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서 본 이키케와 아리카는 한 지역처럼 느껴졌는데 실제 거리는 310킬로미터가 넘었다. 버스로는 약 4시간 정도의 거리다. 그러나 이 시간은 그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10시에 출발한 버스는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와서 정류장도 아닌 길 가에 멈추어 섰다. 한참을 지났는데 버스는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 20분쯤 버스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밖에 나갔던 운전기사가 돌아와서 모두 짐 들고 내리라고 했다. 버스가 고장이라 더 갈 수가 없단다.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으니 뒷 차가 오면 그 차를 타고 가면 된다고 하는 것 같았다. 내려보니 어제 아타카마의 거인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늦은 점심을 먹었던 우아라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이제 겨우 80킬로미터쯤 온 것 같았다.
버스 안이 있기가 훨씬 나았다. 버스 밖에는 뜨거운 햇빛을 피할 아무런 그늘도 보이지 않았다. 겨우 한 군데 찾은 것이 길가에 세운 대형 이정표의 그림자이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그 그림자 안으로 모여들었다. 거기 서서 한 시간을 기다려서야 우리를 태울 다음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는 이키케에서 타고 온 사람들이 앉아 있었으나 좌석은 많이 비어 있었다.
고장 난 버스에서 내려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
도로변에서 본 우아라 마을
버스는 아타카마 사막의 고원을 북으로 달리다가 또 깊은 협곡을 내려다보면서 동쪽 해안을 향하기도 했다가 다시 북쪽으로 달리다가를 몇 차례 한 것 같았다. 협곡의 절벽 위를 달리는 오른쪽 창문을 내다보니 무서울 정도로 높은 절벽이 차창 밖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몇 곳의 협곡을 지나고 마지막에 본 협곡은 지금까지 본 것보다 몇 배나 넓고 깊었다. 협곡의 바닥을 흐르는 강도 제법 넓게 보였는데 물은 거의 없었다. 카마로네스 강이라고 했다. 도대체 세계에서 가장 강우량이 적다는 이 아타카마 사막에 무슨 물이 있어 강이 생겼는가? 또 저 밑에 보이는 시냇물보다 못한 강물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흘렀길래 이런 거대한 협곡이 만들어졌는가? 참으로 신비스러운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협곡의 바닥에서는 제법 규모 있는 농장들이 보였다. 지름이 1킬로미터는 더 되어 보이는 반원형의 스프링클러 자국이 녹색이 칠해진 대형 땅그림처럼 보이기도 했다. 협곡의 건너편은 붉은색의 절벽 위로 지금까지 달려오면서 보았던 넓은 평원이 이어졌다.
카마로네스 강 위에는 안데스 산맥 밑까지 이어지는 광대한 고원이 있다.
지름 1킬로미터가 넘는 반원형의 스프링클러 자국이 계곡의 농업 규모를 말해준다.
아리카 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5시 반이 넘어서였다. 생각해보니 점심을 건너뛰었다. 예약한 조그만 호스텔은 태평양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모로 데 아리카라는 언덕 위 공원 입구에 있었다. 가방을 두고 저녁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왔다. 바닷가 도시의 밤은 시원했다. 중심가로 생각되는 골목 안에서 간단한 저녁을 먹고 시내를 산책했다. 여행 중에 밤에 도시를 돌아다닌 적은 거의 없었는데 이곳 바닷가 도시는 그런대로 걸을만했다. 모로 데 아리카가 올려다 보이는 곳의 광장에 울긋불긋한 전통 복장을 한 여성들이 모여 춤을 추고 있었다. 아마도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공연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낯선 곳에서 온 여행자에게는 즐거운 볼거리였다.
