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선물이 조심스러운 이유
20년 전만 해도 생일 선물로 책을 주고받는 일이 흔했던 것 같다. 동네 서점에 가서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책을 고르는 일은 꽤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화분만큼이나 책은 상대방에게 부담이 되는 선물이 된 것 같다. 예전에 친구가 자신이 읽어보았는데 좋았노라며 크기는 작지만 두께는 국어사전 만한 수필집을 내게 선물해준 적이 있다. 아마 선물 받은 지 19년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그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생각난 김에 찾아봐야겠군)! 반대로 내가 선물한 책을 읽고 엄청난 감동을 받았노라며 어떻게 그런 책을 고를 수 있었냐며 너무나도 고마워한 지인도 있었다. 그럴 때 내 기분은 참 뿌듯해지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타인에게 책을 추천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나는 무언가 제대로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분야가 있으면 무조건 책부터 사서 읽는다. 요즘처럼 유튜브나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여러 가지 정보를 더 빠르게 수집할 수 있는 시대에 나 같은 발상이 좀 구식처럼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책을 선호하는 이유는 하나의 책을 내기까지 저자와 출판담당자는 핵심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무수히 연구하고 노력하여 간결하고 보기 좋게 정보를 정렬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이다. 실제로 웹 상에서 정보를 찾는 경우에는 여기저기서 모은 조각들을 내가 다시 재조립하고 정리해야 쓸 만해지는 경우가 많다. 팩트 체크를 위해서 한 가지 영상만 보는 것도 금물이다. 하지만 책은 내가 해야 할 이런 수고를 이미 저자가 다 해서 정리하고 뽑아낸 정보를 순서에 맞추어 볼 수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시간이 더 절약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한 가지 분야에 대해 집요하리 만큼 책을 사들이는 편이다. 최근 몇 년간 가장 많이 산 분야는 역시 미술과 육아(교육) 관련 서적들이다. 작가에 대해 알아보고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미리보기나 책 소개 등을 꼼꼼히 읽어보고 책을 구입해도 언제나 내게 만족을 주는 것은 아니다. 왜일까.
모든 사람에게 다 통하고 좋은 책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이러한 갈증은 육아서를 살 때 많이 느꼈다. 블로그를 통해 이미 유명세를 얻은 한 작가의 책을 샀는데 그가 제시하는 이론이 내 귀에 잘 들리지도 않다 보니 실천도 못해보고 거의 새 책으로 책장에서 눈을 감는 일이 꽤 있었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거나 혹은 내 상황과 딱히 맞지 않을 때, 내가 기대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책이 흘러갈 때, 이론만 나열하고 실제로 생활 속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지 못할 때 등등의 상황에서 ‘아, 이 책은 나랑 안 맞는구나’하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술 서적, 특히 수채화 관련 책은 틈틈이 인터넷 서점의 신간 코너를 훑어볼 정도로 최근 3~4년간 출간된 것들 중의 절반 이상은 사거나 읽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그 책들이 모두 내게 감동을 준 것은 아니다. 표지만 그럴싸하고 내용은 허술한 경우도 있었고 준전문가인 내가 봐도 터무니없이 어렵거나 설명이 대충 되어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어쨌든 책을 보고 나면 sns에 나만의 리뷰를 올리는 등 내가 워낙 다양한 미술책을 사다 보니 주변에서 책 추천 부탁을 많이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참 곤란하다. 부탁한 분이 원하는 방향이나 그분의 그림 실력 등등에 대해 알아야 나도 구체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할 때는 망설여진다. 그리고 요즘 세상이 무서워져서 좋은 말은 상관이 없지만 책과 관련해서 너무 솔직하게 안 좋은 점까지 밝혔다가 공공의 적으로 몰리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 책을 내기까지 어쨌든 저자는 고심했겠지만 내게 와 닿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비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 같은 동료 소비자들에게 무조건 좋은 말만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최소한 수채화 분야에서는 내 마음속에 입문자를 위한 책 top 3가 3년째 변함없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색연필과 마카를 위한 입문 도서도 한 권씩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그래도 추천이 쉽지 않은 것은 혹시나 나와 다른 취향이나 조건으로 인해 그 책이 별로라고 생각되어질까 봐 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