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칼의 노래]를 사두고 읽지 못했었다. 김훈이라는 작가의 유명세에 이끌려 샀지만,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라는 것이 그닥 마음을 끌지 못했던 거 같다. 픽션과 논픽션 사이에 놓은 애매함이랄까, 작가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가 소설이라 생각하는 나에게 이런 작품들은 매력이 없었던 거 같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위인이라니,.. 위인전도 아니고 이건 뭔가 싶은 반발감도 있었을 거다. 거기에 더해 작가적 상상력을 기대하기에도 무리가 있는 소재라 생각했다.
얼마 전 김훈 작가의 [개]라는 소설을 읽었다. 간결한 문장에 개를 화자로 삼이 풀어내는 씁쓸한 이야기라니…[칼의 노래]를 읽어봐야겠단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던 중, 밀리의 서재에 올라온 신작에 [하얼빈]을 보게 됐다.
책장을 넘기고 초반엔 안중근의 비중보단 이토의 비중이 큰 듯이 느껴졌고, 안중근에 비해 이토가 훨씬 큰 인물로 다뤄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직 젊은, 무분별하게 보이기 조차하는 안중근과 연륜 있고 큰 그림을 보며 정치적 판단을 더 해 일을 처리해 가는 이토가 대비되어 보이기도 했다. 사실상 이토 히로부미는 나쁜 놈이고 민족의 적이라는 생각에 드라마에서 보이던 얄팍한 이미지를 떠올렸던 것 같다. 조금은 다른 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거 같다. 좀 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그에 반해 안중근 의사에 대해선, 반발심이 들기도 했다. 일가를 이루긴 했으나 국가를 위한 큰 뜻을 이루기 위해 가족에 대한 책임이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인물. 그의 남겨진 가족, 특히 아내와 자식들이 마음 아팠다. 거사를 준비해 가는 허술한 과정도, 어찌 보면 더 현실적이긴 하나,..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토를 저격한 이후의 안중근은, 담대하고 차분한… 본인이 세운 목적을 위해 개인적인 감정과 슬픔은 내려놓는 인물이었다. 그 젊은 나이에 죽음에 이를 것을 알면서도, 주변이 힘든 상황에 놓일 것을 알면서도 담대하게 대의를 향해 나아가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흔들림 없던 그의 시간이 잘 그려진 듯하다.
도마 안중근이라는 무거운 이름이, 젊은 청년의 삶으로 다시 보였다. 조국을 위한 일이었지만, 그의 아내와 동생들, 자식들의 삶이 더 아프고 나도 모르게 안중근 의사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섞여드는 것은 나이 먹어가는 엄마의 마음일까… 안중근 의사도 대단하지만 그의 아내와 어머니, 형제들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일본에 이용당한 성인이 된 그의 자식들에 대한 안쓰러움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