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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Dec 31. 2023

365번

안녕 2023

 

일 년을 결산하는 기록의 글들이 지금이 연말임을 알려다. 그게 아니어도 크리스마스니 연말이니 설이니를 준비하고 그저 축하하고 준비하는 분위기는 너무나 자연스럽기만 했다. 어! 하니 그날이어서 헉하고 의무를 앞세운 기념의 것들을 마치 기다린 듯이 해내고, 속으로는 올해가 12월인 것도 연말인 것도 끝내는 마지막 날인 것도 어색해 죽겠는 사람은 나 혼자임이 분명했다. 누구는 책을 몇십 권도 아니고 몇백 권을 읽었네, 누구는 돈을 얼마나 벌었네, 내년엔 무슨 일을 하겠네 했다. 나는 시간이 갔는지도 모르게 시간과 자유에 허덕이는 삶을 살면서도 나름 이 정도면 무탈하거니와, 잘 견뎌냈으며, 심지어 조금 더 나아진 것들이 있어서 조금은 나를 칭찬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그 글들을 보고 있자니 나의 일 년 업적이 세상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그럴싸한 일로 수치로 내세울 일은 턱없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정신을 바뜩 차렸다. 나는 결코 놀고 누워만 지내지 않았는데, 매일을 갈망하듯이 살았는데 기록하지 못할 거라곤 없었다. 그래서 했다.


2023년은 365번 꼬박 내손으로 아이를 재웠다. 가장 최근의 외박은 재작년이 돼 가는 작년의 일이었으므로. 이어 365일 거의 매일 아이를 씻겼다. 어차피 여름에는 하루에 몇 번이고 씻기는 게 익숙했으므로 변수의 빈칸은 채워지고도 남을 횟수다. 그리고 365일간 최소 하루 두 번 이상은 가족의 끼니를 챙겼다. 그렇게 따지면 700회 이상이 되는 횟수다. 외식이나 배달음식 횟수가 적었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매일매일을 한 번도 오늘 저녁은 뭐 먹지를 고민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700회 이상 설거지를 했고, 365회 이상 청소를 했다. 역시 365회 이상 빨래를 돌리고 말리고 개켰다. 요즘 시대에 이게 다 내 몫이었다니 좀 부끄러우니까 주말부부라 거의 모든 가사가 다 내 몫이라 변명을 해본다. 그러고 보니 결단코 한 번도 주말부부가 서럽고 힘들다며 남편에게 불만도 타박도 하지 않았다.


아이의 병원 입원으로 3차례 정도 지독한 간호를 했다. 입원도 아주 처음이야 남편이 타지에서 내려오는 시늉이라도 했지, 이제는 감기나 각종 염증 따위로 입원이라고 해봤자 당연하게도 홀로가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육아선상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지독한 고독과 불안과 싸워야 하는 일이었다. 그걸 매번 혼자 해냈다. 울지도 않았다. 그러고는 그 지독한 혼자만의 고군분투 끝에 강의 일도 그만두었다. 파트로나마 유지했던 내 커리어는 자발적으로 중단되었고, 육아가사라는 임무만이 내 몫으로 남았다. 중요하고 소중한 일이었고 내 뜻대로 임한 거지만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혼 전에는 일을 그만두고 나면 쉬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더 바빠진 기분이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고, 학원장뿐만 아니라 우리 엄마나 시부모님에게 잠시만이라도 우는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있게 돼서 나는 더욱 독립적인 인간이 되었다. 내 욕심 하나만 거두면 몇 명이 편해지는지 모르는 현실이 좀 슬펐다. 실은 육아 이후의 바깥일은 좀 취미생활 같이 느껴질뿐더러 때론 오히려 해방감까지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 학원에서 일하면서 전 직장들에 비하면 힘들다고 여겨지는 일은 솔직히 단 한건도 없었을 정도로 일도 아이도 사람도 수월했는데, 학원을 거쳐가는 일부 동료강사들이 알고 보니 엄청 이 학원이 힘들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을 보면서도 이상하게 뿌듯했던 것을 보면 비록 그만은 뒀지만 나름의 성장을 확인했던 곳이 아니었나 싶다.


