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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mita Oct 23. 2023

ADHD 인생도 초콜릿 박스 같기를

영화 포레스트 검프 후기

"인생은 하나의 초콜릿 상자 같아" "(Life was like a box of chocolates.)" 

직접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명대사를 가진 영화

경계선 지능을 가졌지만 뜨거운 열정과 가슴을 가진 포레스트 검프의 인간 승리를 다룬 영화다.  

언제 처음 이 영화를 봤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확실한 것은, 대단한 명작이라는 찬사를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실제 감상해 보니

".... 이게 대체 무슨 영화지?"라는 감상평이었다는 것.


 

3년 2개월 14일 16시간 동안 달리다가 갑자기 "엄청 피곤하네요... 집에 갈래요"라고 말하고 느닷없이 가버리는 포레스트 검프의 뒷모습은 고작 3년 달렸다고 무릉의 신선처럼 턱수염 덥수룩한 그의 얼굴만큼이나 어이가 없었다.  

 세월이 흘러 대학교 2학년이었다.

 사랑하는 여자친구도 있었고, 동아리에서 중책을 맡으며 남 보기에 멋진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내 속은 극심한 불안과 공포, 두려움, 공황의 소용돌이 안에서 고통받고 있었다.

그때는 내가 ADHD임을 자각하지 못했다. 삶을 어둠의 구렁텅이 안으로 밀어 넣는 고통들에 불안, 우울증, 공황이라는 이름을 붙일 지식도 자각도 갖지 못한 상태였다.

 인생에서 가장 깊은 관계를 맺은 친구와의 연애는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속에 감추어져 있던 ADHD이 문제를 일으켰다. 여자친구와의 대화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아 겉도는 이야기만 오갔다. 관계의 진전과 발전은커녕 더욱 외로워졌다. 우울한 인지왜곡적 내면을 그대로 마주한 나의 여자친구는 본인의 머리가 우울해진다며 힘들어했다. 동아리 업무가 머릿속으로 구조화되지도 않고, 중요한 업무를 계속 미루고 있었다. 처참한 수준의 실행기능은 동아리를 향한 무거운 책임감을 받쳐주지 못했다. 정신과에서 불안약을 복용하고 있었지만 문제의 근원은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그 와중 본 영화가 '포레스트 검프'였다. 이상하게 그 영화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엄청 울었다. 이유도 모른 채 쏟아지는 눈물을 휴지로 닦아내며 영화에 몰입했다. 흐르는 눈물을 같이 본 친구는 공감 없이 어리둥절 지켜볼 뿐이었다. 혼란한 내 머릿속은 내가 왜 포레스트에 공감하고 흐느낄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해주지 못했다. 그저 올라오는 감정이 그 실마리를 전해줄 뿐이었다.  


 

 1년여 지나 많은 일이 있었다. 부모님 다음으로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여자친구는 나를 철저히 도구 취급하며 버렸다. 본인의 만족을 위해 다른 남자와 바람 펴야 한다. 그냥 나중에 우리 다시 사귀자. 씻지 못할 칼날 같은 말을 잔인하게 내뱉었다. 한동안 인간에 대한 공포에 시달렸다. 영화를 보면서도 사지가 떨리는 불안을 감내하여야 했다. 무슨 일을 해도 좌절하고 실패하고 괴로워하던 내 삶에 기름을 붓는 짓이었다. ADHD에 수반된 공존질환들은 더 극심해져 나를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빠져나오려 하면 할수록 더 깊이 옥좨는 우울의 지옥은 끊임없는 자살 충동과 자기 비하로 떨어뜨렸다. 인생에 더 이상 어떤 희망도 없고 길도 보이지 않는다. 난 평생 이 지옥을 반복해서 살아가야 한다. 지옥 속에서 행복하다고 살만하다고 자기 최면을 겪으며 칼날 같은 삶의 태풍을 그대로 맞으며 버텨가야 한다. 굳이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가. 난 그렇게 살기 싫다. 빨리 이 세상을 떠나버리고 싶다.  

 ADHD를 만났다. 이 뭐 같은 인생을 더 뭐 같이 만드는 뭐 같은 문제들의 모든 근원을 찾았다. 불안으로 인해 처방받지 못한 콘서타를 약물치료 3개월 만에 처방받게 되었다. 새로운 신세계였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살고 있구나.... 이 기적 같은 일상을 저 사람들은 어떤 고마움도 자각도 없이 맘껏 누리고 살았구나. ADHD라는 나만이 아닌 감옥에서 벗어나 세상과 관계하기 시작했다.  


 

 ADHD를 발견하기 전, 내 지옥 같은 삶을 버티게 해 준 친구가 있다. 바로 달리기이다.

 내 삶에 체념하면서 주어진 능력과 한계에 그런대로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 끊임없이 새로움에 도전하고 자기 발전을 꾀했다. ADHD의 가장 큰 불행 중 하나는 본인이 뭔가를 하려고 하면, 좌절, 실패, 우울, 자존감 하락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그렇지 않았던 동반자가 바로 달리기였다. 인간관계, 공부, 업무 모든 게 망쳐지고 있어도 달리기만큼은 날 배신하지 않았다.

 처음에 1,2km도 힘들어하던 내가 어느덧 3km는 가뿐하게 달릴 수 있게 된다. km 당 6분 페이스가 5분 후반, 5분 중반이 되고 달리기 선배들과 같이 달릴 땐 5분 초반도 가능하다. 5km, 6km, 8km를 뛰더니 어느새 21km 하프 마라톤에 무모하게 나가본다. 왼쪽 발이 상처로 피범벅이 되어있다. 그렇지만 내 심장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내 머릿속은 개운하다. 괴로운 머릿속은 고통과 씨름하는 신체에 묻혀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세상 혼자인 듯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하지만 바닥을 힘껏 눌러주는 발바닥은 세상과 자연에 내가 관계하고 있음을 감각으로 증명해 준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땀은 바람에 증발되어 시원한 쾌감을 선사해 준다. 삶이 멈춰있고 나아가지 못함에 좌절한다. 하지만 달리기는 내가 계속 나아가고 있다고 전보다 빨라졌다고 어제보다 더 멀리 간다고 외쳐준다.  


