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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Aug 20. 2024

만약 내 자녀가 그렇다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읽고

안드레 아시먼(André Aciman)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영화로도 나와서 많이 알려진 내용이라고 들었지만 필자는 독서 모임 덕분에 처음 읽었다. 처음에는 나중에 알게 될 내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보다 나도 돈이 있다면 시골 바닷가 근처에 아름다운 별장을 지어놓고 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들이 마지막으로 논문을 마무리하며 쉴 수 있는 그런 장소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17살 밖에 안 된 엘리오가 어른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하이든의 <<그리스도의 마지막 일곱 말씀(Seven Last Words of Christ)>>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게다가 기타도 잘 치고 리스트의 곡을 편곡해서 칠 정도로 피아노도 잘 친다. 나도 저런 아들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야기는 보수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64세의 내가 읽기에 불편한 진실이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했다. 영민하고 음악적인 천재성마저 느껴지는 엘리오는 7살 연상의 올리버에게 홀딱 반해 그냥 멋지고 똑똑한 형이 좋고 닮고 싶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와 살을 섞고 싶어 한다. 이 시점에서 “망측해라!”라는 말이 나오려 하지만 육체적인 관계만 배제한다면 엘리오가 올리버를 향한 사랑의 마음은 마치 첫사랑을 연상할 수 있는 순수함과 진실함이 짙다.  


처음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동네를 데리고 다니며 했던 행동이나 몸짓을 보면 어릴 때 처음으로 좋아했던 사람을 기억나게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우연히 큰 목소리로 뭔가 아이들에게 관심을 끌만한 이야기를 하여 부반장이 됐다. 그때 반장이었던 아이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데 모든 여자 아이들이 그 아이를 좋아해서 선생님이 반장과 부반장에게 따로 뭔가를 시키면 여자 아이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직감됐다. 그래서 반장이 좋으면서도 부러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는 퉁명스럽게 대했다. 당시 한국 최초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에 살았던 우리는 비록 다른 동에 살았지만 집으로 가는 길이 같아 하교할 때 거의 매일 마주쳤다. 그러나 그 아이가 앞에 걸어가는 게 보이면 부러 건너편 길로 건너가 그 아이와 평행으로 걸으며 살짝 옆으로 고개를 돌려 그 아이도 나를 봐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획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보는 척했지만 꿈에 나올 정도로 그 아이를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사람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여 그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행동을 자주 하며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된다. 엘오도 올리버를 그렇게 면밀히 관찰했다. 


엘리오는 올리버의 차림새와 모든 행동을 생생히 기억한다. 빨간 수영복을 입고 작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한참을 걸려 잘 익은 살구를 따는 모습. 에스파드릴(espadrilles)을 신고 빌로위 셔츠(billowy shirt)를 입었던 모습. 수영복 색깔에 따라 네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기억. 빨간색을 입을 때는 대담하고 고집이 세고, 무뚝뚝하고 어른스럽고 까다로운 것 같아 가까이하지 않는 게 낫고, 노란색을 입을 땐 쾌활하고 날카롭지 않게 재밌고 쉽게 포기하지 않았지만 금세 빨간색이 될 수도 있었고, 녹색은 거의 입지 않았지만 그럴 땐 순응적이고, 배우고 싶어 하고, 말하고 싶어 하고, 밝았다. 그러나 파란색 수영복은 올리버가 엘리오에게 성적인 감정을 갖고 접근했을 때 입고 있었다. 엘리오의 어깨를 마사지해 주고 발코니를 통해 엘리오의 방에 들어갔었다. 그러나 엘리오가 먼저 올리버를 유혹했다. 


엘리오는 도대체 왜 올리버에게 그렇게 끌렸을까? 일단 올리버는 잘 생기고 매력적이었다. 엘리오 부모의 별장이 있는 B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은 올리버를 한 번 만나면 그를 좋아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자체 발광하는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1980년대 엘리오네 별장에는 티브이도 없고 교수인 아버지가 다른 교수나 변호사 의사 기자 등 지식인을 집으로 초대하여 매일 식사를 하는 분위기여서 엘리오는 어른들 이야기에 끼고 싶어 일찍 학자들이 읽는 철학이나 문학 책을 섭력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엘리오의 의견을 묻거나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올리버는 엘리오가 타나시우스 키르허 (Athanasius Kircher), 지우세페 벨리(Giuseppe Belli), 폴 셀렌(Paul Celan)과 같은 시인도 알고 있다는 걸 놀라워하며 그의 말을 들어준다. 


둘째, 엘리오는 올리버가 자신 있는 유태인이라는 점도 좋았다. B마을에서 유일한 유대인 가족인 엘리오네 식구들은 굳이 유태인임을 드러내며 살지 않았지만 올리버는 금색 메주자(mezuzah)에 다윗의 별이 있는 목걸이를 차고 돌아다녔다. 시내로 나갈 때도 셔츠를 활짝 벌려서 목걸이가 보이게 했다. 엘리오도 그렇게 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자신은 여전히 자의식이 너무 강하다는 걸 깨닫는다. 엘리오는 올리버와 유대인이란 주제로 대화를 나눴는데 올리버는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사람과 다르거나, 같은 유대인끼리 뭉쳐야 한다거나, 하느님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생각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몸, 외모 좋아하는 취미 친구 등 모든 게 괜찮듯이 자신이 유대인인 것도 괜찮았다. 그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비판도 잘 받아들였다. 올리버는 스스로 잘 썼다고 생각했던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에 관한 논문 몇 페이지를 펄먼 교수(올리버의 아버지)에게 보여주자 몇 가지 지적을 받는다. 그는 수긍하고 밤을 새워 다시 쓴다.  


