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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경 Nov 08. 2024

건강검진

대장 수면 내시경

우리나라는 2년마다 건강검진을 모든 국민에게 부여하는 참 좋은 나라이다. 올해는 생년월일 끝자리가 짝수인 사람이 건강검진을 받는 해이다. 


점점 더 건강의 소중함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나이인지라, 올해가 가기 전에 건강검진을 받기로 했다. 문제는 대장 수면 내시경이다. 2년 전 대장 수면 내시경을 받았었는데, 그때 의사 선생님에게 혼이 난적이 있다. 


대장내시경을 하기 위해서는 3일 전부터 음식조절을 하고, 하루 전날에는 1L 생수병에 약을 타서 2번 복용해야 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즉 2L를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비위가 약하다. 동남아 음식인 고수를 먹지 못하며, 한국음식과 좀 다른 향을 풍기는 음식은 다 입맛이 맞지를 않아 먹기를 주저한다. 오로지 한국음식만을 좋아하는 찐 한국음식 애호가인 동시에 글로벌 시대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한국촌놈이다. 


그런 입맛을 가지고 있으니, 이 이상한 맛과 냄새를 풍기는 1L 약이 나에게는 죽기보다 힘든 고통이었다. 그래서 하루전날 아예 아무것도 먹지 않는 금식을 택했다. 그리고 그때 2L, 즉 두 번 복용해야 할 약을 한 번만 먹고 갔다. 의도적이 아니라 검사받기 전날 한번, 그리고 검사 당일날 한번 복용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전날 금식했으니 한 번 복용만으로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병원에 갔다. 


마취를 깬 후 보니,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좋지가 않았다.

"약 다 드신 것 맞나요? 장이 깨끗하지 않아서 잘 못 봤습니다!"

"아이고. 그래요? 비위가 너무 상해서, 한 번밖에 복용하지 못했어요."

"헛고생만 하셨어요. 재작년에 대장 수면 내시경 하시면서 용종을 몇 개 떼어낸 것이 있었어요. 그래서 상태가 좀 어떤지 보려고 했었는데, 할 수 없네요." 


그때 얼마나 낙심이 되던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얻은 결과는 없으니, 세상에 이런 헛짓이 있나 싶었다.


나를 담당하시는 의사 선생님은 올해에는 꼭 대장 수면 내시경을 해야만 한다고 하신다. 그런데 약을 받아보니 2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래도 의학이 많이 발전해 있었다. 이번에는 500ml에 약을 타서 두 번, 그리고 연달아 생수 500ml를 마시면 된다. 마셔야 하는 물의 양이 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올해는 꼭 규칙대로 잘해서 검사결과를 얻어야지' 하는 마음의 각오를 다졌다.

11월 6일(수)이 검사일이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고구마로 끼니를 때웠다. (처방용지에 보니 권장식품으로 감자가 있어서 고구마로 대체했다.) 하루 전 날인 화요일은 또 금식! 그리고 화요일 저녁 6시에 500ml 통에 큰 약 2 봉지, 작은 약 2 봉지를 넣어서 잘 흔들어 마셨다. 간호사님의 말이 30분 동안 천천히 마시라고 해서, 그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고 30분 동안 천천히, 조금씩 마셨다. 마시는 양은 줄었지만, 역시나 그 맛과 냄새는 나에게는 큰 고통이었다. 그리고 연달아 생수 500ml를 마셨다. 나는 생수 마시기를 좋아하는데, 약으로 생수를 마시니 생수마저도 마시는 것이 힘든다. 


다음날 아침(11월 6일) 새벽 5시, 다시 정해진 양을 마시기 위해 일어났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 지독히도 마시기 싫은 이 약을 좀 더 고통 없이 마실 수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했다. 

'단숨에, 한 번에 500ml의 약을 다 마시자. 그러면 한 번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을까?'

이 생각이 머리에 떠 올랐다. 그래서 먼저 400ml를 눈감고 한숨에 꿀꺽 삼킨 후,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나머지 남은 100ml를 삼켰다. 그런데 이 무슨 일인가? 속이 울렁울렁하더니만, 마신 모든 것을 그만 토해내고 말았다. (에고, 천천히 마시는 것이 정답이었다.)

'아이고, 이 일을 또 어찌한다? 검사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면서 병원으로 갔다. 마셔야 할 약물걱정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새벽에 일어나 토하느라고 또 한바탕 난리를 치고, 9시 30분에 병원을 들어서는 나는 온몸이 천근만근이 되어서, 건강검진이 아니라 오히려 환자가 된 상태였다.


그러나 오래 다닌 병원이라 위 수면 내시경, 대장 수면 내시경을 하기 전에 간호사에게 농담까지 했다.

"마취를 깰 때, 사람마다 무슨 소리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마취 깰 때 무슨 소리를 하는지 꼭 듣고 알려주세요."

그러자 간호사님은 빙그레 웃으며 "알겠어요!"라고 한다.

나는 속으로 '혹시 내가 나쁜 말을 하면 안 되는데, 무슨 말을 내뺃을까? 오 주님, 저의 입에 선한 말을 넣어주세요' 기도까지 하고 침대에 누웠다. 내가 한 병은 정말 착실하게 다 마셨지만, 다른 한 병은 마신 뒤 토해내어서 효과가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솔직히 의사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했었는데, 의사 선생님을 '걱정 말라'라고 하신다. '이런 나의 체질을 아시고 한 병에 과다 용량을 넣으신걸가?'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나는 침대에 누웠다.

"이제 마취 들어갑니다."의 목소리를 들은 후 그다음은 알 수가 없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눈이 번쩍 떠졌다. 일반적으로 모든 검사가 끝난 후, 마취약 때문에 회복실에 누워있어야 하는 나인데, 보니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가 아직도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어? 이게 뭐지?'

누워있는 내 눈앞 화면에 나의 창자 안이 다 보인다. 약간의 누런 오물이 떠 있지만, 그런대로 깨끗한 편이다. 의사 선생님은 지금 열심히 내 장의 이곳저곳을 보고 계신다. 나도 그 화면을 보고 있다. 아직 검사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마취 약을 소량 넣었나? 아님 검사가 길어진 것인가? 어찌 된 일인지 나는 마취에서 깬 것이다.

"선생님 저 깼어요. 배 아파요. 그리고 화장실을 가야 할 것 같아요!"

선생님이 내시경으로 내 장의 이곳저곳을 쑤시니, 소변이 마려워, 잘못하면 실수할 것 같은 절박한 심정이었다.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선생님이 주섬주섬 정리하기 시작하신다. 


그래서 나는 연예인들이 애용한다는 프로포폴의 효용인 숙면의 달콤함을 누리지도 못 하고, 마취를 깬 후 내뺃는다는 무의식의 말도 알지 못 한채, 또 나의 재촉 때문에 선생님이 검사를 완전히 다 하신 것인지도 의심스러워하며, 회복실에 조금 누워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대장 수면 내시경 검사는 왜 이렇게도 험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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