IQ 75의 포레스트 검프는 유수의 대학에서 미국 대통령도 만나보고 학위까지 받아 졸업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동료들을 구해 명예 훈장을 받는다. 그가 누구보다 빠르고 오래 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수 누구보다 빨랐기에 대학 미식축구 선수가 되어 대학을 졸업했고 빠른 몸으로 동료들을 구출해 낸다. 영화 초반 포레스트 검프는 문제가 있어 다리 교정기를 차며 간신히 걷는 처지였다. 그런 검프가 달리기에 눈을 뜨게 된 건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짓궂은 동네 아이들이 돌을 연신 던져대며 검프를 괴롭힌다. 단짝 제니가 옆에서 "뛰어! 포레스트! 뛰어!(Run! Forrest! Run!)"라고 소리친다. 그때부터 포레스트는 교정기를 질질 끌며 달리기 시작했다. 날아오는 돌질이 무서워서 달리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본인의 특기와 자랑이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이름을 날린다.  

평생을 사랑한 첫사랑 제니가 검프의 청혼을 거절하고 그다음 날 홀연히 검프를 떠나버린다. 검프는 허전한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한다. 그린보우 도로 끝까지 갈 생각이었지만 어느새 앨라배마를 넘어 미시시피까지 가고 바다까지 보게 된다. 바다까지 와서는 별생각 없이 뒤를 돌아 다시 뛴다.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누구보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에 검프는 주체할 수 없이 아팠을 것이다. 아픔과 슬픔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서 달렸을 것이다. 그린보우 도로를 달려도, 앨라배마까지 가도, 미시시피를 건너 바다를 보아도 그 슬픔이 잊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계속 달리고 달리고 달렸던 것이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 뛰시나요? 노숙자들을 위해서? 여성 권리를 위해서? 환경 문제를 위해서? 동물권을 위해서?"

 

세상 사람들은 그가 위대한 대의를 위해 달리고 있다고 여기지만 그는 그저 도망치고 싶어서 달렸을 뿐이다.

그에게 영감을 받고 구제받은 사람들이 함께 뛰기 시작한다. 수는 계속 불어나 수십 명이다.

하지만 3년 2개월 14일 16시간 만에 검프는 피곤하단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간다. 상처에서 회복하는데 무려 3년이나 걸렸다.  


 사랑 때문에 도망쳤지만 결국 사랑으로 돌아온다. 몇 년 만에 마주한 제니는 자신의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비록 제니가 C형 감염으로 세상을 떠나 검프는 또다시 가슴 아픈 이별을 마주하지만 그의 옆엔 사랑하는 아들 포레스트가 있다. 검프는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영화는 하나의 깃털이 날아가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삶의 고통을 잊지 위해 몸을 움직여 장장 3년을 달린 포레스트는 다시 사랑에 의지한다. 이별하고 배신을 겪고 실망하고 좌절해도 결국 인생은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사랑으로 상처받지만 결국 다른 사랑으로 극복하고 위로받는다. 사랑으로 인생의 의미를 얻고 받은 사랑을 나누어 주며 이미 충분히 힘든 인생을 빛나게 해주는 동반자가 되어준다. 아무런 희망도 없고, 더 이상 버틸 힘도 없다고 생각했을 때 난 도망쳤다. 사람으로부터 도망치고 고통스러운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어 무작정 달렸다. 수개월간 우울증으로 고생할 때 혼자 하프 마라톤을 몇 번을 달렸는지 모르겠다. 혼자 하프를 달리는 능력은 새로운 프라이드가 된다. 헬스든 테니스든 다른 운동을 시작하게 한다. 그러던 와중 ADHD를 발견하고 약물 치료로 새로운 세상을 맛본다. 지금 난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상처받았지만, 언젠가 새로운 사람이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수개월간 우울증에 시달린 후 고향으로 돌아온 아들을 안아주고 보듬어주고 같이 있어주었던 내 가족들의 사랑은, 내가 사랑받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나처럼 귀중한 사람이 새로운 사랑을 찾아 행복하게 살 것임을 확신시켜 준다. 검프가 뒤에 수 십 명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있었어도 결국은 홀로 떠나 다시 가족의 사랑 품으로 돌아간다. 사회에서 인생에서 어떤 큰 성취를 거두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어도 결국 내 옆의 가족만큼 날 안아주고 사랑해 줄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여정에서 스쳐 지나갈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인생은 고통이지만 그렇기에 더 나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랑의 소중함을 경험적으로 감각적으로 알 수 있게 해 준다. 인생이란 달리기가 끝이 날 때, "My life was like a box of chocolates"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이 나올진 미처 몰랐고, 알 수도 없었다. 하지만 결국 달콤한 삶이었다."라고 말하고 싶다.


※ 과거 ADHD 커뮤니티, 에이앱에 쓴 글입니다. 여러 가지 일로 힘든 요즈음 저의 글에 도리어 제가 위로를 받습니다.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달리기는 하지 못하지만 달리기를 하며 느낀 행복이 다시 생각나서 씁쓸하기도 하고, 과거의 행복에 취하기도 합니다. 언젠가 새로운 '달리기'가 저를 찾아올 것이라 믿으며,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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