도시는 그런대로 볼 것들이 꽤 있는 것 같은데 내일은 암각화 답사를 하기로 계획을 세워 놓았으니 시내 구경은 모래라야 될 것이다. 모래는 아리카를 떠나는 날이지만 푼타 아레나스로 가는 비행기가 밤 12시에 있으니 하루 종일 시내 구경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바닷가의 광장에서 축제 준비를 하는 여성들
신성한 땅그림의 골짜기 아사파 계곡
오늘이 4월 15일, 아리카에서의 이틀째 아침이다. 햇볕은 너무 강렬해서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다. 오늘은 볼 곳이 꽤 여러 곳이라 아침부터 서둘렀으면 하는데 호스텔에서 소개한 운전기사가 좀 늦다. 호스텔 주인은 검은 수염이 잔뜩 난 운전기사를 소개하면서 내가 오늘 가고자 하는 암각화 유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소개했다.
나는 운전기사에게 산 미구엘 데 아사파 고고학 박물관과 오프라기아 암각화 유적에 대해 말하고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운전기사는 그곳이라면 걱정 말라며 박물관과 암각화 유적이 매우 가깝기 때문에 오전에 갔다 올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좀 이상했으나 분명히 유적 명칭을 써서 보여주었고 운전기사도 매우 자신 있게 얘기하므로 의심할 수 없었다.
아사파 밸리는 아리카 시내에서 바로 동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가까운 곳이었다. 박물관으로 가는 도중 길에서 보이는 벌거벗은 모래산의 등성이에는 많은 땅그림 유적이 알려져 있었으나 운전기사가 세워준 몇 곳의 유적만 보기로 했다.
아사파 계곡의 둥글둥글한 야산 봉우리들
차가 계곡 쪽으로 들어서서 얼마 안가 눈에 들어온 것은 도로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산 사면에 있는 특이한 모양의 사람들을 묘사한 땅그림이었다. 그림은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검은색 돌들이 깔려 있는 산 사면에서 이미지의 형태만 남기고 돌을 치워 밝은 황색의 땅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셋이었는데 두 팔은 수평으로 벌리고 팔꿈치를 꺾어 두 손을 하늘로 향했다. 또 두 다리도 양쪽으로 수평으로 벌리고 있었고 두 발을 하늘고 향해 올리고 있었다. 그림은 마치 한자의 '出'자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근처에는 작은 규모의 동물의 그림도 있었으나 세 인물상이 워낙 강렬해서 현장에서는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뒤에 사진을 정리하면서 사진 속에 다른 동물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상스러운 다리의 모습은 현실적이지 않았으나 두 다리가 땅에 닿지 않고 하늘로 향한 암각화의 사례를 미국 자료에서 본 일이 있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그림을 영적 세계를 돌아다니는 샤먼들을 묘사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칠레에서는 지금 보는 '出'자형 그림을 '춤추는 사람들(Los Danzarines)'이라 이름 붙인 것으로 보아 춤을 추는 자세로 보는 듯했다.
아사파 계곡의 춤추는 사람들
다시 차가 산 호세 강을 따라 서쪽으로 달리다가 멈추었다. 이번에는 운전기사가 앞장서서 도로 옆의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길가 집들의 지붕이 바로 눈 밑으로 들어왔을 때 운전기사가 길 건너 앞 산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아까 본 것과는 달리 야마처럼 보이는 동물들과 그 동물들을 끌고 풀 밭으로 나선 듯한 인물상이 보였다. 그림들은 산 사면 전체를 한 화폭으로 삼은 듯 경사면 전체에 보기 좋게 배치되어 있었다.
