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시를 배운다
초등학교 때 내 꿈은 시인이었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읽고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했고
마종기 시인의 <바람의 말>을 외울 때마다 가슴속에 뜨거운 것들이 이글이글 올라왔다.
특히 이 구절은 매일 밤 잠들기 전에 되새겼는데.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할머니가 잠꼬대를 하면서도 나에게 욕을 퍼부을 때
나는 이불속에서 라디오 볼륨을 높이며 다짐했다.
오늘 하루 고단한 만큼 나중에 보상을 받으리라, 언젠가는 나에게도 해 뜰 날이 오리라,
착하게 살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속 미하일 같은 천사를 만나게 될 거고
<톰아저씨의 오두막> 톰아저씨처럼 나도 곧 자유를 얻을 거야!
<제인에어>처럼 미친 듯이 사랑하는 사람도 만날 거고
<행복한 왕자>처럼 내 모든 것을 다 주고도 행복한 사람이 될 거야!
당시 간절히 바라고 바랬던 바람의 말들.
사람은 말하는 대로 된다고, 나는 어릴 적 바람을 다 이루었는데.
딱 하나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자기소개에 쓴 것처럼 시집은 못 내고 시집만 간 것.
시인의 언덕을 오르고 싶었으나 어쩌다 예능작가가 돼서 시시콜콜 떠들어재끼고 살았다.
한동안 시를 잊고 지냈는데 덕분이를 낳고 다시 시든 삶을 산다.
사랑하는 덕분이가 하는 말이 다 시로 들린다.
덕분이가 가던 길을 멈추고 뚫어져라 바라본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강아지풀이 벽을 뚫고 자랐다.
"여기 강아지풀이 나다니! 너는 자유롭구나!"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자유가 무슨 뜻인데?"
"혼자 마음껏 논다는 거지! 마음대로 산다는 거야!"
"덕분이는 자유로워?"
"나는 마음껏 뛸 수도 있으니 강아지풀보다 더 자유롭지!"
- 2023년 여섯 살 덕분이의 말. 말이 끝나자마자 강아지처럼 달아나던 자유로움이란...!
아들 : 엄마는 무슨 날씨가 좋아요?
엄마 : 살랑살랑 가을바람 부는 날!
아들 : 저는 해가 뜨는 밝은 날이 좋아요. 밝은 날에 엄마가 빛났으면 좋겠어요!
엄마 : 우와~ 고마워! 비가 와도 덕분이만 있으면 엄마는 쨍쨍할 거야.
아들 : 엄마는 저 햇살처럼 따뜻해요!
엄마 : 고마워. 엄마가 따뜻한 이유는 덕분이가 엄마를 비춰주는 태양 같아서.
아들 : 엄마는 난로 같아요. 나를 따뜻하게 해 주니까.
- 2024년 일곱 살 덕분이의 말. 나는 목구멍이 뜨거워져서 차마 고맙다는 말도 잇지 못했다.
벚꽃 잎이 후드득 떨어지던 날, 나는 벚꽃이 “사라진다”고 말했고 동시에 아들은 “살아있다”고 말했다.
자세히 보니 벚꽃 잎들이 활기차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꽃잎은 떨어졌지만 온몸으로 바람을 즐기듯 자유로워 보였다. 나도 부산으로 날아왔을 뿐, 고작 인생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중이었다.
- 제16회 달서 책사랑 전국주부수필공모전 수상작 <읽는 마음, 덕분에 살아진다> 중에서.
- 2025년 여덟 살 덕분이의 말. 작년에 남편 회사 때문에 갑자기 낯선 곳으로 이사를 왔다. 부산 땅을 처음 밟은 것도 아닌데 여행과 삶은 완전히 달랐다. 새로운 곳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들보다 적응을 못해서 한동안 눈물바람으로 지냈다. 고립된 섬처럼 외로웠던 시기에 유일한 친구가 책이라 그 마음을 담아 공모전에 냈는데 운 좋게 상을 받았다. 솔직히 덕분이의 말이 한몫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