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을(청소)
나는 정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청소도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아주 가끔 집요하리만큼 끝을 보는 과정을 좀 즐긴다.
둥지를 만들기 위해 온갖 나무가지를 주어다 모으는 어미새마냥 나 역시 여기저기서 받거나 구하게 된 책, 그림, 화구나 문구 등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고 있다. 한눈에 보기쉽게 정리를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오늘도 지레 겁먹고 멈춤상태이다. 이처럼 정리는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지만 청소는 그와는 조금 다르다. 아주 작은 부분은 내가 노력하면 어느정도 해결이 된다. 모르면 모를까 한 번 알고나면 그 전으로 갈 수 없는 몇가지를 이야기해본다.
처음 침구청소기로 이불 위를 몇 번 오가고 난 후 먼지통을 열어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머리카락은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모래처럼 무겁고 회색의 먼지들이 먼지통 바닥에 하나 가득 깔려있는 광경을 보고 나면 ‘내가 그동안 이걸 덮고 있었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완벽하게 끝내고 싶은 생각에 여러번 더 같은 과정을 반복해도 이전보다 양은 줄었을지 모르나 계속 먼지가 나온다. 차라리 몰랐던 때로 돌아가는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얼마 전에 남편이 내게 ‘세탁할 때 세제의 양을 줄이거나 헹굼 횟수를 늘려’줄 것을 부탁했다. 이유는 바지에 먼지가 잔뜩 붙어 있어서 테이프로 떼고 싶었지만 출근하기에 시간이 바빠서 그냥 입고 나갔다는 것이다. 우리집 세탁기는 구입한지 10년이 조금 안되는 상태이다. 간간히 세탁기 자체기능인 무세제 통세척을 해왔고, 가끔 세탁조 클리너를 활용해서 깨끗하게 관리해왔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동안 세탁기 위생에 대한 조금의 의심이 있기는 했다. sns 광고를 보고 세탁조 클리너를 구입하게 되었는데, 광고에서 보여지는 설명은 대부분 통돌이 세탁기이고 우리집은 드럼 세탁기여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화면에서처럼 극적으로 먼지가 둥둥 떠오르는 장면은 우리집에서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후기가 워낙 좋고 내가 세탁 전과정을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덮어뒀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세탁조 클리너를 쓰고 나서도 뭔가 더 개선할 점은 없을지 살펴보게 되었다. 그러다 세탁기통 입구에 붙어 있는 고무패킹을 만지게 되었고 작은 먼지덩어리 같은 것이 손에 만져졌다. 손끝에 느껴진 촉감이 예전의 기억을 꺼내왔다. 가끔 수건을 세탁하고 건조코스까지 하고나서 빨래감을 꺼내고 나면 고무패킹 부분에 얇은 포장지처럼 먼지가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세탁기와 분리된 건조기를 사용하는 분들의 후기에서 건조기 사용후 비염이 없어질 정도로 섬유에 있는 먼지를 싹 빼주는 모습을 보면 속이 시원해졌다는 내용을 자주 보았기 때문에 우리집 세탁기에 붙은 먼지를 볼 때면 대수롭지 않게 패킹의 겉부분을 손으로 훑어서 먼지포장지를 떼어내곤 했다. 그런데 건조코스 없이 오로지 세탁조 클리너 사용 후에 축축하지만 적은 양의 먼지를 만지고 나니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일단 젖은 상태의 패킹 겉부분을 손으로 문지르고 혹시나 싶어서 패킹 일부분부터 손가락을 넣어보고 점점 여러곳을 까뒤집어 봤다. 세상에! 그 안에는 옅은 보라색과 회색 먼지 및 찌꺼기들이 머리카락과 함께 여기저기 뭉쳐있었다. 좀 더 용기를 내서 손가락을 여러방향으로 움직이며 패킹 내부를 훑어가기 시작했고 결국 아기 주먹 정도 되는 양을 모으게 되었다(어머나). 몰랐을 때야 먼지의 존재여부가 전혀 상관 없었지만 한 번 신경쓰기 시작하니 그 후로도 세탁이 끝나면 패킹 안쪽을 들여다보거나 손끝으로 살살 글어서 먼지를 더 빼내기 시작했다. 침구청소기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완벽하게 끝나기는 어려워보인다(울엄니께서는 수건이나 속옷 등 뜨거운 물로 세탁해도 되는 것들을 모아서 ‘삶음 코스’로 빨아볼 것을 권하셨다. 그렇게 하고나면 패킹이 깨끗해졌다고 하셨다).
머리카락이 워낙 잘 빠지는 사람들이 모인 집이라 그런지 청소 문제의 대부분은 ‘머리카락’과 관련이 있다. 거실 구석에 모여있는 먼지도 머리카락이 붙잡고 있고 세탁기 고무패킹 먼지양탄자도 머리카락이 있어야 견고하게 짜인다. 역시 머리카락으로 가장 괴로운 장소는 욕실이다. 아이들이 종종 욕조에서 반신욕을 하고 나서 물을 빼기 위해 욕조마개를 열면 세면대 아래 있는 수채구멍에서 물이 역류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그러면 어김없이 위생장갑을 꺼내 양손에 끼고 용감하게 거름망을 열고 후비기 시작한다.
그러고보면 내가 막힌 욕실 세면대도 뚫고 부엌 싱크대도 뚫고 은근히 이런 쪽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아마도 매일 꾸준히 하는 것보다 한 번에 극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쪽을 좋아하는가보다. 귀차니즘은 이런 곳에서도 나타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