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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Jun 11. 2024

이사


2주 전(이라 쓴 지도 얼마 전 같은데 2달 전이 돼 버렸다.) 이사를 했다. 얼마 만의 글인지.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고 나서 처음 살았던 인천 만수동 첫 집 이후로, 청주에 머문 곳은 세 곳이었는데, 그 세 곳이 모두 한 동네였다. 어쩌다 보니 총 3번을 같은 동. 그중에서도 같은 아파트에서만 이사를 두 번이나 한 셈이다. 전세살이가 서럽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다만 2년이 그렇게 짧은 기간씩일 줄은 몰랐고 이사는 매번 귀찮고 큰 일이었다. 웬만하면 같은 곳에서 전세 계약을 연장해서 살려고 했는데, 집값이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매번 집주인들과 재계약이 안 됐던 탓이다.


어느덧 유월이라니.


본의 아니게 청주에서 첫 집 때 이사했던 이삿짐센터 사장님과 인연이 짙어졌다. 사장님이 마침 좋으셔서 첫 이사 이후 홍보를 엄청 해드린 데다가, 우리도 운 좋게 세 번째 이사계약을 하게 됐는데, 연락을 드릴 때마다 내 멘트는 이거였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 10*동 **아파트 애기엄만데요."  

사장님은 어차피 알고 있다면서도 매번 나는 저렇게 호칭을 붙였다.


이사 매번 느끼지만 정말 보통이 아닌 일이다. 나는 이제 30이 넘은 너무나 으른의 나이지만 매 순간 이사와 관련된 일들이 낯설었다. 그나마 청주 안에서 했던 이사들은 같은 아파트 내부 이사였고 집이 평수부터 구조까지 같은 곳이어서 짐을 놓고 판단하는 문제나 이사한 집에 적응하는 것이 우리나 아이에게나 한결 수월했다.


반면 이번 이사는 달랐다. 다른 동네로 가는 이사였고 동네가 문제가 아니라 집구조가 완전히 바뀌고 처음으로 전세가 아닌 매매로 가는 곳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사실 감회가 새롭기는 감정문제였고 그 집에 들어가기까지의 해결해야 할 행정, 금전, 절차적 문제가 어마무시하게 복잡했다. 그마저도 진짜로 복잡한 건 남편이 다 했고, 나는 주로 이사나 청소, 가구나 시공 같은 눈에 보이는 일들을 위주로 알아보고 결정하고 처리했는데도 그랬다.


어느 날은 이사 관련으로 알아보는 것들로 너무 바쁜 데다가, 뜻만큼 결정을 하는 일들이 쉽지가 않아서 이게 이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나 몇 번이고 곱씹었다. 끝내는 결혼을 준비하며 같이 살 것들을 결정하던 때를 떠올리기까지 이르렀다. 그때는 힘들다기보다는 바쁘다고 생각했는데, '낯섦과 설렘이 공존'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지금보다 젊었고 둘 다 풀타임근무에 장거리 연애 중이었지만 '육아는 하지 않았으니' 지금에 비하면 아주 여유가 있었구나 싶다.


당시 설레는 마음으로 나름 잘 골랐다고 생각했던 소파와 상이었는데. 과연 낡을까 싶었던 것들이 져있다 못해 너덜너덜 헤져있었다. 그동안 결혼으로만 8년 차에 접어드는 우리와 살아준 아이들이었다. 못난 흠집에 오염에 차마 중고거래조차 안 되는 수준의 것이 돼있었다. 그래서 그전 집에서는 누가 온다고만 하면 소파는 어떻게든 가려 놓기 일쑤였는데, 이번 이사를 준비하며 이런 오래된 가구들이나 이사할 집에 맞지 않는 사이즈의 가구는 처분하고 가전도 일부 교체했다(이거 정말 힘들었다).  


어느순간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던 나무밥상


한 편 새 보금자리로의 이사는 따지고 보면 좋은 일인데 남편과 나는 한동안 머리를 굴리고, 생각을 모으고 선택을 하느라 모두 날이 머리끝까지 쭈뼛쭈뼛 서 있었다. 그러면서도 워낙 정리며 청소에 능하지 못한 내 자신을 아는 나는 약 한 달 전은 미리 집안 물건들을 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을 구분하고 버리고 정리를 시작했는데, 앞서한다고 했는데도 결국 이사 전전날과 전날, 당일까지도 하루종일 집을 정리하느라 바쁘다 못해 머리가 지끈거리고,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이사 전전날부터는 들어갈 집에 미리 가서 시공으로 방문하시는 작업자분들을 맞이하고 작업상황을 체크하고 잔금처리를 하는 일을 해야 했다. 이삿날 당일까지 나는 아주 오랜만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참고로, 평소에 나는 아이의 유치원에 아침 9시 30분 즘 집을 나서는 비교적 느리적한 아침을 시작하는 편이었다. (올빼미형인 데다가 타고나길 아침잠이 많은 나는 사실 그것도 좀 고단했다.)