솜브레로 언덕 땅그림(Geoglifos Cerro Sombrero) 유적이었다. 아사파 계곡을 포함한 이 지역은 아타카마의 일부라고도 볼 수 있는 노르테 그란데(Norte Grande) 사막이다. 물이 부족한 사막의 여러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다 쪽에 사는 사람들과 여러 물적 교류를 해서 살아가야 했는데 그 교류의 가장 중요한 통로가 산 호세 강이 흐르는 아사파 계곡이라 할 수 있다. 아사파 계곡의 산 언덕에 많은 땅그림들이 만들어진 것은 이러한 멀리 떨어진 지역 간의 교류 통로로서의 기능과 관련 있다는 견해가 많다. 이러한 그림들은 각 지역의 다양한 정보를 전해주는 상징 기호이기도 하며 또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종교적 의례나 기도의 장소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솜브레로 언덕 유적에는 목이 긴 두 마리의 동물이 사면의 중심을 차지하고 그 뒤에 키가 큰 사람이 따라가고 있다. 또 상대적으로 작은 동물들이 줄지어 움직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목이 긴 동물은 아마도 야마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야마는 고산에 사는 동물이라 정확히는 말할 수 없다. 뜯을 풀도 없는 모래산에서 이들은 줄을 지어 풀을 찾으러 떠나는 것인가? 그림이 있는 사면은 산의 북쪽을 향한 사면이며 동물들이 향하고 있는 방향은 서쪽이다. 이것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남향을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과는 반대되는데 이곳에서는 방향이 큰 의미를 가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솜브레로 언덕의 땅그림들
솜브레로 언덕에서 조금 더 동쪽으로 이동하여 산 언덕으로 오르면 라스 요시아스(Las Llosyas)라는 전망대가 있다. 이 전망대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서면 산 밑 들판을 건너 멀리 맞은편 산 사면에 매우 기하학적인 도형들이 보인다. 사르가도 언덕 땅그림(Cerro Sargado Geoglifos) 유적이다. 이 유적이 아사파 계곡 땅그림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 만큼 규모도 크고 흥미롭다. 특히 유적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잉카 시대의 마을 유적이 있는데 이 마을에서 조사된 공동묘지의 시신들이 모두 사그라도 땅그림을 향하고 있어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땅그림이 그것을 제작한 마을유적과 목장, 창고, 묘지, 농장, 저수지 등의 유적과 함께 하나의 큰 유적군을 이루고 있었는데 최근 고속도로와 대규모 농장을 개발하면서 상당 부분이 사라졌다고 한다. 수백 년에서 천년 가까운 시간을 버티다가 20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르가도 언덕의 땅그림들이 수백미터 떨어진 산 사면에서 우리를 보고 있다.
이 지역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노르테 그란데 사막과 더 나아가서 안데스 산맥에 연결되는 알티플라노 고원지대의 주민들이 해안지역과 통하는 주요 통로였다. 따라서 이곳에는 알티플라노 지역의 축산물과 농산물 해안지역의 해산물들이 모여들어 매우 풍요로운 삶을 유지할 수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또 그러한 지역의 종교적 중심지가 되었다는 것은 자연스러웠을 것이며 그러한 증거물이 바로 지금 마주하고 있는 땅그림일 것이다. 땅그림이 제작된 시기는 대략 서기 1000년에서 1500년 사이라고 한다.
그림에는 사람, 야마로 보이는 동물, 뱀이나 도마뱀 등이 거대한 형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지역에서 뱀이나 도마뱀은 다산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선사미술에 나타나는 뱀이나 도마뱀은 다산뿐 아니라 땅속의 세계와 땅 위의 세계를 오가며 양쪽을 소통시키는 존재로서 신성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된다.
언덕 사면 양쪽에 사람들이 묘사되어 있고 가 중간에 긴 꼬리의 도마뱀과 꼬불꼬불한 몸의 뱀이 보인다.
어린이를 데리고 함께 춤을 추는 것 같은 인물과 동물들 위쪽으로 작은 인물들도 다수 보인다. 특이 오른쪽의 큰 인물 입상은 팔을 뒤로 길게 뻗친 듯이 보이고 긴 부츠를 신은 것처럼 보이는 발과 모자를 쓴 머리 등이 흥미롭게 보이는데 얼핏 보기에 제사장이나 어떤 의식을 거행하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사르가도라는 말은 신성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아사파 계곡에는 지금 본 몇 곳의 땅그림 외에도 상당히 많은 땅그림 유적들이 알려져 있는데 사르가도 언덕 말고도 계곡 전체가 거대한 땅그림으로 채워진 신성한 골짜기라 하겠다.
