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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각 Jan 26. 2021

아무 말 대잔치 주최 측의 입장

작금의 사태에 대한 전문가용 요약 보고서

칸쿤에 가서 도토리 기념품을 산 이야기를 쓴 뒤, 뭐라고 제목을 지을 것인지 늦은 밤 아내와 쓸데없는 토론이 시작되었다. 제목이고 뭐고 밤이 늦어 만사가 귀찮은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칸쿤에서 있었던 일이니까 깔끔하게 <칸쿤의 추억> 어때. 뭐 너무 맛이 안 난다고? 나도 알아. 그냥 생각하기 귀찮아서 그래.


알았어, 그럼 <칸쿤 도토리의 추억>은 어때. 뭐 뜬금없다고? 이게 왜 뜬금없어? 독자들이 호기심을 가질 것 같지 않아? 칸쿤이랑 도토리랑 대체 무슨 관계일까. 제목 자체가 미스터리네 미스터리. 쌈빡하게 궁금증이 폭발해서 사람들이 막 읽을 거 같지 않아?


뭐라고, <칸쿤과 뷔페>라고 지으라고? 뭐, 칸쿤에서 뷔페 먹은 얘기도 나오니깐 그걸로 하라고? 야, <칸쿤과 뷔페>가 어떻게 <칸쿤 도토리의 추억>보다 나은 제목이 될 수가 있냐. 사람들이 보면, 아~ 이 글 쓴 애가 칸쿤 가서 뷔페 먹은 존나 지루한 얘기구나 하면서 다른 글 읽을 거 아냐.


좋아, 그럼 이거 어때 <칸쿤이냐 미국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괜찮지 않아? 미국에 이민 와서 유카탄 반도에 촤아~~~ 하고 여행을 간 거야. 근데, 막 그런 게 가슴속에 확 밀려오면서 막 그런 실존적인 고뇌가 후벼 파듯이 밀려오는 거지. 캬~~ 하면서 소주 같은 거 들이 붇고 싶은 제목 아니냐. 야, 너 왜 아무 말도 안 해. 너 지금 내 말 씹냐.


아놔, 진짜 이 여편네, 알았어. 그럼 이건 어때 <칸쿤은 역시 칸쵸>. 어, 방금 웃었어 ㅋㅋㅋ 이런 저렴한 걸로 웃냐 ㅋㅋㅋ 너 웃었으니까 이 제목 괜찮은 거 아냐? 아니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대답 좀 하시지. 


아님 <칸쿤에서 온 편지> 어때? 뭐라고? 어, 이거 편지랑은 사실 상관없는 얘기야. 알아, 됐어 그만해. <바람 부는 날에는 칸쿤에 가고 싶다> 이건 어때? 베끼지 말라고? 그럼 <칸쿤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도 싫은 거지? <님아 그 칸쿤에 가지 마오>도 안되나? 그럼 <밀림의 왕자 칸쿤>은? <호두와 도토리의 정글은 언제나 칸쿤> 이래도 싫어? <넬슨 칸델라>는? <파비오 칸나바로>라고 알아? <칸 카라 간 칸 칸칸칸, 카라 가라 간칸 칸칸칸>으로 할까. 원래 포스트 모더니즘은 서사의 붕괴가 핵심이야. 이참에 브런치에 신선한 바람을 한 번 일으켜 보는 거지. 어때, 나 쫌 대박인 듯 ㅋ


잠결에 나와 대화하던 아내가 갑자기 눈을 뜨더니 말했다.


“오빠, 내가 부끄러워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꿈에서 제목을 지었어.”


“뭔데.”


“칸쿤의 디제이 쿠! 칸쿠네 디제이 쿠! 캉쿠네 디제이... 쿠... 쿠울...”


“이게 뭐하는 짓이야. 야, 자냐. 야... 아놔 진짜 자네...”


제목을 못 지었으니 오늘 글을 올리기는 글렀다. 적절한 제목이 생각이 나지 않으면 <대머리 여가수>라고 지어야겠다.




이토록 힘들게 제목을 지은 글을 읽어 보시려면 아래의 링크를 눌러주세요:

어렵사리 제목을 지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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