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로 위로하는 아침

Debussy "prelude" from Suit Bergamasque

by 피아노치는수달

2012년 8월


내가 늘 생각해온, 죽어도 절대 가지 않을 나라가 세곳이 있는데 바로 중국, 인도, 아프리카다.

중국은 치안이 불안하다는 편견이 있어서, 아프리카는 가기전 맞아야 하는 주사 3종세트에 대한

부작용때문에, 그리고 인도는...혼란한 나라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인도에 있다.

심지어 이게 내 인생 첫 해외여행이자, 첫 비행기 여행이다.


대학교 4년 내내 피아노를 치는것 외에 무조건 취업에만 매달렸다. 소소한 대학생활의 낭만은 없었다.

주말엔 아르바이트, 평일엔 학과수업과 취업준비, 방학에는 하루종일 토익과 자격증 공부를 했다.

그결과 졸업하고 3개월도 안되서 좋은 조건의 직장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너무 좋았다. 지갑 걱정을 하지않고 커피를 사마실수 있다는건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

6개월은 너무 좋았고 6개월 후에는 매일 사표내는 꿈을꾸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직장도 좋았고, 사내문화도 나쁘지 않았다. 내가 나빴다. 내가 아픈 사람이었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았다. 겉을 포장할수록 내면은 어둡고 거지같았다.

나는 내자신이 아주 별로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있었다. 들킬까봐 늘 전전긍긍했다.

그렇게 곪아가고 있을즈음, 나는 내 몸상태도 같이 곪아가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나는 이렇게 속이 곪은채로 살아가게 될 것을 직감했다.

회사에 사표를 내고, 수술을 받고 2개월정도를 천천히 회복하며 쉬었다.

그즈음 나를 옆에서 지켜봐온 지인이 인도의 인턴쉽프로그램 참가를 제안했다.

정확히는 국제인권자문기구의 인턴쉽 프로그램인데, 인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으니

참여하면 좋겠다고 했다. 멈춰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했고,

왠일로 나는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인도에 있다.

뭄바이에서도 멀리 떨어진 이곳은 너무나 조용했고, 사람들은 친절했고, 너무나 안전했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강당에 다 낡은 그랜드피아노도 있었다.

처음으로 내가 늘 생활해온 바운더리를 떠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는게 너무 신기했다.

한국에서는 항상 나를 지칭하는 단어가 있었다. ****대학생, ****기업의 회사원.

인턴끼리 자기소개를 하는데, 이곳에선 나를 소개할수있는 단어가 없자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일정한 명칭뒤로 나 자신을 계속 숨겨왔다는것도 알게되었고,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볼때도 명칭으로만 봐왔지 그 사람자체를 바라본 적이 적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내가 어떤사람이길 바라며 어떻게 소개되기를 원하는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이 여정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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