게다가 엘리오는 올리버가 자기와 텔레파시가 통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동네 구경을 시켜줄 때 엘리오의 별장이 있는 B. 동네가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그리스도를 태운 지역 버스 노선인 코리에라가 멈추지 않고 지나가는 마을이라고 설명했을 때 올리버는 즉시 카를로 레비(Carlo Levi)의 책에 대한 은근한 암시를 알아채고 웃었다. 참고로 Carlo Levi는 <<그리스도가 에볼리에 멈추셨다(Christ Stopped at Eboli)>>라는 책을 통해 세계 2차 대전 당시 고립되고 가혹한 상황이었던 이탈리아의 남부 시골 공동체와 발전된 이탈리아의 북부를 뚜렷하게 대조했었다. 엘리오는 이렇게 자신의 한 마디에 그 의미를 즉시 추론하며 같은 생각이 떠오르는 사람을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언젠가 올리버 아버지가 기자를 식사에 초대했는데 올리버가 연구하는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해 말할 때 펄먼 교수는 그가 유머감각이 있고 명석하다고 생각했지만 올리버는 그가 오만하고 가식적이라는 걸 금방 알아챘다. 엘리오도 동감했다. 

 

"나를 놀라게 한 건 그가 사람들의 내면을 뒤지고, 그들의 성격의 정확한 구성을 파헤치는 그의 놀라운 재능뿐만 아니라, 내가 직감했을 법한 방식으로 사물을 직감하는 그의 능력이었다. 결국 이것이 나를 그에게 이끌었고, 욕망이나 우정, 공통 종교의 유혹을 압도했다". (p. 26)


여기까지는 이해한다. 사람이 자신과 같은 레벨의 지식을 갖고 소위 말이 통하는 사람에게 끌리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그런 지적인 교감이 꼭 육체적인 교감으로 이어져야 했는지 의문이 간다. 나도 결국 남녀의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만 성이 허락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지 못해서 그러는 걸까? 엘리오도 처음 관계를 갖고 얼마나 후회했던가? 여자 친구 마르지아와 관계를 가졌을 때와 다르게 고통이 심해서 올리버와의 관계가 자연스럽지 않은 거라는 걸 신체적으로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는 더 깊어지지만 올리버는 탈고를 하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이쯤 해서 올리버의 마음을 상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왜 17살 밖에 안 된 엘리오와 잠자리를 함께 했을까? 그가 많이 망설인 건 안다. 그러나 나이도 7살이나 많고 6주의 민박이 끝나면 미국으로 돌아가 결혼하게 될 거라는 것도 어느 정도 미리 예정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살짜리의 못 말리는 열정에 응해준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올리버도 영특한 엘리오에게 반한 건 여러 군데에서 확인된다. 엘리오가 나이 답지 않게 많은 책을 읽어서 지적으로 대화가 되는 지점과 피아노와 기타를 칠 때 바라보는 모습 등.  그래도 그가 7살이나 많은 형이니까 관계를 맺는 걸 멈출 수 있지 않았을까? 결국 올리버는 미국으로 돌아가 결혼해서 아들 둘 낳고 잘 살지 않았나? 그동안 엘리오는 어땠는가? 많은 사람을 만난 것 같은데 신통치 않다. 나 같았으면 이미 올리버는 잊고 마르지아 같은 여자와 결혼해서 로마에서 즐거웠던 며칠처럼 문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겁게 살면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엘리오는 나와 다른 성적 취향을 갖고 있어서 그렇지 못했을 거다. 그걸 어떻게 비판하겠나? 그렇게 태어난 것 같다.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는지 엘리오는 올리버를 만나기 3년 전에도 다른 청년들에게 그런 제안 비슷한 걸 받았었다. 산 클레멘테 증후군(San Clemente Syndrome). 이건 엘리오가 로마에서 만난 알프레도 시인이 한 말이다. 그는 태국에서 만난 여성/남성인 사람과 만난 경험을 말하며 산 클레멘테 성당이 부서지고 다시 지어지고 불타고 다시 지어지며 오늘의 모습이 있듯이 사람도 양파껍질처럼 겹겹이 쌓인 역사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한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그들의 이야기, 경험, 그들이 세상에 보여주는 다양한 자아를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엘리오의 성적 취향이 다수의 사람과 다르다고 해서 그를 차별하거나 특이하다 생각하지 않겠다. 오히려 그가 안쓰럽다. 이것도 아니다. 그는 그저 매우 똑똑하며 다양한 사람 중에 하나다. 그래서 펄먼 교수가 괜찮은 아버지인 것 같다. 아들이 그런 성향이 있다는 걸 진작에 알았을 거다. 그래서 올리버와의 관계를 알고서도 이렇게 말한다. “네 인생을 어떻게 사는지는 네 일이다… 어느 날 네가 나에게 말을 걸었을 때 문이 닫혔거나 충분히 열리지 않았다고 느꼈다면 나는 끔찍한 아버지일 거다”. (p.219)


나도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1990년대 미국에서 한참 에이즈가 유행하며 동성애자를 알게 모르게 비판하고 심지어 폭행 살해하는 사건이 빈번했었다. 그때 막 태어난 아들을 보며 우리 아이가 혹시 그런 성향을 가졌으면 어떻게 할까 염려도 되면서 엄마로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했었다. 엘리오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나도 아들을 지켜줄 거라 다짐했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나는 내 자식에게 따뜻한 밥 세끼를 해 먹이고 열심히 공부시켜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리라. 이 책을 읽으며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설사 성적 취향이 다르다고 해도 받아들이고 사랑하리라. 


<참고자료>

https://archive.org/details/call-me-by-your-name-andre-aciman/mode/1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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