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당신의 육아를 응원합니다

by 최정성

우리는 사랑을 하고 있다. 지금도 육아를 통해 아이를 돌보는 당신은 놀라운 사랑꾼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는 아이에게 나 자신이 부족한 양육자라고 느낄 때가 있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랑꾼이다.


프랑스 현대 철학자 장-뤽 낭시의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낭시가 여섯 살에서 열두 살 된 아이들을 대상으로 강연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낭시는 아이들에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낭시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혼란스러운 것이라고 알려준다. “난 널 사랑해”라고 부모님이 아이에게 말할 때, 부모는 아이에게 이미 모든 것을 다 주었다. 사랑의 혼란스러움은 여기서 시작된다. “난 널 사랑해”라 고백하는 이 고백 안에 사랑의 모든 것이 담겨 있지만 동시에 아직 주지 않은 것이 발견된다. 그래서 또다시 부모님은 모든 것을 담아 아이에게 사랑을 전달한다. 그런데 또 남아있다! 그래서 사랑은 혼란스러운 것이다.


나는 이 사랑의 혼란스러움이 너무 좋다. 아들을 키우다 보니 아무리 아들에게 모든 사랑을 쏟아부어 주려해도 부족하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아빠라서 아이에게 엄마 양육자들만큼 사랑을 주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낭시의 이 책이 떠오른다.


내가 아이에게 모든 것을 주었지만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나는 아이를 정말 사랑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사랑이 어려운 것 같다.


주고 또 주고, 안아주고 또 사랑을 줘도 무언가 부족하지 않을까 고민이 된다. 그래서 참 행복하다. 부모로 산다는 것은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축복 이리라.


아들을 키우다 보니 때로는 화를 내기도 한다. 때로는 혼을 내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곤히 잠들어 있는 아들을 보며 어김없이 우울해진다. ‘화내지 말 걸.’ ‘한 번 더 안아 줄 걸.’ 같은 생각들이 가득 머릿속을 채운다. 그리고 스스로 부족한 양육자라는 죄책감이 든다. 불 꺼진 방 안에서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안한 마음에 혼자 훌쩍이기도 한다. 더 잘해주고 싶고 늘 미안한 마음. 이것은 나만 겪는 일이 아니다. 대다수의 양육자들이 경험하는 아픔이자 고민이다. 그런데 철학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아이 때문에 아파하고, 미안해하는 당신은 누구보다 아이에게 사랑, 그 자체이다. 그래서 양육자는 숭고하다.


양육자와 아이의 관계, 한 아이가 사랑이라는 개념을 만드는 절대적 기준이 양육자이기 때문이다. 한 존재에게 사랑의 기준을 탄생시키는 숭고함이 양육이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탓하거나 비하하지 말자. 당신은 이미 충분히 사랑하고 있다.


오늘도 육아로 인해, 아이와의 갈등으로 인해 고민하는 당신은 숭고한 사랑의 전달자이다. 그러니 자부심을 가지자. 숭고함을 실천하는 당신의 인생을 응원한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참 잘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