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일 차

내 세상을 넓히는 용기

by 글쓰는 달


나는 약 20년째 S사의 휴대전화를 사용 중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편해서.

내 동생도 쿼티 키보드를 쓰던데 나는 아직도 천지인 자판이 편한 옛날 사람이다(하하하). 남들은 두 손으로 쿼티 키보드를 사용할 때 나는 한 손으로 두다다다 천지인 키보드를 사용한다. 컴퓨터 자판과 똑같은 배열이라 하여도 손의 움직임을 제어하기가 애매한 쿼티보다는 한 손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편이 내겐 더 익숙하다. 사용하는 용어나 메뉴 방식 등 내겐 너무나도 익숙한 방식을 사용할 수 있어서 자주 휴대전화를 교체하지 못하는 내겐 어쩔 수 없는 선택 같기도 하다. 굳이 한 브랜드를 고집하는 이유를 더 들자면 우리나라 최고의 AS 서비스가 가능해서 정도일 것 같다(유명한 마이너스의 손으로 한 번은 수리기사님이 수리 이력 보고 안쓰럽다고 가격을 깎아준 적도 있음).


그랬던 내가 올해 상반기에 아이패드를 사게 되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일단 디지털 시대에 어느 정도 맞춰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동안 나의 소비 패턴이나 직장에서 활용할 것들을 생각하면 사실 갤럭시 탭을 사는 편이 더 합리적이었겠지만 사실 나는 그때까지 갤탭이 아직도 생산되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을 정도로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적었다. 어쨌든 인스타그램에서 본 작가님들의 작품처럼 나도 다양한 그림도 그려보고 동영상도 편집해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세대주께 간곡히 부탁드려서 아이패드 프로를 얻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운 일이 많았다. 사람들은 이쪽 생태계가 직관적이고 익숙해지면 이것만큼 편한 것이 없다고 했는데 20년간 굳어 있는 나의 디지털 습관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첫 달에 애플리케이션 구입료로 10만 원가량을 쓰고, 액정보호필름과 패드 보호를 위한 케이스 등 추가 구입해야 하는 것들이 의외로 많아서 좀 아쉬웠다. 구입 전후로 아이패드 활용법에 관한 영상을 많이 찾아보았는데 이러다가는 댓글에 늘 있는 단골 멘트처럼 동영상 재생기로만 활용될 것 같다는 위기감도 들었다.


하지만 100일간 동굴에서 마늘 먹는 곰이 된 것처럼 이것저것 찔러보고 어플도 받아보고 테스트도 해보면서 내 삶의 질이 조금은 향상되었다고 느꼈다. 그리고 막막하기만 했던 애플의 세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내게 자신감과 추진력이 좀 생긴 것 같다. 가장 기뻤던 순간은, 그리기 어플로 우리 아이들의 체험활동 학습지를 손수 제작했던 것이었다. 프로 크리에이트로 그리고 블루투스 프린터로 출력까지 완성해서 내 손에 직접 실물을 쥐었을 때의 희열은 지금도 생생하다. 늘 편집 기술이 있는 사람들에게 아쉬운 이야기를 하거나 의존해야만 했던 나를 벗어나서 스스로 적극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는 것. 내가 생각한 일을 바로 완성까지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굉장한 만족을 느꼈다.


예전에는 아이폰을 보면 괜히 겁도 나고 내가 모르는 복잡한 세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패드로 한 번 발을 담그고 나니 나도 사과농장을 경영하고 싶은 욕심도 생기고 세상을 보는 눈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은 거창한 느낌도 들었다. 그동안 직장에서 사용했던 윈도우에서 벗어나 태블릿과 애플 세계관의 콜라보까지 알게 되니 흥겨웠다. 특히 올해 초에 동영상 편집을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유로 프로그램을 사야 하고 마우스로 일일이 점찍듯 넘겨가며 작업해야 해서 굉장히 불편하고 작업 성과도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아이패드를 사고 나서는 여러 가지 어플도 공부하게 되었고 노트북보다 태블릿과 펜슬을 활용해서 더 간단하고 고퀄리티의 결과를 낼 수 있어서 뿌듯했다. 한동안 동영상 편집에 즐거움을 느껴서 유튜브 채널 개설도 심각하게 고민했던 시기도 있을 정도였다.


최근 나의 세상을 넓혀준 것은 지문 인식 시스템이다. 그동안 내 폰에 이런 기능이 있는 줄 3년 쓰는 동안 전혀 몰랐다. 어느새 내 휴대전화의 잠금 패턴을 외워서 자유롭게 사용하는 유딩이 때문에 고민하다가 우연히 지문 인식으로 잠금화면을 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대주께서 지문인식으로 휴대전화를 편하게 잠금해제하는 모습을 보고 쫌 부럽던 차에 나도 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바로 지문 등록하고 사용한 지 일주일 정도 된 것 같다. 내가 등록한 것과 좀 다른 방향을 손가락을 갖다 대면 잘 인식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짜증 나기도 하지만 운전하다가 화면을 열어야 할 때는 여러 버튼 누를 필요 없이 손만 한 번 대면되니까 참 편하다. 그동안 두려워서 시작도 못했던 시간이 아까울 정도다.


오늘 본 세바시 강연에서도 그런 말이 나왔다. 자신만의 벽(그동안 자신이 극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온 것들)을 찾아보고 그것을 깨부수기 위해 노력해보라. 최소한 그러한 벽이 나타나면 노크하고 정중하게 마주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지금 읽고 있는 책 <마흔을 앓다가 나를 알았다>에서도 적극적인 삶의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가진 것이 많은데도 스스로 움츠러들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나도 새로운 것을 도전하거나 기존의 것을 포기하는 것에 소극적인 편인데 요즘 들어 적극적인 삶의 태도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게 휘두르는 것이 아닌 긍정적이고 차분한 일의 계획과 처리, 마무리까지.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다시 몸부림 쳐보려 한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조금이나마 적응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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