아침 8시 전 혹은 8시 반쯤 나와 맞이하는 공기의 내음은 10시의 그것과 너무 달랐다. 거의 학창 시절, 그것도 중 고등시절 아침시절이나 맡았던 바쁘지만 갓 씻고 나온듯한 풋풋함이랄까.  


대학의 바쁜 아침은 사실 별로 기억이 나지도 않고, 그렇게 짙지도 않다. 학교 졸업할 때 즘 한 3개월가량 인턴으로 일했던 회사경험을 빼고서 결국 나는 학원강사로 계속 돈을 벌어먹었다. 학원강사는 빠르면 오후 1시, 늦으면 오후 4시에 출근해서 다시 빠르면 밤 9시, 늦으면 밤 12시가 넘어서도 집에 오는 일이 익숙한 일이었는데 내 생활리듬에는 아주 맞는 일이었다. 공부와 수업준비를 위해 일찍 일어나도 지옥철, 만원버스따위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아침의 모두가 바쁘지만, 새벽이 지난 아침에만 맡을 수 있는 그 특유의 산뜻한 공기를 맡는 일이 내게 어느 순간 좀 먼 일이 되었던 것이다.(이런 식으로 게으름을 뻔뻔하게 합리화하는 중이다.) 


년 만인지 몇 달만이지 모르게 글을 접하는 지금에서야 모두 지나간 이사를 떠올린다. 유독 이번에는 처음 하는 것들이 많았는데, 처음 하는 것은 처음 하는 것대로, 두 번 세 번 하는 것들은 그것대로 걱정과 긴장으로 장을 지져먹고도 남을 지경의 나를 고백한다. 이사, 부동산, 전입신고, 가구, 시공, 청소, 커튼, 벽걸이티비 그 외 셀 수 없이 많은 잔챙이 일들 이 모두 지나갔다. 모든 것을 남편과 함께 결정했지만, 알아보는 것은 일차적으로 내가 다 했는데 마침 업체 사장님들이 모두 잘해주셨고(이사, 청소, 시공관련한 일들은 우리 집 기준 큰돈이 들아가는 일인데 사기와 관련한 후기가 많아서 걱정했다.), 그래서 모든 절차가 깔끔하고 사고 없이 마무리되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한편 같은 아파트에서 몇 번이고 이사할 때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어느 누구도 특별히 좋은 소리를 건내들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신기했던 것은 단순히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간다는 사실 하나로 이사 시즌에 만나게 된 계획적이거나 우연적이거나 하는 많은 이웃들이 '이사 가서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는 축하 메시지를 많이 해주셨다. 이것 또한 바쁜 마음을 어린이마음처럼 순간적으로 사르르 녹게 해 주는 말들이었다.  또한 내가 낯선 청주에 내려와 살면서 만난 이웃들이 소수이지만 이렇게나 계셔주었구나 싶어 새삼 고맙기도 하고 그냥 그 자체로 따뜻해졌다.


나의 정든 6년아파트. 떠날 때면 익숙한것들도 새삼 새롭다.


이사당일 나는 짐을 옮기거나 나의 거처를 움직이는 과정에서 어리버리 우왕좌왕하지 않기 위해 미리 할 일들을 생각을 해놓고, 일부는 계획을 해놓았다. 늘 그렇듯 그것들이 그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그 전의 내가 이사 때 부리던 바보 같은 모습들은 면했다. 가끔은 속으로 여전히 우왕좌왕이지만 최대한 멀쩡한 척했고, 우왕좌왕을 차마 가릴 수 없이 들켰을 때는 이삿짐센터 직원분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어쩔 수 없다. MBTI유형이 타고나기는 뼛속까지 P인 나로서는 가끔 필요시 J의 패턴을 따라가는 데 굉장한 에너지를 쏟지만, 한계가 있는 것이다.


가까운 바다로 기분전환도 하러갈 정도로 조금씩 일상을 찾는다.


이번주면 정말 이삿날로부터 2달이 되는 날이 오는데 2달이 2주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조금씩 일상을 찾으려고 한다. 쉴 새 없이 바빴던 날들이 지나간 것, 발바닥엔 가시가, 머리끝엔 뼛조각이 붙어 있는 듯 날 서있던 우리가 지나간 것, 짐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이사를 준비하며 마셨던 아침의 공기들,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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