다.
나 : "4륜별거 아니네. 눈은 못 뚫는 거였어?"
남편 :" 그게 아니고... 눈이 너무 많았잖아. 나는 지금껏 눈에 빠져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
나: " 4륜 자랑을 적당히 했어야지. "
남편 :" ㅡㅡ; "
해가 넘어가 어둑어둑 해 질 무렵 나는 무사히 하우스 기름보일러에 기름을 채웠고 , 그날 우리 딸기들은 안전했다.
' 잘생긴 젊은 총각! 고맙소 '
다음날 농장 출근길.
다행히 농장으로 가는 길의 눈은 치워져 있었다.
옆 축사에서 트랙터로 치워준 모양이다. ^^
아~~ 이렇게 감사할 때가........^^
딸기 따면 갖다 드려야겠다.
한파는 한동안 계속되었고 들어간 기름도 엄청났다. 신발은 눈에 빠져 늘 젖었고 손이 너무 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