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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 Sep 26. 2023

비 오는 날은 비를 맞는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1996년 여름 어느 날,

제주도 김녕 해수욕장 부근 묘산봉에서


120만 평의 묘산봉 위락시설 공사를 위해 파견 나갔던 그 현장....

묘산봉 최고봉에 올라서 바라보는 김녕해수욕장의 모습은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이었다.


비록 골프장 72홀과 호텔 등 많은 위락시설을 위한 기초 가공사를 위해 육지에서 제주도로 파견 나갔던 나.


참으로 제주도는 예뻤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제주를

일을 하기 위해서, 돈을 쓰는 관광이 아닌 돈을 벌면서 관광을 하게 되었으니. 정말 좋았다


아쉽게도 1년 정도 제주도에서 멋진 삶을 살다가 1997년 어머어마한 대한민국 초유의 경제 재난을 맞아, 나의 회사도 풍지박살의 부도를 맞았고, 묘산봉의 멋진 삶도 막을 내렸지만....


제주도에서 나의 일과 시작은 

현장에 설치해 놓은 백엽상에서 온도와 강수량 체크부터 시작한다.

비 오는 날은 그냥 비를 맞게 해주는 나의 반려 난

비 오는 날,

누구보다도 첫 번째로 출근한 묘산봉 최고봉..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따뜻하고 깨끗한 비가 내 몸을 적시고,

눈에 보이는 김녕 해수욕장의 푸른 바다...


탈모를 걱정하지 않던 그때의 나는, 

비가 오면 그대로 비를 맞았다.


불쾌하지 않고, 그냥 깨끗했던 그때의 비...

지금은 맞을 수 없겠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디, 아무런 목적도 없이, 아무런 기분도 없이

그냥 비를 맞았다 그때의 나는.


지금도 비가 오면 그냥 비를 맞고 싶다는 충동은 있지만.

그때의 나와 달리 지금의 나는 탈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의 반려난을 대신 비 오는 그 공간, 

나의 추억의 그 공간으로 대신 타임슬립하는 마음으로, 

비를 맞게 한다.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그리고 

비를 맞는 난을 쳐다보면서.

그때의 그 기분을 느껴본다.


오늘도 비가 온다.

그래서 나의 난들은 비를 맞고 있다.

그리고 비를 맞고 있는 난의 잎에 방울처럼 고여 있는 물방울을 보고, 물방울이 내려가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나면 왠지 모를 힐링이 찾아온다.


오늘도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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