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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Jun 26. 2024

불안을 피하지 않도록

나만 불안한 건 아닐거야

문득문득 생각한다.

아이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까? 가고 나면 학비는 어떻게 하지? 지원 프로그램 받을 수 있을까?...

노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느낌인데, Wall-E에 나온 사람처럼 거동이 불편해 기계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하지?...

회사 그만둔지도 벌써 4년인데,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뭔가 일을 다시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주식 계좌에 돈을 너무 많이 넣어놓은 건 아닐까? 주식이 급락해서 손해 보게 되면 어쩌지?...

아직도 살아야하는 시간이 못해도 20-30년은 될텐데, 저축해 돈 둔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현대인은 불안 속에 살아간다던데, 나 역시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걱정어린 물음표가 떠오르고 지금의 나보다는 미래의 나, 그리고 아이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게 된다. 흔하게 듣게 되는 얘기 중에 걱정하는 일은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그래서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말이 있다.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알면서도 우리 뇌는 얄밉게도 불안과 걱정속에 우리를 밀어놓곤 하는 거 같다.


사실, 내 불안의 많은 부분은 경제적인 것과 관련이 있다.

은퇴를 결심하고도 간혹 한 번씩 Indeed나 LinkedIn에 접속해 Job Posting을 들여다보곤 한다. 이러다가 돈이 다 떨어지면 어쩌나,..남들은 열심히 일하며 저축도 늘려가고 할 텐데, 나만 제자리에 있으면, 아니 그보다도 오히려 돈이 줄어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때마다 다시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과 함께 접속하게 된다. 어차피 지원하지도 않을거면서...

경제적인 불안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나는 현재 내 인생에서 가장 평온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남이 시키는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고, 시간에 쫓겨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일도 없고, 잠을 줄여가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뭔가에 최선을 다해야 할 필요도 없다. 시간이 럭셔리라는 말처럼, 여유로운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아, 물론 하고 싶지 않은 집안일은 여기선 예외로 둬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나 유튜브/기사에서 나오는 중산층의 기준, 은퇴를 위한 필요자금, 부동산 가격 인상 등의 기사를 보다보면, 머리속에 먹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나만 이런 건 아닐거야. 나만 이런 마음이 들고 머릿속이 어두워지는 건 아닐거야라고.


호모 사피엔스로 조직화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다보면, 모두가 믿는 신념과 소문, 거짓말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발 하라리 아저씨 말대로 말이다. 그 덕에 인류가 발전했을 수도 있고, 그 덕에 불행해졌을 수도 있지만, 어쨋든 그 안에 살고 있는 이상, 사회 시스템안에서 느끼는 "불안"이라는 감정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인거다. 그래서, 요즘은 그냥 아, 나 불안하구나. 하고 넘어간다. 어차피 순간적인 감정이라 생각하고,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 노력할 뿐, 불안을 피하기 위해 뭔가 대책을 세운다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대책을 세운다해도 어차피 또 불안한 마음이 들 테고, 거기에 더해 다른 이유로 불안함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대신, 불안은 불안대로 놓아두고, 어떻게 남아있는 내 시간들을 좀 더 질높게(?), 더 나은 삶으로 꾸려갈 수 있을까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으로.

사회에서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 인정을 받기 위해 일에 몰두하고 학업에 몰두했던 이전의 내 시간들에서 나는 취향이 없는 사람이었다. 학창시절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시험을 위한 공부외에는 취미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었고, 예체능에는 더군다나 관심이 전혀 없었다. 이후의 직장생활에서도 업무에서의 인정을 최우선했고, 업무 성과와 빠른 승진에 매몰되어 회사와 일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아이에게조차 신경쓸 시간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은퇴 초기에 불안에 잠식되기도 하고, 사회에서의 자아를 잃은 나를 어쩌지 못해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어쨋든 시간을 흘러갔고, 스스로를 돌보는 법도 터득하게 되었고, 나의 관심의 범위를 넓혀나가는 일도 조금씩 해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알고 있다. 세상엔 내가 모르는 것들이 여전히 많이 있고, 나에게도 취향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으며, 조금 더 나은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에서.


내 삶이 아주 조금, 한 뼘이라도 나아지도록 하루하루를 채워간다.

불안에 잠식되기 보다는, 투자를 위한 공부도 꾸준히 하고 환경에 작은 도움이나마 보태보기도 하고, 그림 그리는 아이를 따라 미술관에도 다녀보고 요즘 유행하는 음악도 듣고,..이것저것 요리에 집안이에도 신경쓰다보면 불안은 어느 사이에 저 멀리로 가 있는 거 아닌가 싶다. 그리고 어쩌면, 불안이 내가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도 한다. 단, 남의 기준, 사회에서 정답이라 생각하는 것에 따라가는 불안은 독이라는 거,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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