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원석을 다듬는 일

by 최정성

너무나도 유명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그의 별명은 망치를 든 철학자이다. 이 별명은 그가 스스로를 명명한 것이기도 하다. 철학자의 손에 망치라니! 뭔가 참 무섭다. 아마도 자신의 사상이 가지는 파괴력을 표현한 것이리라. 그런데 니체는 자신을 어머니라고도 불렀다. 망치를 들었다고 했다가 어머니라고도 하다니 이 무슨 자기모순적인 이야기일까? 그리고 육아 이야기를 하다 말고 망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또 무슨 해괴한 짓일까?


니체는 왠지 괴기스럽고 무서운 이미지가 있다. 어쩌면 그렇다. 그는 자신의 당대의 모든 사상과 학술에 광역 어그로를 시전 한 전문 키보드 워리어였다. 그래서인지 무서운 싸움꾼 같기도 하다.


여기서 잠깐! 학창 시절 배웠던 니체에 대해 다시 떠올려 보자. 니체 하면 초인이 떠오른다. 그리고 초인의 삼 단계를 외웠던 기억이 날 것이다. 초인은 낙타의 모습에서 시작해 사자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린아이가 된다. 니체의 초인은 어린아이이다. 니체는 존재의 완성 혹은 끝판 왕에 어린아이를 두고 있다. 왜 어린아이일까?


모든 인간은 어린아이였다. 육아란 이 어린아이를 키우는 일이다. 니체가 자신을 어머니라고 표현한 것은 초인을 키우고 싶었던 자기 욕망의 표현이 아닐까?


모든 인간은 원석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원석은 그 가치를 아는 사람과 그것을 세공할 수 있는 사람의 손에 있을 때 빛난다. 원석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돌멩이에 지나지 않는다.


니체는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자신은 초인이 될 수 없음을. 그래선지 니체는 다른 욕망을 품었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든 망치로 원석을 세공하고 인간이 원래 가지고 태어나는 (철학에서는 이것을 본유적이라는 난해한 표현을 쓴다.) 가치를 완성시키는 어머니이길 원했다. 그렇게 초인을 탄생시키는 어머니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니체에겐 자식이 없었다. 그의 손에 들린 망치는 인간을 파괴하는 망치가 아니라 원석을 가공하는 보석 세공사의 망치이다.


우리는 니체가 그토록 열망했던 일을 하고 있다. 육아란 단순히 아이를 먹고 재우는 일이 아니다. 원석을 다듬고 가공하는 위대한 일이다.


때로는 원석을 다듬다 망치로 손을 찧을 수도 있다. 때로는 너무 단단해서 손목이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기억하자. 가장 단단한 것이 다이아몬드라는 사실을.


당신이 경험하고 있는 상처와 아픔은 너무나 숭고한 일이다. 당신은 한 인간을 조각하고 있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아이를.


그러나 육아의 양면성도 기억해야 한다. 이 원석을 반짝반짝 빛나는 유니크한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흔해빠진 돌멩이로 만들 수도 있다. 모두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우리의 손에 쥐어진 이 보석을 더 사랑하자. 내 아이를 돌멩이로 만들 순 없지 않은가?


나는 아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니체를 떠올린다. 그리고 나의 원석을 다시 한번 더 안아준다. 조금씩 원석을 세공해 나간다. 때로는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고치려 노력한다. 그러나 쉽게 되지 않는다. 그리고 마음에 생체기가 생긴다. 그럴 때면 다시 니체를 떠올린다.


‘다이아몬드 같은 녀석! 세공이 쉽지가 않네. 오늘도 내 손을 찧었어. 그래도 기대해. 네가 반짝반짝 빛날 그날을’


당신은 위대한 양육자다! 현대의 문을 연 위대한 철학자가 그토록 꿈꿔온 일을 당신이 지금 하고 있다. 당신의 양육은 당신의 아이를 반짝반짝 빛나게 만드는 위대한 과업이다. 그리고 반짝반짝 빛날 당신의 아이가 먼 훗날 반짝이는 눈으로 당신에게 말할 것이다.


“고마워요. 날 사랑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