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미’라는 말은 보통 공간에 의미를 둔다. 그림속의 빈 공간이나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던 시기의 빈 공간이 보이는 가구 배치에서 이 말을 떠올리곤 한다.
과연 공간에만 여백이 주는 편안함과 고요함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거기에 동의하긴 쉽지 않다.
숨 가쁘게 일상을 보내왔던 시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란 생각조차 못했다.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시간을 쓸 수 있을지 생각하고 움직였던 거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없었던 듯 하다. 사실 그조차도 잠을 자는 거였으니,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었다.
은퇴 후 일상을 보내며, 시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오늘 새삼 깨달았다. 청소, 설거지, 빨래 깉은 집안 일을 하고, 산책을 하고, 요가를 하고, 책을 읽고…하다못해 너튜브를 보고 핸드폰으로 신문 기사를 찾아 읽으면서, 꾾임없이 시간을 채우려 노력하고 있다는 걸.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게 있는 시간, 속칭 멍때리기가 어색한 걸거다. 무언가 해야만 한다는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베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건 현대인의 질병이 아닐까. 수없이 쏟아지는 컨텐트, 바쁘게 변해가는 세상,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의식하게 되눈 타인들의 삶. 그 속에서 바쁘게 뭔기 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고, 뒤쳐지지 않기 위해 소외되지 않기 위해 해야 히는 일들이 넘쳐나니까. 이러다보니 멍때리기 대회같은 것도 생긴 거겠지.
문득 나를 들여다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지 않냐고. 그렇게 여백의 시간을 갖는 연습을 해보자고. 쉽지 않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나를 들여다본다. 아니, 그조차도 하지 않고 그냥,..시간을 흘려보내본다. 아무 의미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