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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수연 Nov 07. 2020

이것이 찐 '엄마 뮤지션'의 하루

부제: 탈탈 털린 하루

유독 그런 날 글을 쓰는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속은 답답해서 어딘가에 몽땅 털어놓고 싶은 날. 그래서 내 글들은 대부분 '속풀이'의 느낌이다.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거나 해답을 듣고 싶어서 아니고, 내 이야기를 듣는 누군가의 감정도 상하게 하고 싶지 않기에 글이란 수단 딱 좋다. 또 공개만 미뤄둔다면 어떤 말이든 후련하게 다 내뱉어도 되니까. 다음날 봤을 때 괜찮다면 그때 공개하면 되니까.




하루의 시작은 좋았다. 아이를 등원시킨 후 커피를 마시며 묵상을 하고, 아이 반찬을 해줄 야채와 버섯을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째 진행 중인 신곡 기타 녹음과 보컬 녹음을 집중해서 해봤지만 마음에 드는 녹음본은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가 점점 지쳐가고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냉장고 정리를 시작했다. 있는 줄도 몰랐던 야채 칸의 썩은 야채들, 유통기한이 지난 간식들, 쉰 반찬들이 줄줄이 나와 음식물 쓰레기봉투 세 장을 꽉 채웠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일은 제일 싫어하는 일 중 하나다. 그러니 그렇게 썩을 때까지 미루겠지.


출출해져 컵라면 하나를 끓여먹으며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밥을 안치고 불고기를 올리고 김치찌개 끓인다.

 

아이 데리러 간다. 대부분 아이들이 하원 하는 시간은 하원 차량이 운행하는 3시 반. 도 그때쯤 데리러 가고 싶지만 오늘도 간신히 4시 정각에 도착했다. 아이가 하원 후 항상 가자고 조르는 카페에 간다. 두어 시간 동안 곤충 책, 물고기 책을 읽어주고 장난감 놀이를 해준다. 아이가 좋아하는 형이 왔는데 갑자기 떼를 부리기 시작다. 어제 했던 약속과 달리 아이가 양보를 안 하려고 한다. 양보를 해야 하는 이유를 여러 번 설명해줬지만, 더욱 떼 부리고 울음소리만 커질 뿐이었다.


아이 컨디션 난조는 집에 와서도 계속됐다. 불고기 대신 물고기를 달라고 졸랐고, 밥에 물을 말아달라고 해서 말아줬더니 밥이 차가워졌다고 울었다. 안 먹는다고 식탁을 밀어낸다.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고 혼을 내며 꾸역꾸역 혼자 밥을 먹는다. 아이도 뒤늦게 한두 술 뜨더니 다시 안 먹겠다며 젤리를 달라고 조른다. 혼나는 방에 들어가 혼을 낸다. 그 사이 남편이 오고 구몬 선생님이 오셔서 수업을 하는 동안 저녁을 하다 치우지 못한 그릇들과 찌꺼기들을 치운다.




좋은 날은 아니지만 유난히 나빴던 날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하루. 글을 기운 정도는 남아있는 날.  


내가 예전에 썼던 글처럼 자고 내일 일어나면 기분이 괜찮아지겠지. 빨리 잠자리에 들고 싶지만 아직 쌩쌩한 아이가 언제 자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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