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조금 울었다. 내가 왜 울고 싶어진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긴 이야기를 맺는 문구가 멋지게 꾸며진 문장이 아니라, 감정을 배제한 것만 같은 단순한 사실의 기술이었기에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고 그래서 내 마음이 흔들린 것 같다는 데까지 생각이 닿았다.
비련의 사랑 끝에 이별을 맞이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찾아보던 시절이 있었다. 슬픈 이야기를 보며 내 안에 들어 있던 눈물을 쏟아내 버리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는데 막상 주인공들이 꺽꺽 소리 내어 목놓아 울기 시작하면 나오던 눈물이 도로 쏙 들어가 버리곤 했다. 그들의 격한 감정에 압도되어 관객인 내가 눈물을 흘릴 기회를 빼앗겨버린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늘, 나에게도 감정을 해소할 기회를 주는 영화를 좋아했다. 책도 마찬가지였다.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8. 4. 1. ~ 2023. 7. 11.)의 첫 소설이자 작가가 직접 겪었던 사건들을 투영해 썼다는 『농담』은 실제로 1965년에 완성되었다. 이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파란만장했던 기나긴 이야기에 담담하게 마침표를 찍은 이가 허구의 인물이 아닌, 피와 살로 이루어진 진짜 사람, 밀란 쿤데라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처했었을 상황이 답답하고 그것을 헤쳐 나오느라 피폐해졌을 그의 삶에 대한 연민이 고개를 들었다.
소설은 여러 명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첫 번째로 주인공인 루드빅이 있고 다음으로는 그가 오랜 세월 동안 앙심을 품고 살아온 제마넥의 아내인 헬레나가 있다. 이어, 루드빅의 어릴 적 단짝친구이지만 인생의 한 시점을 계기로 서로에게서 멀어지게 된 야로슬라브, 그리고 루드빅이 대학시절에 만나 몇 차례 도움을 건넸던 코스트카가 화자로 나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농담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그러니까 나는 농담이랍시고 가볍게 던진 말이 상대에게는 무거운 진실이 되어 타격을 가할 때, 일은 틀어지기 시작한다. 특히나 사회의 분위기 자체가 농담을 농담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경직되어 있는 경우, 농담은 그것을 던진 이에게 씻을 수 없는 치명타를 날린다.
"어떤 여정을 거쳐 내가 내 인생 최초의 난파에 이르렀는지(그리고, 썩 호의적이지 않은 이 난파의 주선을 통해 루치에에게 이르렀는지), 그 이야기를 가벼운 어조로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재미있게까지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나는 바보 같은 농담이나 즐기는 치명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고, 마르케타는 농담을 절대 이해 못 하는 치명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드빅의 경우가 그랬다. 체코 공산당이 집권하던 20세기 초, 루드빅은 사회의 분위기에 휩쓸려 공산당에 가입하고 사회주의자들이 할 법한 말과 행동들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쩌면 그는 좋아하는 여학생(마르케타)에게 쿨하게 보이고 싶고 그녀와 자유롭게 연애나 하고 싶은 이십 대 초반 학생일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방학 동안 그녀에게 농담 한 줄을 곁들인 엽서를 보낸 루드빅. 그런데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종이 한 장이 이후 십오 년 동안이나 그의 삶을 진창으로 이끌 줄이야! 동지라고 생각해 왔던 친구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대학에서 학업을 지속할 권리마저 빼앗긴 그는, 정신교육이 필요한 이로 분류되어 군복무를 시작하게 된다. 군대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탄광에서 노역에 시달리는 벌을 받던 루드빅은 그 과정에서 유일한 피붙이였던 어머니를 잃고 고향을 잃고 오래전부터 사귀어 왔던 친구들과도 사이가 멀어지고 만다.
저자인 밀란 쿤데라는 체코에서 태어났다. 그가 막 20세에 들어설 무렵, 그의 고국에서는 체코 공산당이 일으킨 쿠데타가 성공을 거두었고 다른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 그 또한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열망에 기대어 공산당원이 된다. 그러나 여러 갈래의 삶의 방향을 허락하지 않는 공산주의와 밀란 쿤데라의 성향은 잘 맞지 않았고 그는 공산당에 출당과 재입당을 반복해 가며 사회주의 국가적 이념과 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한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그는몸 담고 있던 교직에서 해직되고 저서까지압수당했다고하는데 집필활동마저어려워지자 1975년결국, 프랑스로 망명을 하게 된다. 이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고 그곳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던 밀란 쿤데라는 2023년 7월 11일 파리에서 생을 마감한다.
최초의 사건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잠시 고향을 방문한 루드빅은 마치 농담과도 같았던 자신의 과거와 화해 비슷한 것을 하게 된다. 화해 비슷한 것이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그의 삶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었던 문제를 속 시원히 뿌리 뽑는 식의 해결이 아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의미에서의 해결을 통한 과거와의 화해였기 때문이다.
올여름이한창일 무렵, 밀란 쿤데라의 타계 소식을 듣고 책장에 갇혀 있던 그의 첫 소설을 집어 들었다. 언론을 통해 접했던 그의 삶이 소설과 겹쳐 보여읽는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다.웃을 수 없는 세상에서 농담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인생이란 무엇인지, 인간에게 있어 이데올로기란 과연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명작이다.
나는 아무리 아니라고 해봐야 이제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똑같은 소리를 여러 차례 늘어놓았다. 농담이었다. 아무 의미 없는 말일 뿐이었고 그저 당시 내 기분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등등. 그들은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 책에서 발췌한 부분은 파란 글씨로 표기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여행하는가족'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는 이유미입니다.
하나의 작품이라도 독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이 문학의 힘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때로는 한 명의 독자라도 그가 어떤 경험을 거친 후 작품을 접하는지에 따라 같은 작품을 전혀 다른 빛깔로 받아들이기도 하지요. 한 작품을 시간 차를 두고 거듭 읽는 즐거움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문학은 허구이지만 저자의 경험이 완전히 배제된 100% 허구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설을 읽을 때면 저자의삶의 궤적이나 작품의 배경이 된 사회적 상황을 함께 찾아 읽곤합니다.
제가 느낀 감상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나 다른 독자들이 이해한 것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한 명의 독자로서의 저의 감상을 나누는 일도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오늘 소개한 소설을 읽어보신 분, 계신가요?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을 떠올리셨는지 나누어 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