아리카에서 우선 보고 싶은 곳은 산 미구엘 데 아사파 고고학 박물관이었다. 그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는 인공 미라가 있다. 나는 1990년대 말에 안동에서 조선시대의 미라를 발굴했고 또 그중에서 '원이 엄마의 편지'로 알려진 죽은 남편에게 아내가 쓴 애절한 편지형 만사를 조사하고 발표한 이후 미라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박물관 내부 정원
산 미구엘 데 아사파 고고학 박물관은 해안의 시내 중심에서 약 16킬로미터 동쪽으로 떨어진 곳이다. 박물관이 있는 아사파 계곡은 시내에서 바로 동쪽으로 연결된 골짜기이며 산호세 강이 계곡 복판으로 흘러 아리카 시내를 거쳐 태평양으로 빠져나간다.
박물관은 큰길에서 좁은 골목으로 좀 들어가서 대문이 있다. 문 앞에서 본 박물관은 건물이 보이지 않고 나무가 우거진 넓은 정원만 보인다. 들어가면서 든 느낌은 고고학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식물원에 가까웠다. 박물관 전시실로 들어가기 전에 나의 눈을 잡은 것은 전원 한쪽에 늘어놓은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들이었다.
이 바윗돌들은 아사파 계곡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가져왔을 것으로 보이는데 일부 그림들은 중국의 내몽고 유적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한 것들이 있었고 미국 서남부 사막지대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한 것들도 있었다. 또 한국의 천전리 암각화에서 보았던 추상적 도상들과 상당히 비슷한 것도 보였다. 또 광선까지 묘사한 이중원의 태양 그림은 이곳이 세계에서도 유명한 태양신 숭배 지역임을 설명해주고 있는 듯했다.
왼쪽 사진의 원형 얼굴은 중국 닝시아의 허란산 유적에서, 또 오른쪽 사진의 인물상은 러시아 알타이 공화국의 칼박타시 암각화에서 보았던 얼굴이나 인물상과 유사하여 흥미로웠다.
그러나 이런 유사성은 암각화들이 서로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의 선사 암각화들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특징들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오히려 사람들의 삶이나 신앙의 형태에서 나타나는 보편성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박물관 정원의 암각화가 새겨진 돌들에 새겨진 그림들에서는 이러한 보편적 특징들이 많이 드러나 있었다. 크고 작은 바위 구멍들이나 엉덩이 쪽에 둥그스럼한 물체를 매달고 서있는 인물상, 또는 원의 내부를 구분하여 사람의 얼굴 모습으로 표현한 것 등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자주 보았던 것들이다. 오후에 갈 예정인 오프라기아 암각화 유적에 대한 나의 관심은 박물관에 오기 전보다 훨씬 커지게 되었다.
뱀과 태양을 새긴 암각화
박물관은 구관과 신관으로 나뉘어 있고 신관 건물은 크지는 않으나 꽤 짜임새가 있고 유물들도 매우 풍부했다. 사막에서 출토된 것들이라 다른 사막 지역의 고고학 박물관과 비슷한 유물들이 많았지만 역시 미라가 전시실에서 가장 관심을 끌도록 진렬 되어 있었다.
건조한 사막 지대에서는 자연 현상으로 시신이 건조되어 미라화 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러한 자연 현상으로 만들어지는 미라로 유명한 것은 중국 신쟝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또 한국에서도 유교식 매장법에 의해 시신이 거의 밀봉상태로 땅 속에 묻혀 있으면서 부패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런 것도 일종의 인공적 미라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으나 미라를 목적으로 사용한 매장법이 아니므로 이집트와 같은 미라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리카 지역에서 발견되는 인공 미라는 죽은 사람의 시신을 해부하여 내장을 꺼내고 몸 안에 썩지 않는 물건들을 넣고 화학처리를 하여 부패되지 않도록 인공적으로 처리한 것이다. 이렇게 인공적으로 처리한 미라는 이집트가 유명하지만 이곳의 미라는 이집트 미라보다도 2000년이나 앞선 것이라고 한다. 무려 지금부터 8000년 전 해안지역에 살던 친초로 족이 남긴 것이다. 8000년의 시간이 아사파 계곡에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