한편 365일 매일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불안과 싸웠다. 매주 한 번은 어른인간으로부터 꼭 분노가 일었으니 최소 48회는 분노조절을 한 셈이다. 최소니, 비공식적인 화는 더 많으리라. 대상이 누구든 언제라도 나는 그때마다 막말과 욕을 할 준비가 돼 있었는데, 단 한차례도 모욕의 언어를 뱉은 적은 없었다. 아직 분노를 잠재운 대화나 말을 잘할 줄 모르는 나는, 대신 그 모든 순간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다. 작년에는 몇 차례 분노를 불같이 낸 적이 있었던 것을 떠올리면 나름 발전이다. 말을 안 한 것이 발전이 아니라, 아이가 있는 자로서의 처신으로만 말이다. 또한 작년의 분노 수치에 비해서도 화의 부피와 밀도가 눈에 띄게 줄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기적으로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마치 나를 시험하는 듯했다. 애석하게도 그 어른 인간들은 거의 가족이었다. 나를 있게 한 가족과 내가 선택한 가족. 많은 순간 분노를 침묵으로 일관한 게 잘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침묵으로 일관한 가장 큰 이유는 아이가 전부였다. 다만 이유가 아이여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나는 자발적 엄마인데, 매일 자유와 시간을 갈망했다. 집안과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의무로만 가득했다. 그것을 의무로 여기고 억지로 '최소한만 겨우' 하는 스스로가 별로이기도 했다. 육아도 가사도 그를 둘러싼 모든 일을 기꺼웁고 감사하고 매 순간 행복으로 임하고 싶은데. 솔직히 애써서 감사하고, 더 솔직히는 자주 도망가고 싶기까지 했다. 아이가 잠자면 육퇴(육아퇴근)라고 하던데, 출산 후 육아감성이 예민해진 나는 아이가 잠들어도 한 번도 맘 편하게 잠을 잔 적이 없었다. 자면서도 귀가 열려있었기 때문이고 퇴근도 없었다는 뜻이다. 지독하게 분노한 적도 없지만, 그만큼 잔잔하게 꾸준하고도 이상한 자유의 갈망과 싸웠다. 결혼 전에는 맘먹으면 하루나 반나절 정도는 핸드폰 꺼놓고 아무것도 안 하거나 나 혼자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죄 될 것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제는 그 정도 잠수는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열 번 중에 한두 번 안 받은 전화 가지고 세상 연락이라고는 되지 않는 사람 취급하는 사람들을 보며 숨이 턱 막혔다.


불안의 척도는 작년에 비해 약소하게나마 줄어들었으나, 유난히 회피하고픈 마음이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를테면, 바깥일 하는 것은 결혼유무와 상관없이 할 일이었으니 나도 할 수 있다고, 내가 타지로 강의일 나가 돈 벌고 남편이 가정주부와 육아를 도맡아서 하는 일까지 상상했다. 반나절 정도의 아이 맡김으로는 온전히 마음이 그곳에서 떠나질 못하니 나도 아예 떨어져서 돈 버는 게 당연해진다면 차라리 좋겠다고까지 생각했다. 나도 아이가 아프다고 배우자가 말해도, 그냥 지금 내 눈앞 급한 회사일이나 하고, 고생이네- 말하면 걱정이나 보태면 끝이고 싶었다. 병원에서 앓는 아이를 데리고 오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은 내 기준에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니, 책임의 대상을 아이의 아빠인 남편과만 바꾸면 될 것 같았다.


아이를 정말로 사랑하고, 신비롭고도 소중하게 여겼으며, 애를 썼지만 이런 좋음에 비해 책임과 속박의 무게가 유난했다. 그리하여 나는 불안을 넘어 비겁하게도 10번도 넘게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단 한 번도 그 마음을 생각으로 옮기지도, 행한 적은 없었다. 엄마로서 당연한 거지만, 새삼 자꾸 결혼 전의 나로(맘먹으면 뭐든 할 수도, 그만 둘 수도 있던) 떠올리니 나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되었다.


육아와 가사가 가장 엄청난 주된 횟수의 일인 가운데, 올해는 꽤 종이책과 전자책을 읽었고 익숙해졌다. 책을 읽고 함께 나누는 일도 올해부터 재개할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일을 꾸준히 하고 싶었는데 정말 많은 순간 글을 떠올렸다. 떠올린 만큼은 아니지만, 공식적으로 58개의 글을 썼다. 이 글을 올리면 59개가 되겠다. 세보기 전에는 7개 정도일 뿐일 줄 알았는데 많아서 놀랐다. 가끔 그림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일로 세상을 보는 눈이 아름다워지기도 했으나, 뜻만큼 꾸준하질 못하니 주춤해졌다. 그리는 일은 쓰는 일보다는 어색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 몇 점이 되진 않지만 그 또한 모아보고, 그리던 때를 떠올리면 행복하고 벅차다. 기억에 남는 것은 그리는 데서는  어려워도 인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안 것이다. 


자꾸 '많이는 아니지만'을 붙이는게 좀 싫지만, 몇 가지는 '꾸준히'를 유지했다. 느린 대로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뭘 자꾸 해야 하는 거냐 라는 반항이 드는와중에, 부모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것도 있는 게 마땅은 하단 생각이다. 이왕이면 그 마땅한 것들이 의무를 넘어서서 기쁨으로 익숙한 인간이 되길 바랄뿐.

내년에는 내가 하는 꾸준한 일들이 나를 고무시키거나 나를 위안하고 나를 좋게 하는 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이로 말미암아 다른 존재들에게도 좋음이 될 수 있는 해가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나는 365일 간 사랑했고, 가끔 미워했고, 자주 불안하고 분노했다. 끝내 회피하고도 싶었으나 그 서툼속에서도 이내 다시 사랑했음은 확실하다. 그리고 세상엔 수치로도 기록으로도 다 하지 못하는 우리가 모르는 노고들이 훨씬 수천수만을 넘어 무한임 더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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