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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mita Sep 01. 2024

인생 최악의 순간, 2차례 자살 시도 하지만...

인생 최악의 시간에서 도약의 기회를 얻다

ADHD를 확진받지 못한 상황에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교환학생 준비마저 ADHD 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교환학생을 가고자 한 이유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냥 대학 1학년 때 혼자 2주간 유럽 여행을 한 경험이 너무 소중했기에 그 기분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교환학생 생활을 위해 언어는 얼마나 준비해야 하는지, 비용은 얼마나 필요한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행복하기 위해 간 교환학생 생활에서 나는 내 인생 최악의 시절을 맛보게 된다. 부모님 다음으로 믿을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에게서 잔인한 배신을 당했다. 내가 해외에 있고 그분께서는 한국에 있을 당시였다. 어리고 순수했던 나로서는 그런 배신이 너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듯했다. 마그마가 나의 몸 절반을 녹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 고통이 너무나 커서 5일 연속으로 매일 10km를 달렸다. 그전까지 그렇게 달려본 적이 없었다. 그 정도로 충격이 어마했다. 그러고도 고통은 극복되지 않았다. 한동안 극심한 인간 공포증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에는 코로나 시기였다. 코로나였기에 사람들을 직접 많이 만날 기회도 없었을뿐더러 내 생각보다 나는 더 영어를 못했다. 80%가량되는 영어 리스닝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교환 학생 생활이 끝나고 나서도 내 영어 실력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인데 ADHD는 청각 이해력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나는 그 당시에 극심한 우울증, 무기력증, 그로 인해 더 심화된 ADHD 증세로 인해 삶에 필요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영어 공부를 하고 싶어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영어가 되질 않으니 교환학생 생활에서의 인간 관계도 원만할 리 없었다. 교환학생 생활은 한국에서의 생활도 감당하기 힘든 ADHD에게 너무 난도가 높았다. 자존감은 계속 무너졌고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정말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교환 학교에서 듣는 모든 수업은 나가지 않았다. 아마 출석 부족으로 모두 F처리가 되었을 것이다. 유럽 주변 국가들로 해외여행을 갔다 오거나 달리기 할 때 빼고는 거의 무기력하게 지냈다. 체코 여행을 다녀온 직후에는 기숙사 호텔의 꼭대기 층에 올라가 난간 밖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날 그곳에서 뛰어내려 세상 모든 것을 마감하고 싶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일 뿐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내 몸을 던지기 위해 올라간 그곳에서 바라본 도시의 야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그 도시에서 꽤나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거주했지만 그 정도 높이에서 야경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황금색의 건물 빛들이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질 수 없었다. 자살을 하려다 자신이 살고 싶다는 마음을 자각한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그렇게 한 동안 도시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귀국 후 2주간 자가격리 시설에서 머물렀다. 그곳에서 그렇게 비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5개월 동안의 교환학생 생활동안 아무런 성장도 이루지 못했다. 행복을 위해 노력했던 과정들은 비참한 결과로만 다가왔다. 자가격리 시설에서도 혼자 울면서 창문밖으로 충동적으로 몸을 던지려 했다. 하지만 어떤 일인지 실제로 창문 밖으로 몸이 던져지지는 않았다. 아직은 살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비참했던 교환학생 생활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 5개월 동안의 교환학생 생활에서 나는 이 모든 불행과 우울을 이겨낼 계기를 얻게 되었다. 바로 그 무기력했던 교환학생 기간 중, 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 구글링이나 하던 중 우연히 발견하게 된, 한 티스토리 글 덕분이었다. 그 글은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게 되는 계기였다. 그 글을 통해 내가 ADHD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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