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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Mar 11. 2024

전공의 파업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남편이 주말 내내 자정 가까이 퇴근했다. 전공의들이 사직해서 교수들이 당직을 서고 있다. 뉴스에서는 의사가 환자를 볼모로 카르텔을 한다는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 의사는 억울하다. 의과대학 6년 군의관 3년 대학병원 전공의 5년. 어떻게 보면 의사는 나라를 위해 8년 정도를 최저시급만 받고 봉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직업군이 일주일에 40시간 이상 일하는 건 착취라 생각하면서도 전공의가 일주일에 80시간 이상 일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의대 정원을 늘린다? 좋다. 그런데 의대생이 졸업해서 민간 병원에서 전공의가 늘어나면 인건비는 누가 줄 건가? 나라가 민간 병원을 운영하는 게 아니니 병원이 스스로 알아서 마지노선 이상의 수입을 올려야 전공의를 더 뽑을 수 있을 거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의료 수가는 원가의 70%로 정해져서 환자가 돈을 더 내든지 직원이 돈을 덜 받아야 병원이 유지될 수 있다. 그래서 5년 정도만 참으면 능력껏 고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 인턴 레지던트 월급을 낮게 책정해서 원가를 메꾸고 있단다.    

 

의사들이 무조건 의대 정원을 늘리지 말자는 게 아니다. 제대로 된 한 명의 의사를 키우려면 학교 공부만큼 현장 실습이 중요하다. 의사는 어쩌면 중세의 도제 제도를 통해 장인을 육성하듯이 선배 의사에게 장시간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기술을 배운다. 충분히 역량을 갖춘 선배 의사는 전공의를 마치고 전임의를 거쳐 의대를 졸업하고도 적어도 10년 정도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아무리 빨라도 내과 계열은 30대 중반 외과 계열은 30대 후반 정도 될 거다. 게다가 대학병원에 남아서 후배 의사를 가르치는 의사를 하려면 환자를 진료할 뿐만 아니라 논문도 쓰고 강의도 해야 한다. 그러면 당장 내년에 1000명이나 되는 의대 교수를 확보할 수 있을까? 의학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은 구할 수는 있을 거다. 그러나 연구와 임상을 병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의대 교수가 되는 건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 너무 서두르는 것 같다.      


지방 거점 공공의대를 만들고 10년을 복무시킨다고 해도 환자들이 지방에 있는 병원에 가지 않고 KTX 타고 모두 서울로 올라간다면 어떻게 할 건가? 아무리 많은 의사가 있어도 사람들이 특정 지역 특정 병원을 선호하는 것도 문제다. 한국은 나라가 작아서 서울 가서 치료받는 사람을 막을 수 없을 거다. 그렇게 빠져나간 환자로 인해 지방 병원 운영이 힘들어지면 정부가 자금을 대줄 건가? 그래서 공공의대와 민간의대를 분리해서 교육시켜야 한다. 공공의대 출신은 국가에서 만든 의대에서 교육받고 공공병원에서 공무원처럼 월급 받고 계속 일하면 된다. 그러면 응급, 외상, 중환자, 소아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에 필요한 의사 수를 유지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민간 병원에게는 의료 수가를 자유롭게 받게 해 주면 된다. 그러면 환자는 자금 사정에 따라 병원을 선택할 수 있을 거다.      


아무리 남편과 아들이 의사지만 환자가 되었을 때 병원비가 적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니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공공의료원을 찾을 거고 좀 더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은 민간의료원을 찾을 거다. 공공의료도 질이 좋아지려면 좀 더 의료 수가를 맞춰줘야 하고 그러려면 국민건강보험료를 올려야 할 거다. 벌써 우리 부부는 각자 소득이 있어서 상당히 많은 보험료가 월급에서 나간다. 그러나 병원에 갈 일은 별로 없다. 그래서 실손 보험도 들지 않았다. 몇 번 쓰러져서 병원에 간 적이 있지만 비급여 금액이 크게 부담되지 않아 아직까지 보험이 없다. 그러나 앞으로 나이들 일만 남았으니 보험에 가입해야 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젊을 때 보통 사람은 병원에 갈 일이 거의 없다. 은퇴하고 나이 들어 수입이 없을 때 병도 찾아와서 병원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미국에 살다 한국에 와서 가장 좋았던 점이 병원에 부담 없이 갈 수 있다는 거다. 미국에 있을 때 병원에 못 갔던 건 아니다. 한국보다 비싸서 그렇지 직장을 통해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서 아프면 병원에 갔다. 두 아이를 낳았을 때도 보험 덕분에 얼마 들지 않았다. 소아과나 치과도 정기적으로 다녔다. 그러나 직장 보험으로 갈 수 있는 의원은 한정돼 있고 감기증상이 있어 의사를 볼 때마다 20년 전에도 4만 원 정도 내야 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병원에 가지 않고 대형마트 한쪽에 있는 상비약 코너에서 처방전이 필요하지 않은 약으로 견뎌야 했다. 이렇게 의료비가 비싸다 보니 미국 사람은 직장 보험을 유지하기 위해 일을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다는 말을 종종 했다. 그러나 미국도 저소득층이나 65세가 넘는 사람에게는 의료비 지원이 있어서 젊은 사람보다 병원 가기가 쉽다.


이번 사태를 보며 가장 놀라운 점은 탄압에 가까운 정부의 대처방법이다.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면허증을 받은 사람에게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면허를 취소하겠다고 위협하는 게 이상하다. 의사면허증을 받으면 전공의를 하지 않아도 일반의로 개업할 수 있다. 그런데 의사면허 소지자가 전문의가 되고 싶어서 병원에서 수련을 받다가 사정이 생겨 전문의는 하지 않고 일반의로 남겠다고 하면 벌써 취득한 일반의 면허도 취소한다는 말인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특정 직업군에게 선택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무섭다. 마치 의사를 정부에 소속된 군인으로 보고 병원에 사직한 걸 탈영병으로 보는 것 같다. 그렇게 정부에 소속된 의사가 필요하면 공공의대를 만들고 공공병원을 만들면 된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품질과 가격이 반비례하는 경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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