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통영의 자연
"오늘 인천공항은 잘 다녀왔니? 리아는 잘 갔니?"
언니의 전화이다.
"인천 공항에 못 갔어! 애들은 아마 잘 갔을 거야."
언니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왜 배웅하지 않았니? 짐도 많았을 텐데"
"찬희, 찬유를 수영장에 데려다준다고 못 갔어.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얼굴은 봤어."
"그래? 다행이다!"
둘째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매년 여름 방학이면 한국으로 돌아왔다. 올 때는 반가운데, 갈 때가 항상 문제였다. 돌아가기 위해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딸이 하는 말
"엄마, 00을 안 가지고 왔어!"
"뭐라고? 그것 없어도 되니? 야, 여권 가지고 왔음 되었어. 불편하더라고 그냥 살아!"
혹은
"아무래도 수하물이 무게 초과일 것 같아! 저울에 다시 달아봐야겠어!"
"아니, 집에서 다 달아보지 않았어?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니?"
"집의 저울은 몸무게를 재는 작은 체중계잖아! 정확하지 않단 말이야!"
"그래? 그럼 빨리 달아봐!"
"엄마, 초과야!"
"빨리 가방 열어! 좀 덜 필요한 것, 빨리 빼!"
가방을 열고 물건을 빼고 다시 가방을 정리하느라 시간이 가고,
" 야! 들어갈 시간이야. 빨리 들어가!"
이 야단법석을 하다 보면 '건강하게 잘 지내다 와! 네가 가서 섭섭해!'따위의 감정을 나눌 시간이 거의 없다. 그저 제시간에, 제대로 수하물이 통과된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휴, 무사히 갔어!' 하면서 무사통과를 자축하는 헤어짐이 되는 것이다.
올여름, 오래간만에 첫째 딸(호주)과 둘째 딸(미국)이 동시에 한국에 왔다. 온 식구가 함께 모이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제주도에 아시는 분이 계셔서 한 주간을 제주도에서 보내기로 했다. 딸, 사위, 아이들은 월요일에 제주도에 내려가고, 나와 남편은 목요일 저녁에 내려가기로 계획을 잡았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나만 비행기를 타야 했다. 어디를 가든 항상 남편과 함께 가고, 비행기의 모든 티켓처리도 남편이 다 해 왔기 때문에, 나는 거의 절차에 대해 무지식 상태인데, 갑자기 혼자 가라고 하니 걱정이 되었다. 또한 '당신, 나 없이 한번 있어봐. 얼마나 불편한지!'라는 나의 존재의 절실함을 느끼게 해 줄 기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정말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보다 더 큰 걱정이 생겼다.
"김포공항버스가 너무 막혀! 제시간에 공항에 도착할는지 모르겠어!"
남편은
"지금 퇴근시간이라 그럴 거야. 기다려 봐! 그리고 도착하면 전화해!"
나만 애가 타나 싶어 버스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었다. 막혀도 너무 막혔다. 비행기 출발시간을 고려해서 버스 타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았는데도, 저녁시간이라는 시간대 때문에 막혀서 거의 버스가 기어가는 수준이다. 젊은 사람들은 지도를 검색하면서 몇 시에 도착예정인지를 확인하고, 지금 이 지역이 어디인지를 검색해 아는데, 나는 지도검색에도 서툴다 보니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남편이 "지금 어디까지 갔어?"를 물어오면 "몰라, 여기가 어딘지. 그런데 엄청 막혀!" 그 말만을 되풀이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니 정체가 조금 풀려, 비행기 출발시간 거의 20분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 다행히 수하물을 부칠 필요가 없는 나는 그나마 시간절약을 해서 막바로 게이트로 허겁지겁 뛰어가니, 내가 타기로 된 비행기가 20분 연착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땀을 비질비질 흘리면서, 나는 오로지 제시간에 무사히 가게 된 것에 감격해했다.
어찌 된 일인지 우리 집 사람들의 비행기 여행은 거의 대부분이 이런 모양새이다. 그러니 헤어짐의 슬픈 분위기를 잡을 여유는 거의 없고, 오히려 "무사히 가네!!"라는 안도감을 뿜뿜 품어내는 헤어짐이 되는 것이다.
첫째 딸 가족이 먼저 호주로 떠났다(8월 5일 월요일) 이제 두 살 되는 손녀가 아주 똑똑하다.(고슴도치의 눈에는 다 제새끼가 예뻐 보이듯이 나도 그럴지 모른다.) 제법 말도 잘하여 "할머니, 할아버지, 오빠"를 부르며 안긴다.
그들이 떠나는 날, 아니라 다를까
"엄마, 엄마차에 유모차가 있어. 깜빡했어. 빨리 항공버스 타는 정류장으로 와! 공항버스가 20분 뒤에 와!"
둘째 딸의 아이들 두 명을 수영레슨에 데려갔다가 오는 길에 전화를 받았다.(둘째 딸의 두 아들은 한국에 와서 한글공부와 수영을 배우고 있다.) 내 차가 그곳에 도착할 시간을 보니 거의 20분 뒤이다.
"왜 유모차를 안 챙기고! 알겠다. 빨리 갈게!"
최대한 달려서 겨우 시간에 맞춰 정류장에 와 유모차를 건넸다. 그러니 "휴, 그래도 안 잊어먹고 유모차를 가지고 가서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헤어짐의 슬픔보다 더 큰 것이다.
우리 가족의 헤어짐은 이제 다시 얼굴을 보고 손을 잡기 위해서는 일 년 내지 이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애틋함보다 무사히 돌아감을 축하하는 헤어짐이다. 인천공항에서 본 다른 가족들처럼 약간 슬픈 분위기가 전혀 없다. 물건을 빠뜨리거나 수하물 초과로 혹은 공항에 도착해야 하는 절박한 시간 때문에 한바탕 난리를 쳐대니, 고상한 헤어짐이란 단어는 우리 가족의 헤어짐에는 아예 없는 것 같다.
헤어질 때 한바탕 난리 치는 것이 오히려 우리 가족의 헤어짐의 의식인 것 같다.
"무사히 잘 가서 너무 감사해! 다시 볼 때까지 잘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