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앞둔 당신에게

드라마 <미지의 서울>

by 닻별

드라마 <미지의 서울>을 정주행하고도 한 달이 지나서야 글을 쓴다. 주인공 미지와 미래를 마음속에서 보내주는 데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마지막 장을 보기 위해 달려가지만, 나는 정든 주인공을 보내기 싫어 끝판왕 전에서 게임기를 꺼버리는 쪽이었다. 내 삶의 한 챕터가 끝나는 것이 두려워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이 그들과 닮아 있었다.


"서른은 마지막 파종 시기야. 지금 아무것도 안 뿌려 놓으면 나중에 뭘 수확하려고?"


드라마 속 대사는 서른을 반년 앞둔 내게 가시처럼 박혔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나는 늘 무언가를 심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퇴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첫째라는 무게와 그간 일구어온 것들이 아까워 버티고 버티는 미래의 모습이 바로 나였다. 반면, 실패 앞에서도 자기만의 궤도로 튕겨 나가는 동생 미지의 담대함은 부러움을 넘어 경외감마저 안겨줬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결정'을 강요받는 나이다. 진로를 결정하고, 관계를 결정하고, 삶의 정착지를 결정해야만 한다는 사회적 압박. 하지만 미지는 서른에 서둘러 씨앗을 뿌리는 대신, 자신만의 밭을 다시 갈구는 쪽을 택한다. 남들이 수확의 기쁨을 논할 때, 미지는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심고 싶은지 고민하며 시간을 유예한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게 이 치열한 도시는 빽빽한 빌딩 숲이자 끝없는 경쟁의 경기장이었다. 이 좁은 세상의 문법이 전부인 줄 알고 발을 동동 구르던 시간들. 미지와 미래를 보며 깨달았다. 서른은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라, 비로소 내가 어떤 농부가 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라는 것을.


이제 나는 내 안의 조급함을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남들보다 파종이 조금 늦더라도, 내가 고른 씨앗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서울에서의 피로감이 나를 짓누를 때, 나는 미지처럼 잠시 나의 밭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으며, 오늘은 아직 모르는 것들로 가득하다. 서른의 문턱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불안에 쫓겨 아무 씨앗이나 뿌리는 것이 아니라 씁쓸한 오늘을 묵묵히 견디며 나만의 계절을 준비하는 일이다. 좀 더 먼 미래에 내가 지금의 나를 추억할 때, "그때 참 공들여 밭을 갈았지"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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