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박힌 파편 하나

by 닻별

어떤 사실은 예고 없이 찾아와 마음을 온통 헤집어 놓는다. 지난해 가을, 문고리를 잡은 채 멈춰 서게 했던 그 소식이 그랬다. 충격이 지나간 자리엔 날카로운 파편들이 박혔다. 시간이 흐르면 무뎌질 법도 한데, 이 파편들은 가끔 마음속에서 제 존재를 알리듯 형광(螢光)한다. 그러면 나는 다짐한다. 결코 당신을 잊지 않겠다고, 잊어도 잊지 않겠다고.


취준생 시절, 어느 언론사의 기출 문항 앞에서 시선을 멈춘 적이 있다. '지금 당장 누군가를 취재해야 한다면 누구를 만나겠는가.' 나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광화문의 거대한 인파 속에서도 유독 선명하게 눈에 밟히던 이름, 故 송혜희 씨의 아버지 송길용 씨였다.


피곤한 아침 눈 비비며 버스에 몸을 싣고 가다, 광화문역 즈음 어마무시한 인파를 뚫고 내 눈에 들어온 건 송혜희씨를 찾는 현수막이었다. 내 마음을 먼저 건드린 건 거창한 서사가 아니라, 빛바랜 현수막 속의 짧은 부사 하나였다. '실종된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


격식을 차린 '를' 대신 들어앉은 '좀'이라는 글자. 부탁의 수위를 넘어선 그 간절한 단어는 내게 절규보다 무겁게 읽혔다. 단 열두 글자가 주는 비릿하고도 쌉싸름한 무게감. 가족이 감내해 온 25년의 세월이 그 짧은 글자 마디마디에 옹이처럼 박혀 있었다.


생업을 접고 딸을 찾는 데에만 25년. 전국을 누비며 현수막을 교체하던 그의 트럭은, 어쩌면 그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방주였을지도 모른다. 딸의 실종과 아내의 이별, 그리고 본인의 마지막 순간까지.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불행의 총량이 과도하게 할당되는 것일까. 세상의 신이 있다면, 왜 가장 간절했던 생을 이토록 허망한 교차로에서 멈춰 세웠는지 묻고 싶었다.


그의 인생이 너무 궁금했다. 평택 등지에서 현수막과 전단지를 가득 담은 트럭 한 대에 몸을 싣고 시작되는 그의 하루 일과를 글로 담고 싶었다.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을 반복하다 결국 나는 그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다. 그의 슬픔이 너무 깊어 감히 내 미숙한 글자로 담아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5년 뒤, 딸의 실종 30년이 되는 해에는 꼭 특집 기사를 쓰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즈음엔 이제 그만 따님을 놓아주고 그의 삶을 살길 바랐다. 그가 꼭 행복하길 바랐다.


세상에는 우리가 채 갚지 못한 마음의 빚들이 떠돌아다닌다. 타인의 고통을 목격하고도 끝내 곁을 지키지 못했다는 부채감, 혹은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는 자책감 같은 것들이다. 나는 이제 그가 떠난 자리에 남은 현수막들을 생각한다. 비록 그 생은 씁쓸한 여운을 남기고 마침표를 찍었지만, 누군가는 그 파편을 기꺼이 품고 기억해야 한다고.


생전에 연락 한 번 못 드린 걸 앞으로도 자주 떠올릴 것 같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는 일이, 내가 앞으로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내가 쓰는 글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조금 더 멀리 데려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다면 이 마음의 통증 또한 외면하지 말아야 할 나의 몫일 것이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좀'이라는 말을 빌리지 않아도 되기를. 딸의 손을 잡고 좁은 현수막 칸이 아닌, 끝없이 넓은 계절 속을 마음껏 거닐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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